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전문가 집단이 잘못해서 특수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고 상담을 오히려 거부하게 만들었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기지촌에서 영화작업하는 친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전문가 집단뿐 아니라 시민사회 집단도 기지촌에 있는 성매매 여성들을 마치 증언기계처럼 다뤄서 생기는 문제들이 있다고요. 그러니까 피해자의 목소리와 실상을 알려서 그들을 돕겠다는 선량한 의도가 있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매순간의 만남에서 한사람을 한사람으로 배려하고 존중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할 텐데요. 전문가들이 피해자 혹은 내담자들을 어떤 방식으로 손쉽게 대상화하고 또 어떤 실수를 빈번하게 저지르는지를 얘기해주시면 많은 분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듯합니다.

 

정혜신

 

피해자들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이건 하지 말아야 한다 하는 것들이 있겠지만, 저는 그것이 근본적으로는 욕망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현장에 들어간다는 것이 전문가에게는 일종의 스펙이 될 수 있거든요. 세월호 현장에서도 많이 느꼈지만, 이렇게 주목받는 현장에서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서 얻은 콘텐츠가 있다고 하면 그 집단 내에서는 그게 권력처럼 여겨지는 거예요. 단원고에 가서 보니 학교 교사들, 교육청 장학사 등등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서 '내가 어떤 전문가인데 무슨 치료를 해줄 수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 하는 제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와서 교사들이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거예요.

 

제게도 그런 연락이 많이 오고요. 물론 선한 의도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스펙을 쌓기 위해서나 자신의 인정욕망 때문에 오는 사람도 더러 있는 것 같아요. 실은 제 안에도 그런 욕망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걸 인정하고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경계해야 하는 거예요. 그 성찰이 잘 되지 않거나 자신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이 생기고, 무엇보다 피해자를 대상화하게 되는 거죠.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봅니다.

 

특히 고문피해자들처럼 오래된 트라우마를 지닌 분들은 그동안 그분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논문도 많고 프로젝트도 많아서 그럴 때마다 자신들의 상처만 들쑤셔지고는 금방 버려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상담할 때 처음에는 엄청 어려움이 많았어요.

 

또 내 이야기만 듣고 검사 몇가지 하고 가는 거 아니냐, 당신도 똑같지 않으냐는 거죠. 그건 피해의식이 아니라 피해 경험 때문인 거죠. 상담에 대한 심리적인 저항일 뿐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전문가 집단이 잘못 접근하면 자신들의 고통이 대상화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사실 이런 성찰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자원봉사는 댓가 없이 하는 활동이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자신의 그런 욕망을 인정하기가 더 쉽지 않은 거죠. 그래서 댓가 없는 일을 할 때 더 치열한 성찰과 자기검열이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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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보면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상담대학원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살면서 가족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고, 아이를 기르면서도 힘든 일이 많아서 마음에 상처를 입었는데 잘 풀리지가 않으니까, 자신의 그런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동기 때문에 상담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거죠. 그래서 학교에서 온갖 이론을 배우고 기법을 배우는데, 이게 맞지 않는 교육이에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10퍼센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상심리학이 아니라 90퍼센트를 해결하기 위한 정상심리학, 적정심리학인데 10퍼센트를 위한 공부만 하는 거잖아요. 그것도 아주 기술적으로요. 그런 교육을 받고 학위를 따고 자격증을 따봐야 스스로에게 도움도 안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어요.

 

'와락'에 와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또다른 자원봉사자를 만나서 결혼한 사십대 초반의 치유활동가가 있어요. 이 사람이 회사원인데 일이 너무 재미없고 보람도 없고, 자기가 너무 무의미하게 사는 것 같대요.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제가 대학원 대신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프로젝트와 상담학교를 제안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나서 직접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안산에서도 하고 강남구에서도 하고 일주일에 나흘씩 그렇게 열심히 해요. 그러다보면 사람들이 달라지는 걸 눈으로 보게 되잖아요. 평생 이런 느낌을 주고받으면서 살아본 적이 없는데, 그 경험이 너무 좋다고 해요. 대단한 이론이 아니라 몇가지 근본적인 것만 가지고도 실제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 보니까 놀라운 거죠. 그것이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입니다. 복잡한 기술이나 기법이 아니라 이런 적정심리학을 구현하는 것 말이죠. 그래서 나중에는 그런 적정심리학의 근본적인 것들을 잘 정리해보고 싶어요.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정혜신 ◎ 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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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5. 8. 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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