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운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 조금 민망할 정도로 운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운이 없다 정도를 떠나 운이 나빴던 경우가 더 많았다. 20~30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대학, 취업, 결혼, 모두 남보다 늦었거나, 아직 하지 못했다.

 

공부를 못했던 내가 갈 수 있는 4년제 대학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2년제 전문대에 입학했고, 군대를 제대한 스물네 살에 다시 수능을 쳐 지방 사립대에 입학했다. 취업은 빨랐을까? 나는 세 번의 인턴십과 한 번의 계약직 일을 하는 1년 반의 시간을 거쳐 겨우 정규직 사원이 되었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이었다. 그 밖에도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한 가지 '관점'과 한 가지 '판단'으로 그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답부터 먼저 말하자면 한 가지 '관점'은 긍정과 부정 중 긍정을 선택하는 것이었고, 한 가지 '판단'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었다. 이 방법으로 평생을 따라다닌 외모 콤플렉스도 극복했고 학벌 콤플렉스도 극복했다. 하지만 내 삶의 진짜 불운은 따로 있었다. 긍정의 힘을 발휘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판단할 여유도 없을 정도로 불행할 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조심스럽지만 가족의 불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아버지는 괜찮은 대기업에 다니다가 마흔 살의 젊은 나이에 명예퇴직을 당했다. 그 후 할 일이 없어 몇 년을 그냥 놀다가 집에 돈이 떨어질 때쯤 할 수 없이 택시기사가 되었다. 한 달에 200만 원 정도의 돈을 벌기 위해 하루에 무려 열다섯 시간씩 운전했다. 20년 넘게 택시 운전을 해온 아버지에게 택시는 나이가 들어서 하는 여흥이나 취미가 아니었고, 말 그대로 생존의 수단이었다.

 

나의 유일한 형제인 형은 10년 넘게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살아남았지만, 그 과정을 바라본 가족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형의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본 어머니 또한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이 모든 불행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비극이었고, 결국 나 또한 그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게 됐다.

 

어두운 방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온갖 안 좋은 생각을 했다. 자살자의 유족은 일반인 대비 자살 위험이나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훨씬 더 높다고 한다. 실제 미국의사협회 학술지인 <정신의학>에 발표된 연구 결과가 있다. 피츠버그대학교 메디컬센터에서 우울증 등의 기분장애를 앓은 부모 334명과 그들의 자녀 700여 명을 조사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부모가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는 경우 그 자녀가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없는 부모의 자녀에 비해 다섯 배 더 높은 것으로 나왔다. 한마디로 부모의 자살 시도는 자녀의 자살에도 강력한 방아쇠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나 역시 겁이 났다. 형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고, 엄마가 같은 아픔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지독하고 끈질기게 엄마와 형을 괴롭혔던 우울이라는 놈이 나에게도 들러붙었다는 걸 알았을 때 내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이쯤 되면 불행의 늪이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깊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우울증은 대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에 기인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무기력해지고 병은 점점 더 깊어진다. 너무 깊은 고통이었기에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지만, 그런데도 나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이 병을 극복할 수 있을지를 매일, 매 순간 고민했다. 그러자 조금씩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우울의 근본적인 원인은 당연히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진 데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러니 우선 우리 가족에게 닥친 불행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란 걸 깨달았다. 긍정의 시야를 가지는 건 여전히 불가능했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우리 가족의 우울증과 엄마의 죽음은 어떻게든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불행을 인정한 나는 나 자신을 불쌍한 존재로 여기고 스스로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부정의 늪에서 빠져나온 나는 그다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판단했다. 직업 특성상 불안정한 수입을 안정화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마음의 불안과 우울에 갇히지 않도록 몰입할 대상을 찾는 일도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움직여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나는 그것을 가장 경계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모든 상황이 그대로면 우울증이라는 늪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약도 먹고, 심리 상담도 받았다. 그간은 집에서 일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일하기로 했고 매일매일 햇볕을 쬐며 산책을 했다.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며 내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무엇보다 완전히 새로운 일인 유튜브 채널 운영을 시작해 새로운 사람과 만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에 몰두했다. 차도 바꿨고 집도 이사하기 위해 부동산에 문의했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시간, 장소, 사람 등 무엇이든 다 바꿨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조차 이렇게 노력하는 환자는 처음봤다고 할 정도였지만, 그 정도로 나는 간절했지만, 지금까지 기울인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울증은 쉽게 다스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일 뿐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결국 이런 꾸준한 노력이 나를 조금씩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했고,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지도 조금 알게 되었다.

