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아하는 일보다 잘하는 일을 해야 하는가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있다. 2009년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선천적 재능과 관계 없이 1만 시간 동안 꾸준히 노력하면 된다"고 주장한 법칙을 말한다. 누구든 하루 세 시간, 1주일 20시간씩 10년 동안 꾸준히 노력하면 빌 게이츠나 비틀스, 모차르트 등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들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미시간 주립대의 잭 햄브릭 교수 연구팀은 2014년 1만 시간의 법칙이 잘못됐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의 결론은 아무리 노력해도 선천적으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을 따라잡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노력과 선천적 재능의 관계를 조사한 88개 논문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학술 분야에서 노력한 시간이 실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비율은 4퍼센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공부에 재능이 없는 96퍼센트의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해도 공부 잘하는 재능이 있는 4퍼센트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음악, 스포츠, 체스 등의 분야는 실력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치는 노력의 비중이 20~25퍼센트였다. 어떤 분야든 선천적 재능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대가가 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결론이다.

 

2016년에는 이 같은 연구들을 반영한 '1만 시간의 재발견'이란 책도 출간했다. 미국의 비즈니스 브릴리언트 설문조사 결과도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부각시켜 주고 있다. 중산층의 70퍼센트는 돈을 많이 벌려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지만 부자들은 2퍼센트만이 "그렇다"고 응답했고 98퍼센트는 "잘하는 일을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응답했다.

 

물론 어떤 분야에서의 성과를 이루기 위해 매일 세 시간씩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세 시간씩의 노력이 당신이 잘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고 최고라는 명성을 떨칠 확률도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즐겨라. "좋아하는 일은 내게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잘하는 일은 더 나은 미래를 준다"는 말을 기억하면서.

 

이제부터는 "당신이 잘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 특별히 잘하는 일이 없다며 얼버무리지 마라. 재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든 면접관의 질문에든 다음과 같이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애완견과 대화를 잘합니다. 전 세계 그 누구보다 말입니다."

"청소를 세계에서 가장 잘합니다."

"라면 하나는 누구보다도 맛있게 끓입니다."

 

잘하는 일로 성공한 시니어들

 

빨래를 잘하는 비즈니스로 성공한 사람이 크린토피아 이범택 회장이다. 청소하는 일,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일 역시 세계에서 가장 잘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아니, 라면 끓이는 일은 세계가 아니라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가장 잘해도 성공할 수 있다. 전 세계가 아니라 당신의 가게 주변사람들만 당신을 찾아와도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는 것에 집중한 사람들이다. 피카소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잘하는 재능에 집중해야 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잠재적으로 같은 양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보통사람은 그 에너지를 여러 사소한 일에 낭비한다. 그러나 나는 내 에너지를 단 한 가지, 오직 그림에만 집중한다. 그림을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한 사람들 역시 잘하는 일을 한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3백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영국 버진그룹의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다. 그가 첫 창업한 회사는 잡지출판사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난독증 환자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잡지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난독증이 있어 좋은 기획서도 만들지 못하고 기사 편집도 못했지만 파는 것은 달인이었다. 즉 기획과 핀집은 잘하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자신은 잡지 파는 것에만 올인해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경영철학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다 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은 잘하는 일만 하고 나머지는 모두 관련 분야의 잘하는 전문가에게 맡긴다. '잘하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그를 3백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인으로 성공할 수 있게 해준 핵심역량인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특별히 잘하는 재능이 있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뿐이다. 당신은 어떤가? 잘하는 일, 또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다행이다. 이미 성공했거나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성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 전반전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는 일, 가장 잘할 수 있는 일과는 관계 없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부모가 못하게 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잘하는 일을 해야 그 분야의 최고라는 명성을 날릴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인생 후반전은 완전히 달라야 한다.

 

그렇다면 잘하는 일을 하면 모든 시니어가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잘하는 일을 하고 그 분야의 최고가 된다고 해서 모두 명성을 날리고 금전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공의 정의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어떤 분야에서 잘하는 경지에 올랐다면 이것 또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공의 척도를 금전적 성과와 연관지어 판단한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가령 잘하는 일이 오토바이 타는 것인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그 일로써 금전적 성공의 결실을 맺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토바이를 잘 타는 것으로 금전적 성취도 함께 이뤄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잘하는 일이 금전적 성취와 연계성이 높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따라서 금전적 성취와 연계성이 높은 잘하는 일, 또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 물론 금전적 노후준비가 잘된 사람은 관계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시니어는 금전적 성취와 연계성이 낮은 잘하는 일 역시 그냥 취미로 즐기는 것이 좋다.

