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이가 학교 가기 싫은 이유

 

선생님, 학교 폭력 문제도 상담할 수 있어요? 딱 한 번이기는 한데, 너무 무서웠어요.

제가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배웠거든요. 그래서인지 마음속에 항상 정의감 비슷한 게 있었어요. 저는 일진 애들이 참 못마땅하더라구요. 친구들 돈 빼앗고, 음란물 돌리고, 공부는 하지 않고 싸움질이나 해대고... 인간 쓰레기라고 생각했죠.

 

그날도 그랬어요.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나서 세수를 하려다 그 애들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친 거예요. 저는 경멸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봤죠. 그리고 그 애 옷에 물이 튀도록 세수를 했죠. 그냥 가더라고요. 속이 시원했고, 영웅이라도 된 것 같았어요.

 

그날 집에 가는데 집 앞 골목에서 그 녀석이랑 다른 애 둘까지 세 명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제가 태권도 유단자라 세 명 정도는 자신 있었고, 집 앞이기도 해서 기죽지 않고 녀석들을 노려봤어요. 녀석들은 씩씩거리기만 하더라고요. 이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다음날 학원 수업을 끝내고 늦게 집으로 가는데, 녀석들이 하나 둘씩 붙는 거예요. 한 열 명 정도 모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정신없이 맞았죠.

 

집에 겨우 왔는데 부모님은 주무시고 계셨어요. 게임을 하느라 안 자고 있던 형한테 당한 얘기를 했죠. 형은 태권도를 저보다 훨씬 더 잘하니까, 형과 함께 녀석들과 한판 뜰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잘 싸운다고 해도 두 명으로는 상대가 안 되잖아요. 그리고 녀석들은 다른 지역 애들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으니 결과야 뻔하지 않겠어요.

 

결국은 참기로 했어요. 얻어터진 흔적을 보고 놀라는 엄마 아빠한테는 친구들이랑 싸웠다고만 했어요. 그 후로 녀석들이 계속 신경 쓰여요. 학교 가기도 불안해요.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 봐서 친구들 사이에 끼어서 가요. 운동장 같은 데에서 녀석들과 마주치면 제가 먼저 눈을 깔아요.

 

이런 제 자신이 너무 비굴해요.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잘못 건드렸으니 당해도 싸다고?'

 

중학교 2학년인 승욱이는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몸과 마음이 고달픈 것 못지않게 주변에서 날아오는 이야기들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을지도 몰라요.

 

"사나운 아이들을 잘못 건드렸으니 당해도 싸지."

"넌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거야."

 

그럴듯하게 들린다고요? 아니요, 전혀 말이 안 됩니다. 폭력은 몸과 마음 모두에 큰 상처를 남기는 사건입니다. 승욱이가 이야기한 증상이 조금만 더 오래 지속된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정신적인 외상 후에 생기는 병입니다. 이것은 내가 직접 폭력을 당하지 않더라도 덩달아 위협을 받거나 남이 당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생길 수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강한 두려움, 무력감, 공포를 느낍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경험하는 중에 혹은 그 이후에 정신이 멍해지고 비현실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폭행을 당하던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고, 그 일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이나 장소를 피하게 되고, 불안은 갈수록 심해집니다. 승욱이가 언급한 증상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과 항상 겁에 질려 있는 모습, 얻어맞은 사람과 장소를 피해 다니는 모습이 다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상처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그러면 승욱이는 어떻게 이 상처로부터 회복할 수 있을까요? 어려운 말이지만, 승욱이에게 자신이 경험한 사건을 받아들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치유가 가능하거든요. 아마도 승욱이는 발끈하겠지요.

 

"받아들이라니 뭔 소리예요? 제가 안 받아들이기라도 한 건가요? 무슨 뜻으로 선생님까지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이렇게 힘든데 계속 생각하라는 뜻인가요?"

 

승욱이를 더 괴롭게 만들려고 받아들이라는 말을 했을 리는 없어요. 자, 그러면 여기서 받아들인다는 말의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내게 일어난 사건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런 일은 다 잊어버리자. 지나갔잖아. 괜찮아." 이렇게 말하면서 아무 일 없던 척하자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말이 안 되거든요. 이렇게 큰 상처를 어떻게 쉽게 잊겠어요? 지나갔다는 것도 틀린 말이죠. 지금까지도 공포에 떨고 있거든요. 괜찮다는 말은 더 엉터리예요. 괜찮지 않다는 건 누구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그러면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그것은 이미 일어나서 되돌릴 수 없는 그 일, 그게 나의 바람과 상관없이 내게 왔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고 마음 아프지만 그 일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일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스쳐 지나가게 하려면 후회를 포기해야 합니다. 자동적으로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 쉽겠지만요.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저랬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해 봐도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후회야말로 과거의 고통을 현재 진행형으로 반복하게 만드는 나쁜 습관입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힘들다면

 

주변 친구들이나 부모님, 선생님과 고통을 나누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상처는 아프고 흉터가 남을지도 모르지만, 여기에 머무르지 말고, 상처를 딛고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일 상처 투성이인 채 쓰러져 도저히 혼자 극복하기 어렵다면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도 좋습니다. 내 마음의 상처를 다독이는 것에만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폭력에 접근하는 것에도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지요. 학교 폭력에 강경하게 대처하는 다양한 방법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님과 의논하고 담임선생님께 상황을 알리는 게 좋을 듯합니다.