 

우울증의 바다에 처음 빠져본 나는 깜짝 놀라 허우적대기만 했다. 헤엄을 칠 줄 몰랐기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에서 어떻게든 살려고 허우적댔지만, 애를 쓰면 쓸수록 더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들 뿐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우울증은 쉽게 낫지 않는다. 우울증이 생겼다는 것은 대부분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나처럼 비극적인 상황까지는 아닐지라도,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하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등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불행한 상황에 빠지다 보면 우울증이라는 놈이 파고들어 와 약해진 마음에 똬리를 트는 것이다.

 

이처럼 큰 불행이 왔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을 쉽게 해결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상황과 감정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 지점까지는 함께 가는 동반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뚝뚝 흐르던 피가 멎고, 딱지가 앉고, 상처가 아물고, 흉터가 희미해질 때까지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인정하기 싫다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무리하게 벗어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그만큼 몸은 더 물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그렇게 우울한 감정과 나의 불행을 받아들이면 조금씩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은 내버려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악착같이 찾아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몸에 힘을 빼고 차분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면 어느 순간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물 위에서 유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살면서 힘든 일에 부딪힌다. 어렵게 꺼낸 내 이야기가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긍정하고, 아니 긍정할 수 없을 땐 인정이라도 하고, 그 후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불운을 극복할 수 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기에 너무 힘든 순간이란 걸 나는 잘 안다. 그렇기에 당신에게도 최악의 순간이 찾아오면 이런 노력을 할 수 있길, 어떤 순간에도 용기를 잃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럭키_ 김도윤

by 미스터신 2022. 7. 30. 18:49

초보자들이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 좌절을 느끼는 순간은 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완전 초반이다. 처음 1킬로미터가 생각보다 상당히 힘들다. 숨도 많이 차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힘든 순간이 달리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건 아니다. 이 힘든 시기를 조금만 참고 더 달리면 한결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뛰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마라톤이 처음부터 끝까지 힘든 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실제로 달려보면 힘든 순간을 지나서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찾을 수 있다. 그때가 바로 힘든 시기를 무사히 지나는 순간이 된다.

 

한마디로 달리기는 정신력으로 몸을 바꾸는 운동이다. 힘들어도 꾸준히 달리다 보면 심장과 허파의 기능이 내 몸의 운동을 충분히 받쳐줄 수 있게 바뀐다.

 

실제로 달리기를 시작한 초반에 심박 수를 재보면 수치가 높다. 그런데 한창 뛰고 있는 도중에 다시 심박 수를 재보면 그렇게 높지 않다. 달리는 데 필요한 산소 등의 요소들이 이미 충분히 제자리를 잡은 덕분이다. 혈액 순환도 안정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심장이 무리해서 몸 여기저기에 피를 공급하지 않아도 된다.

 

많은 전문가가 드는 예인데, 풍선을 분다고 한번 상상해보라. 처음 풍선을 불 때는 잘 부풀지 않는다. 정말 세게 힘을 주어 불어야 바람이 겨우 조금 들어간다. 이렇게 몇 번 불다 보면 어느 정도 풍선이 부풀고 그제야 바람을 불어넣는 게 한결 수월해진다. 우리 몸과 폐도 마찬가지다. 풍선을 부는 것처럼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땐 힘든 게 당연하다. 1~2킬로미터는 뛰어야 어느 정도 바람이 들어간 풍선처럼 몸도 유연하게 바뀐다. 그 시간이 지나야만 전보다 덜 힘든 상태에서 달리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심장과 폐도 제대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다. 다만 풍선을 계속 불면 터져버리는 것처럼 달릴만하다고 해서 계속 더 속도를 내면 부상을 당할 수도 있으니 갑자기 무리한 연습은 금물이다.