 

잘하는 일을 한다고 모든 시니어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잘하는 분야의 경쟁이 치열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시니어가 잘하는 일이 무언가를 잘 파는 것이라고 해보자. 그가 잘 파는 것에 자신이 있어서 보험이나 자동차 세일즈를 시작한다면 과연 많이 팔 수 있을까? 연고관계가 있는 인맥을 활용할 수 있는 1년 정도의 기간이 지나서도 잘 팔 수 있을까? 영업인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가 자신의 경쟁자들보다 더 잘 판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즉 그보다 잘 파는 경쟁자들이 많다면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잘하는 일도 남들이 안 하는 분야, 경쟁이 너무 심하지 않은 분야가 가치를 만들어내거나 성공하기 수월하다는 것이다.

 

특별히 잘하는 일이 없는 당신에게

 

그렇다면 특별히 잘하는 일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10대와 20대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지만 50~60대에도 제법 있다. 직장에서 주로 사무직, 관리직 부서에만 근무한 사람들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미국의 대표적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에 의하면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는 "나는 특정 영역에서 나보다 탁월한 사람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났다"고 말했다. 글로벌기업 IBM의 창업자 토마스 왓슨도 에머슨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는 "나는 천재가 아니다. 하지만 특정한 분야에서는 뛰어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하는 분야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렇다. 누구나 특정 분야에서는 천재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이 잘하는 일,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올인하라. 인간 욕구의 5단계설로 유명한 심리학자인 매슬로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인간이 가진 재능에 대해 "우리가 가진 재능은 쓰여지기 위해 아우성치고 있다. 우리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때만 이러한 내면의 아우성을 잠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에머슨과 왓슨, 매슬로의 주장을 체계화한 사람이 하버드대 발달심리학 교수 하워드 가드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언어, 음악, 논리-수학, 신체운동, 대인관계, 자기성찰, 자연친화" 지능 중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재능을 갖고 출발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왜 재능을 못 썼을까? 인생 전반전에는 부모의 강압 내지 권유, 가족 부양이라는 굴레 때문에 못 썼을 수도 있고 안 썼을 수도 있다. 아니,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당신이 상상도 못할 거대한 재능이 당신 안에 숨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거대한 힘은 쓰여지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니 잘하는 일이 없다고 도전도 하지 않은 채 포기하지 말고 다양한 시도를 해봐라.

 

하워드 가드너 교수의 주장처럼 자신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재능을 깨워야 한다. 앞에서 소개했던 81세에 그림 그리기를 배워 화가가 된 미국의 리버맨, 92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일본의 100세 시인 시바타 도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부딪쳐봐야 한다. 시나 에세이, 소설도 써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작곡도 해보고, 요리도 해봐야 한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당신의 내면에 헤밍웨이를 능가할 재능이나 최고 요리사가 될 엄청난 재능이 숨겨져 있을지. 그렇게 부딪쳐보면 분명 당신이 가장 잘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와 스승, 성공한 선배 등 훌륭한 멘토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인생 후반, 어디서 뭐하며 어떻게 살지?_ 이성동 김승회

by 미스터신 2017. 12. 24. 18:49

 

"누가 비범한가?라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어디에 비범성이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_ 하워드 가드너 교수

 

2013년 5월, 그해 미국 IT 업계에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청년이 만든 소셜네트워킹사이트인 텀블러가 야후에 11억 달러, 한화로 약 1조 2276억 원에 인수되었다는 사실이 발표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 이후 미국 IT 업계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이 청년의 이름은 바로 데이비드 카프. 그는 '제2의 페이스북 신화'라는 평가와 함께 26세 나이에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한다. 사람들은 20대에 갑부가 된 그를 저커버그와 비교하곤 한다. 하지만 카프가 학교를 그만둔 것은 저커버그보다도 어린 나이, 고작 열다섯 이었다.

 

부모의 강점 중심 교육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자주 이용하는 소셜사이트라고 언급한 텀블러. 오바마가 카프와 함께 찍은 재미있는 '움짤(움직이는 사진)'은 백악관 공식 텀블러 계정에 올라와 온라인상에서 한동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국인에게 다소 생소한 텀블러는 어떤 사이트일까? 텀블러는 2007년 문을 연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마이크로 블로깅 사이트로, 트위터와 블로그의 장점만을 모아 서비스한다. GIF 애니메이션(움짤) 만들기 기능을 제공하고 모바일에서 글, 사진, 동영상 등을 손쉽게 올리고 공유하는 기능 덕분에 미국의 10~20대로 하여금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등지게 하고 있다. 정식 한국어 버전을 지원하지 않던 2013년에 이미 국내 SNS 유입률 1위를 달성했으며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3억 명이 넘는다.

 

이런 텀블러를 만든 카프는 1986년 뉴욕 맨해튼에서 영화음악 작곡가인 아버지와 과학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카프의 부모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의 부모처럼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어린 카프가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고 하면 음악수업을 받도록 했고 로봇을 만들고 싶다고 하면 보스턴에서 열리는 MIT 로봇 경연대회에 직접 데리고 갔다.

