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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06 왜 우리는 'SNS자기과시'에 중독되는가_ 강준만
권력을 지닌 사람은 소수의 권력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권력의 주체는 나의 주변 사람들이거나 이름 없는 대중일 수도 있다. 그렇게 통속적으로 변질된 '인정' 개념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공간이 바로 SNS다. 과거엔 자기 과시를 위해선 사람들을 직접 만나야 했고, 또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SNS는 그런 번거로움을 일시에 해소시켜준 '혁명'이나 다를 바 없다. '인정욕구'에 굶주린 사람들이 SNS에 중독되지 않고 어찌 견뎌낼 수 있으랴.
SNS가 '온라인 인정투쟁'의 장으로 활용되는 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그 격렬함은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있을 것 같지 않다. 한국에서 페이스북이 '인맥 과시용 친구 숫자 늘리기'로 이용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허울뿐인 '먼 친구'가 유행하는 이유는 페이스북 이용자들 사이에서 자기 과시를 위한 친구 추가 경쟁이 붙었기 때문이다.
어디 인맥 과시뿐이랴. 자신의 페이스북에 꾸준히 맛집 관련 사진을 남기는 조 모(35) 씨는 페이스북 친구들이 조 씨가 알지 못하는 맛집이나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온 사진을 올리면 괜한 질투심을 느낀다. 그는 "친구의 페이스북에 여기가 어디냐고 댓글을 남겼더니 웬만한 사람은 다 가본 곳인데 왜 모르느냐고 은근히 핀잔을 주더라"며 "유행에 뒤처진 사람처럼 보일까봐 지금은 억지로라도 사진을 올리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인기를 끈 'SNS백태'라는 게시물은 이렇게 말한다. "미니홈피-내가 이렇게 감수성이 많다. 페이스북-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 블로그-내가 이렇게 전문적이다. 인스타그램(사진공유SNS)-내가 이렇게 잘 먹고 다닌다. 카카오스토리-내자랑+애자랑+개자랑. 텀블러-내가 이렇게 덕후(오타쿠)다" 등.
영화평론가 최광희는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고 싶다. 그러려면 청중이, 관객이 필요하다. SNS는 많은 사람들에게 서로가 인생의 주인공임을 말하고, 서로의 청중이 되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도 진짜 주인공이 아니고, 누구도 진짜 청중이 아닌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 이 공간이 서글프다."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카페인 우울증'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에서 늘 이길 수만은 없다. 5년차 직장인 홍 모(29. 여)씨는 최근 페이스북 활동을 줄이겠다고 결심했다. 재미로 시작한 SNS가 요즘은 하면 할수록 우울하다고 느껴져서다. "철마다 해외여행을 가고 결혼 5주년 기념으로 가족이 모두 몰디브를 다녀왔다고 페이스북에 근황을 올리는 친구를 보다 보니 벽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심리상담센터를 찾아 "친구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호텔 식당, 핸드백, 남편에게 받은 선물 중 어느 것 하나 내가 가거나 갖고 있는 게 없었다" 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내 삶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그에 따른 마음의 병을 이른바 '카페인 우울증'이라고 한다. '김현철 공감과성장 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 따르면 병원을 찾는 10~20대 환자 10명 중 5명 이상은 'SNS로 인한 우울감'을 호소한다. 김현철은 "불면증이나 폭식증에 시달린다거나 감정 기복이 심해졌다며 병원을 찾아온 사람들과 상담해 보니 이들의 SNS사용이 최근 부쩍 늘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카페인 우울증'의 증상은 다양하다. "행복한 순간만을 기록하는 왜곡된 현실이라는 걸 알면서도 동경하게 되고 부러우니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취업 준비 중인데 친구들이 회식이나 출장 사진을 올리면 나만 낙오자가 된 것 같아 무기력해진다." "직장 동료가 값비싼 기념일 선물을 받아 SNS에 자랑하면 비교가 돼 연애도 하기 싫어진다." "력셔리 블로거들을 보면 내 삶이 처량해진다."
심지어 이런 일까지 벌어졌다. 2015년 2월 인천 서부경찰서는 2015학년도 서울 소재 사립대학교 수시전형에서 유 모(19세)양의 개인정보를 인터넷상에서 알아내 입학을 취소시킨 혐의로 재수생 김 모양(19)을 검거했다. 경찰 조사 결과 서로 만나지는 않았지만 3년 정도 인터넷에서 유 양과 SNS 친구로 지내온 김 양은 자신이 떨어진 대학에 유 양이 합격하자 질투심을 못 이겨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김 양은 유 양이 SNS에 올려놓은 수험번호와 계좌번호 등을 모은 뒤, 입시 대행 사이트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유 양인 것처럼 속였다. 그렇게 해서 유 양의 보안번호를 얻어낸 김 양은 이 번호로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간 뒤 입학 포기를 의미하는 등록예치금 환불을 신청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모든 문제 때문에 SNS를 포기해야 할까? 그렇진 않다. 나도 남들의 부러움을 자극할 만한 것들을 올리면 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선 SNS에 더욱 중독되어야만 한다. 인정투쟁은 인류역사의 원동력이라는 데 무얼 망설이랴! 그러나 남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면 '비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다.
개천에서 용나면 안 된다, 강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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