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평균수명 80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평생 적어도 40년은 일을 해야 한다. 대개 20대 중후반에서 60대 후반까지는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셈이다. 그래도 남은 노년이 20년 이상이나 된다. 그렇다면 100세 시대를 살게 될 우리 자녀들은 과연 평생 몇 년이나 일을 해야 노후를 무사히 보내게 될까? 아마 부모 세대보다도 최소한 10년은 더 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적어도 50년간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자녀가 직업(진로)을 선택하는 일은 그 자녀의 인생의 절반, 황금기의 전체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런 인식도 없이 오로지 당장 레벨이 좀 더 높은 대학에 진학하는 데만 목을 매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이른바 남들이 알아주는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을 최고의 보람과 자랑으로 삼고 있다는 말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방치하거나 깨닫지도 못한 채로.
인생의 목적이 대학일 수는 없다. 남들이 알아주는 일시적인 과시일 수도 없다. 어떤 직장이나 직업 자체일 수도 없다. 그 모든 것은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수단이자 과정일 뿐이다. 인생의 목적이 서야 비로소 그 적절한 수단들을 조합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네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들의 인생 목적에는 관심이 없고 온통 수단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선후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공부만 잘하면 버릇이나 예의가 없어도 괘념치 않고, 오로지 부와 명성만을 거머쥐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 뿐이다.
인생의 목표 또는 목적이 먼저 서야 평생 후회하지 않고 종사할 직업을 찾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다. 의사나 변호사가 안정된 직업에다 명예도 높고 돈을 많이 번다니까 다들 법대나 의대를 보내느라 난리다. 재벌 대기업에 취직하기 유리한 명문 경상대학에 보내느라 혈안이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의시나 변호사에 관심은 있는지, 조직생활에 맞기는 한지, 다른 더 특출한 재능은 있는지 하는 것 따위는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딱 맞는 일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일단 되어 놓고 거기에 맞춰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말한다. 너도 사회에 나가 철이 들면 부모 말이 옳다는 걸 깨닫게 될 거라고 열변한다.
그러나 진정 당신의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지금까지의 그런 생각은 잠시 멈추고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기를 바란다. 우리 부모들에게 혜민 스님이 전하는 말 한마디만 음미해보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노후에 고생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직 오래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노후 30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인생의 행복이 결정되는 것 같다. 그러니 짧게 보지 말고 길게 보며 아이의 장래를 결정하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당장 중간고사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몇 백배는 더 중요한 일이다. _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우리나라 학사체계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이과/문과로 구분해 진로의 큰 줄기가 갈라진다. 대다수가 대학 전공도 자신의 적성을 모른 채 결정하는 현실에서 고등학교 2학년부터 진로를 선택한다는 것은, 이과/문과의 구분 자체가 학문적으로 모호하다는 점은 놔두고라도 불합리한 일이다. 자신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대학 진학에 이과가 유리한지 문과가 유리한지를 따져서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처럼 자신의 적성과 진로가 아니라 대입에의 유리/불리를 기준으로 선택하는 이과/문과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교육현장에서의 실태가 이러한데도 이 오래 묵은 '고2 문과/이과 선택'제도는 여전히 건재하고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필자 역시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갈 때 이 제도 앞에서 막막했다. 이때 나는 누구에게서도 이과와 문과의 명확한 차이를 듣지 못했다. 더욱이 내가 어떤 부분에 재능이 있는지, 무엇을 전공할 것인지, 진로에 대한 어떤 방향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이과를 선택했다. 왜 이과를 선택했는지조차 기억에 없다. 이과를 선택했으니 대학 전공 역시 자연계열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수능을 보고 점수에 맞는 학과를 고르다 보니 생물학과를 선택했다. 