 

그리고 마침내 열한 살 때 그는 운명처럼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접하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컴퓨터 관련 서적을 사주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줌은 물론 당시에는 상당히 고가였던 애플 컴퓨터까지 사주며 아들의 흥미를 더욱 북돋아주었다. 불타는 열정을 갖고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카프는 전문 프로그래머의 실력을 갖춘 뒤 이웃에 있는 회사들의 웹사이트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카프가 열네 살 때 카프의 어머니는 자신이 가르치는 한 학생의 부모가 애니메이션 회사의 경영자라는 것을 알고 아들을 그 회사에 인턴으로 보냈다. 카프의 재능을 알아본 경영자는 사내 프로젝트에 바로 그를 투입시켰다. 카프는 컴퓨터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났고 천부적이 타이밍 센스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는 몇 년 뒤 카프가 만든 텀블러에 투자해 텀블러의 이사가 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카프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막연하게나마 MIT에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학교는 너무 따분했고, 방과 후에는 집에 돌아와 밤새 방 안의 컴퓨터에만 붙어있었다. 카프는 점점 은둔형 외톨이처럼 되어갔다. 운동이나 여자친구를 더 좋아할 나이에 컴퓨터에 빠져 있는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머니는 속상해하거나 아들을 꾸짖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결단을 내린다. 그것은 어느 부모도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

 

"너는 컴퓨터에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학교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렴."

 

자녀에게 고등학교를 그만두라고 권유할 한국의 부모가 있을까? 카프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부모는 아마도 이렇게 설득하고 강요했을 것이다.

 

"고등학교도 안 나오면 취업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니? 낙오자가 되는 거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공부해. 대학은 졸업해야지!"

 

이런 말을 들은 자녀는 사회와 부모가 원하는 길로 힘없이 자신의 방향을 바꿀 것이다. 하지만 카프의 어머니는 아들의 강점이 무엇인지만 관찰했다. 학교와 사회의 틀에 아들을 끼워 맞추기보다는 자유롭게 고유한 재능을 키울 수 있는 진짜 교육을 시키고 싶었다.

 

컴퓨터에 마음을 뺏겨 밤을 새는 아들을 지켜봤어요. 카프가 자신의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것은 다름 아닌 컴퓨터였습니다. 컴퓨터와 관련된 모든 것이었죠.

 

카프는 그날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제안이 너무 뜻밖이라 카프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컴퓨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자퇴를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남다른 교육방식 덕분에 아무 제약 없이 오롯이 자기가 좋아하는 컴퓨터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때 그의 나이 열다섯이었다.

 

카프는 자퇴 후 3년간의 홈스쿨링을 통해 몇 명의 선생님과 함께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에만 매진했다. 그때 배운 일본어 덕분에 열일곱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인공지능 로봇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서 실력을 다질 수 있었고, 이때부터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카프는 몇 달간 경험을 쌓은 후 뉴욕으로 돌아와 스타트업 회사였던 어번베이비에서 수석프로그래머로 일한다. 이곳에서 일하게 된 계기 역시 카프의 뛰어난 실력 덕분이었다. 당시 어번베이비는 기술적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마감까지는 겨우 48시간만이 남아 있었지만 해결 방안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카프의 지인이 카프를 이 회사의 경영자에게 소개했고, 그는 4시간도 안 되어 문제를 해결했다. 덕분에 그는 열일곱살이라는 나이에 수석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었다.

 

이후 어번베이비가 씨넷에 매각되면서 자신의 수중에 수십만 달러가 들어오자 카프는 드디어 기다리던 도전을 시작한다. 친구들이 대학에 들어갈 나이에 컨설팅 회사이자 자신의 첫 회사인 데이비드빌을 창업했고, 이 회사를 경영하면서 나온 아이디어로 투자를 받아 텀블러를 창업하기에 이른다. 직원은 단 한 명, 사무실은 어머니의 아파트였다. 카프의 어머니는 아들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아파트를 뛰어다니며 이렇게 외쳤다고 회상한다. "엄마, 이런 게 있어요! 이런 게 있어요!"

 

매혹적인 디자인과 편리한 사용성 등 젊은 세대가 원하는 기능을 갖춘 덕분에 텀블러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2주 만에 7만 5000명의 사용자를 끌어들이며 대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총 1억 250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2011년에 버진 그룹의 회장 리처드 브랜슨등 여러 곳으로부터 85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젊지만 탄탄하게 다져진 실전 경험과 실력을 갖추고 21세에 카프가 시작한 작은 스타트업 회사는 5년 만에 26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미국 IT 업계의 선두회사로 눈부시게 도약했다. 이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오로지 한 분야에만 매달린,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분야에만 매진할 자유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구글 부사장에서 야후 최고 경영자로 전격 발탁된 뒤 텀블러에 끊임없이 구애했던 마리사 메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카프는 이 세대의 전설이 될 거예요.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바꾼 기업가로서 말이죠.