 

오래 달리다 보면 다리 근육도 바뀐다. 오래 달릴 수 있는 근육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원래 사람의 몸은 가만히 있어도 세포들이 죽고 없어지고 또 새롭게 생기곤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오래 달리기를 계속하면 원래 잘 뛰지 못했던 근육이 장거리 달리기를 해도 끄떡없는 모습으로 변화한다. 인체의 신비란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간혹 달리기와 관련해 흔한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다. 무릎이 상할까 봐 달리기를 못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다. 의사 입장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괜찮다. 요즘 사람들의 무릎은 오히려 너무 안 써서 상하는 것이다. 무릎을 보호하겠다고 가만히 있으면 그게 무릎을 상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적당히 쓰고 달리는 정도의 충격을 주어야 더 튼튼해지는 게 무릎이다. 물론 너무 무리하면 무릎도 상하겠지만, 천천히 달리기 정도의 운동으로 상하는 건 아니니 걱정 말고 달려도 된다.

 

달리기가 우리 몸에 변화를 가져오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정말 중요한데도 사람들이 많이 놓치고 사는 것, 바로 '우울'이다. 달리기는 우울한 마음도 건강하게 바꾸어놓는다. 미국의 경우, 전체 인구 중 10%가 우울증이라는 통계가 있다. 미국의 전체를 3억 명이라고 봤을 때 무려 3,000만 명 정도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우리나라도 이 수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선진국에서 인생의 행복도를 보면 20는 높고, 30대와 40대는 점점 낮아진다. 그러다 50대와 60대가 되면 다시 높아진다. 전형적인 V 라인이다. 일도 많이 하고 가정을 꾸린 뒤 육아도 해야 하는 3,40대의 삶이 제일 힘겹게 느껴지다가, 나이가 들수록 평온하고 편안한 노후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니다. 20대가 그나마 제일 높았다가 30대, 40대, 50대, 60대가 될수록 점점 수치가 낮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만족도가 반비례하는 역슬래시(\) 라인이다.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데도 힘든 시간이 계속 쌓이기만 한다. 행복보다 불행지수가 너무 높은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상적인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한 자살률, 특히 노인 자살률도 우리나라가 1위인 것이다.

 

달리기가 이 모든 우울과 불행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전 세계적으로 달리기 인구가 느는 것도 달리기가 우울증에 효과가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원래 달리는 동물인데, 삶이 힘들어진 데다 더 이상 달리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더 우울하고 몸이 아픈 것일 수도 있다.

 

'러너스 월드' 객원 편집기자인 스콧 더글러스는 '나는 달리기로 마음의 병을 고쳤다'라는 책에서 달리기가 어떻게 우울함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알려준다.

 

우울증의 전형적인 특징은 '내가 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아' '삶의 낙이 없어'처럼 자기 패배적인 생각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임상심리사이자 러너인 브라이언 배시 박사에 따르면, 달리기는 이러한 생각들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달리기로부터 얻게 되는 커다란 심리적 이점 중 하나는 자아존중감의 향상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다는 데에서 자신감을 얻는 것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좋게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콧 더글라스는 이러한 배시 박사의 말을 실제로 겪어 본 사람이다. 그는 기분이 불완전한 기분부전장애와 만성 우울증을 학창 시절부터 오랫동안 앓아왔다. 10대 시절,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대마초를 피우는 등 쾌락을 추구해도 나아지지 않던 그의 기분이 달리기를 하며 점차 극복 가능한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달리기 덕분에 그는 정신적, 신체적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30분 만에 긍정적이고 열의에 찬 행복한 기분을 경이롭다고 표현했다.