 

보복이 두려워 참겠다고요? 폭력은 한계치를 자꾸 넘어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갈수록 심한 폭력 상황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 봤자 참으라고 한다고요? 그렇다고 넘어가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학교 폭력이 심각한 문제라는 데에 사회적인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사회가 실제로 달라지려면 두렵고 힘들어도 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폭력 사건이 드러나면 학교 폭력 대책 위원회 등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하고 골치 아픈 여러 가지 과정이 나를 기다릴 겁니다. 지루하고 힘든 과정 때문에 내가 이걸 왜 시작했나, 긁어 부스럼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삶의 원래 자기 위치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두려움에 오그라든 어깨를 펴고 작은 목소리여도 좋으니 도움을 청해 보세요. 지금처럼 웅크린 채로 지내기에는 승욱이의 삶은 무엇보다 소중하니까요. 자신감 있고 적극적으로 살던 본래 자기 모습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말하고 싶어요, 문지현 박현경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9. 14. 20:56

 

시도 때도 없이 화가 나는 윤석이

 

선생님, 화가 나면 참을 수가 없어요. 요즘 제 별명이 뭔지 아세요? 시한폭탄이에요. 대충 짐작 가시죠?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어요. 오히려 화를 참는 편이었어요. 동생이 둘 있는데, 동생도 잘 돌본다고 부모님한테 칭찬도 많이 받았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동생 공부 봐주고, 설거지도 하고, 집안 청소도 하면서 바쁘게 지내 왔어요. 엄마 아빠가 다 일하셔서 저라도 도와 드려야 했거든요.

 

엄마는 고맙다는 말 많이 하세요. 지금 집안일을 배워 두면 나중에 장가 잘 갈 거라고도 하시죠. 그런데 그 말 들으면 오히려 화가 더 나요. 솔직히 다 필요 없으니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혹시 제가 화가 나고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 집안일이나 동생 돌보는 거랑 관련이 있는 걸까요? 그렇다고 해도 집안일을 한 게 하루이틀이 아닌데 요즘 들어 왜 갑자기 힘들고 짜증나는 걸까요?

 

집에서만 화가 나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도 그래요. 애들이 조금만 떠들거나 소란을 피워도 신결질이 나요. 그럼 소리를 지르고 말죠. 터뜨리고 나면 곧바로 후회돼요.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터뜨리지 않고는 못 견디겠어요. 참자니 돌아 버릴 것 같거든요. 이거 혹시 병인가요?

 

무거운 짐 때문에 불만스럽다면

 

올해 중학교 3학년인 윤석이는 얼굴빛이 잔뜩 흐려 있어 첫눈에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참을성 많다고 칭찬도 받았다는 윤석이가 지금은 왜 툭하면 화를 터뜨릴까요?

 

평상시에도 사소한 일에 성질을 내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화를 터뜨리는 청소년들이 늘어나, 최근에는 이를 병으로 진단하기까지 하는 추세입니다. 정신 의학적으로는 우울증과 비슷한 정서 장애로 보고 있지요. 겉으로는 화를 내고 있지만 사실은 우울하고 아픈 마음이 문제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화를 많이 내는 윤석이. 그렇게 뿜어 내는 분노로 누가 가장 크게 피해를 입을까요? 형의 도움이 필요한 동생들일까요? 큰아들을 믿고 집안일을 맡긴 엄마 아빠일까요? 윤석이에게 기대가 컸던 선생님일까요? 윤석이의 고함에 깜짝 놀란 친구일까요? 아닙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윤석이 자신입니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상담실을 찾은 것부터가 그렇다는 걸 말해 주지요.

 

윤석이는 내 것을 챙기기보다 늘 다른 사람을 돌보고 챙겨야 했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요. 동생들을 돌보는 것도 마땅하고 귀한 일이고요. 그렇지만 그것이 내 기쁨과 즐거움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우울하고 힘들어질 수 있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편하게 지내고 싶다는 윤석이의 말에는 마음이 짠해지기까지 합니다.

 

내가 가장 먼저 돌보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 즉 내 마음과 몸, 그리고 내 생활입니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은 채 해야 할 일만 늘 하고 있다면 그 상태는 나무를 베기만 하고 새로 심지 않은 숲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숲은 더 이상 숲이 아닌 황무지로 변하겠지요.

 

지금이라도 윤석이가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서는 힘들 수 있으니, 시간을 내어 부모님께도 말씀드렸으면 해요. 가뜩이나 바쁜 분들께 짐을 더 얹어 드릴 것 같다고요? 시한폭탄이 되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폭탄의 피해자로 만드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자신을 우울하고 지치게 만드는 짐을 남과 나누어 질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말하고 싶어요, 문지현 박현경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5. 9.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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