 

'창의성'이라는 선물

 

저커버그가 '공유'라는 가치를 우리에게 선물했다면 카프는 '창의성'이라는 선물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유튜브에는 동영상만 올리고, 플리커에는 사진만, 트위터에는 140자 이내의 글자만 올려야 한다는 규제가 답답했다. 우리가 무심코 당연히 여겼던 규칙을 그는 '억제'라는 문제점으로 인식한 것이다. 창의성은 문제를 인식하는 능력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배울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이런 사이트들이 소통, 공유방식을 바꾸어놓긴 했지만 강요와 규제로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창의성을 놓쳤다고 말한다. 학교가 강요와 규제로 일관된 틀에 학생들을 집어넣으면서 창의성을 빼앗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카프는 사용자들이 웹에서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표현하게끔 만들고 싶었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쉽게 만들 수 있도록 개발된 텀블러였기에 창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특히 자기를 표현하기 좋아하는 십대들의 텀블러 이용자 수는 페이스북을 넘어섰다.

 

그가 얼마나 창의적인 제품을 만드는 데 집착했는지는 과거 텀블러 창업 시절 카프가 뽑았던 첫 직원이자 유일한 직원이었고, 지금은 인스타페이퍼 창업자가 된 마코 아먼트에게서 들을 수 있다. 그는 카프가 오직 텀블러 개발에만 집중한 워커홀릭이었으며, 초창기에 '투자를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걱정스럽게 말이라도 꺼내면 '제품에 집중하면 돈은 당연히 따라온다'며 일축했다고 회고한다. 동시에 그는 "나는 카프처럼 제품 지향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딱 한 사람 봤는데, 바로 스티브 잡스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카프는 팔로어 숫자를 공개하는 트위터에 대해 "팔로어가 몇 명인지, 몇 개의 글을 올렸는지 공개하는 트위터는 단순히 숫자로 사용자 가치를 평가한다." 라며 일침을 가했다. 인기와 영향력을 얻기 위해 사용자들은 양질의 것보다 자극적이고 가벼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마치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에는 문화가 깃들어 있지 않다."고 비난한 것처럼, 성공 그 자체보다는 사용자 가치를 우선시하는 카프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학교 안에 꿈을 묶어두지 마라

 

한국고용정보원이 2014년 11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00인 이상 기업의 신입사원 평균 연령은 남성은 33.2세, 여성은 28.6세라고 한다. 정규직을 얻기 힘들다 보니 스펙 쌓기 등 취업준비로 졸업을 미루거나, 기존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몇 군데를 거쳐 직원 100인 이상의 기업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취업을 위해 대체 무엇을 33년간이나 배우고 있는 걸까?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초,중,고에서 똑같은 과목을 배우고, 대학에서는 모두가 원하는 회사를 가기 위해 다시 똑같은 취업준비에 매진해온 우리를 보자. 일일곱에 사회로 뛰어들고 스물한 살에 창업해, 불과 스물여섯 살에 자신의 아이디어로 만든 소셜미디어로 억만장자가 된 카프와 비교해보면 너무나 한심한 상황이 아닌가?

 

심리학자 엔더스 에릭슨은 무슨 일이든 10년을 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10년의 법칙'을 주장했다. 카프는 열한 살때 재능을 발견했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부모 덕분에 10년 후인 스물한 살에 과감히 창업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부모가 자녀를 일찍 성공시키기 위해 학교를 자퇴시키고 사회에 내보내야 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다만 아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끔 해주는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만큼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프는 자퇴를 결정하게 된 이유를 첫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명확했고 둘째, 학교에서는 그것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아이에게 재능이 있는데 학교가 그것을 채워줄 수 없는 환경이라면 부모는 지혜와 통찰력을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의 잠재력과 재능은 뒷전인 채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과목은 다 배우고 잘해야 한다거나, 대학은 꼭 나와야 한다는 등의 고정관념에만 매달려 있다. 부모의 맹목적 믿음에 사로잡힌 아이들은 꿈에 대해 고민하기는커녕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에도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몰아갈 뿐 아니라 밤늦게까지 원하지도 않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로봇으로 만들고 있다. 깨어있는 부모가 도와준다면 자녀는 자신만의 고유한 색으로 더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하워드 가드너도 "누가 비범한가? 라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어디에 비범성이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카프의 성공 스토리는 아이가 원하는 것이 학교 밖에 있음에도 교실속에 아이의 꿈을 묶어 두고 있을 많은 부모에게 질문을 던진다. 1등 하는 아이만 비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장 소중한 당신 아이의 비범성은 어디에 있는가?

 

학력파괴자들_ 정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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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6. 5. 2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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