 

지난 20여 년간 우울증 치료를 위한 잠재적 방법으로 운동에 관한 연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우울증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에 운동이 항우울제만큼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 운동에 해당하는 활동은 대부분 유산소 운동을 말한다.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인 달리기를 내가 계속 추천하는 이유다.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

by 미스터신 2020. 4. 11. 11:25

 

시도 때도 없이 화가 나는 윤석이

 

선생님, 화가 나면 참을 수가 없어요. 요즘 제 별명이 뭔지 아세요? 시한폭탄이에요. 대충 짐작 가시죠?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어요. 오히려 화를 참는 편이었어요. 동생이 둘 있는데, 동생도 잘 돌본다고 부모님한테 칭찬도 많이 받았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동생 공부 봐주고, 설거지도 하고, 집안 청소도 하면서 바쁘게 지내 왔어요. 엄마 아빠가 다 일하셔서 저라도 도와 드려야 했거든요.

 

엄마는 고맙다는 말 많이 하세요. 지금 집안일을 배워 두면 나중에 장가 잘 갈 거라고도 하시죠. 그런데 그 말 들으면 오히려 화가 더 나요. 솔직히 다 필요 없으니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혹시 제가 화가 나고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 집안일이나 동생 돌보는 거랑 관련이 있는 걸까요? 그렇다고 해도 집안일을 한 게 하루이틀이 아닌데 요즘 들어 왜 갑자기 힘들고 짜증나는 걸까요?

 

집에서만 화가 나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도 그래요. 애들이 조금만 떠들거나 소란을 피워도 신결질이 나요. 그럼 소리를 지르고 말죠. 터뜨리고 나면 곧바로 후회돼요.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터뜨리지 않고는 못 견디겠어요. 참자니 돌아 버릴 것 같거든요. 이거 혹시 병인가요?

 

무거운 짐 때문에 불만스럽다면

 

올해 중학교 3학년인 윤석이는 얼굴빛이 잔뜩 흐려 있어 첫눈에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참을성 많다고 칭찬도 받았다는 윤석이가 지금은 왜 툭하면 화를 터뜨릴까요?

 

평상시에도 사소한 일에 성질을 내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화를 터뜨리는 청소년들이 늘어나, 최근에는 이를 병으로 진단하기까지 하는 추세입니다. 정신 의학적으로는 우울증과 비슷한 정서 장애로 보고 있지요. 겉으로는 화를 내고 있지만 사실은 우울하고 아픈 마음이 문제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화를 많이 내는 윤석이. 그렇게 뿜어 내는 분노로 누가 가장 크게 피해를 입을까요? 형의 도움이 필요한 동생들일까요? 큰아들을 믿고 집안일을 맡긴 엄마 아빠일까요? 윤석이에게 기대가 컸던 선생님일까요? 윤석이의 고함에 깜짝 놀란 친구일까요? 아닙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윤석이 자신입니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상담실을 찾은 것부터가 그렇다는 걸 말해 주지요.

 

윤석이는 내 것을 챙기기보다 늘 다른 사람을 돌보고 챙겨야 했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요. 동생들을 돌보는 것도 마땅하고 귀한 일이고요. 그렇지만 그것이 내 기쁨과 즐거움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우울하고 힘들어질 수 있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편하게 지내고 싶다는 윤석이의 말에는 마음이 짠해지기까지 합니다.

 

내가 가장 먼저 돌보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 즉 내 마음과 몸, 그리고 내 생활입니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은 채 해야 할 일만 늘 하고 있다면 그 상태는 나무를 베기만 하고 새로 심지 않은 숲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숲은 더 이상 숲이 아닌 황무지로 변하겠지요.

 

지금이라도 윤석이가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서는 힘들 수 있으니, 시간을 내어 부모님께도 말씀드렸으면 해요. 가뜩이나 바쁜 분들께 짐을 더 얹어 드릴 것 같다고요? 시한폭탄이 되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폭탄의 피해자로 만드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자신을 우울하고 지치게 만드는 짐을 남과 나누어 질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말하고 싶어요, 문지현 박현경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9.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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