생물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관련 분야에 취업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취업준비도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먼 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회생활하며 느낀 것이지만 필자는 자연계열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인간이다. 생물학자가 되지 않는 한 생물학이 내 사회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생물학을 전공했다고 하니까 여자친구가 툭 하면 "자기야, 저 꽃 이름이 뭐야?" "저 나무 이름은 뭐야?" 하며 물어대는 통에 진땀만 빼야 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그랬다. '너도 모르는데 내가 어찌 알겠니?'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다시 했다. 성인이 되어서야 내가 어떤 것에 재능이 있고, 호기심이 깊고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도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다. 그 배움의 황금기를 내게 맞는, 그러니까 내 꿈(인생의 목표)과 직결된 분야를 공부하며 보냈다면 지금의 나의 삶이 훨씬 풍부해져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나는 내 아이들만큼은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이들이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2015년 현재 중학교 1학년생이 고교생이 되는 2018년부터 고교에서 문과/이과 계열 구분이 사라지는 등 교육과정이 개편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정권교체에 따라 수시로 바뀌고 교육부장관이 바뀌면 또 바뀐다. "교육 백년대계"는 말뿐으로, 현실은 오년대계도 못된다. 이것이 교육을 망치는 주범 가운데 하나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공계 출신의 취업이 힘들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이미 수년 전부터 상황이 역전되었다. 취업시장에서 이공계 출신이 각광받는 가운데 인문계 출신은 갈 데가 없어진 것이다. 대학에서는 인문 관련 강의가 속속 폐강되고 있고, 관련 학과마저 정원이 대폭 축소되거나 아예 폐지되는 곳도 속출하고 있다. 그에 따라 인문 관련 출판시장도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산업지도의 변화에서 비롯한 지각변동이다. 먼저 새로운 일자리 자체가 이공계 분야를 중심으로 파생, 확산되고 있는 반면 인문계 분야의 일자리는 빠르게 축소되고 있는 추세다. 또 주로 인문계 전공자들의 일자리였던 기획, 관리, 마케팅 분야가 고도로 자동화됨으로써 채용 인원 또한 대폭 줄어들며 이공계 출신들도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 인문계 자원은 남아서 넘쳐나는 가운데 이공계 자원은 없어서 못 뽑는다고 기업들이 아우성이니, 앞으로 이공계 쏠림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문학의 융성 없이는 과학의 발전도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는 데에 있다. 인류문명 발달의 원천은 인문학에 있다는 사실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는 바다. 그래서 걱정이다.
취업 포털사이트 인크루트는 대학 4학년 졸업예정자 3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6명이 여전히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중 절반이 진로를 정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자신의 적성과 흥미가 무엇인지 잘 몰라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미 진로를 정한 4명은 '자신의 적성과 흥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서 진로를 정했을까? 그중 절반 이상이 적성과 흥미에 상관없이(혹은 모른 채로) 진로를 정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대학 졸업을 앞둔 청년들 절반 이상이 그때껏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교생으로 내려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과 소질도 모른 채 학과를 선택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더구나 일단 좀 더 레벨이 높은 대학에 들어가고 보자는 식의 입시경쟁이 만연한 가운데 설령 자신의 적성과 소질이 뭔지를 안다 한들 그런 것이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현실이니, 이래저래 우리의 교육은 아이들의 적성이나 소질과는 거의 무관하게 되고 말았다. 아이들이 타고 갈 인생 버스의 종점을 SKY로 생각한 부모들의 욕심과 착각이 이런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대학입시에서 전공학과보다는 대학의 레벨을 우선해온 관행은 역사가 깊다. 우리 사회의 보여주기식 성과주의의 폐해다. 필자가 알고 지내는 한 선배는 지방 명문고 출신인데, 어느 술자리에서 고3 때 대학입시에 얽힌 비극을 전했다. 그때도 학교의 평판이나 교사의 능력이 서울대를 비롯한 SKY에 몇 명 보내느냐로 가름되었는데 특히 학력고사 300점 이상 몇 몇, 서울대 진학 몇 몇은 전국 고등학교 랭킹을 매기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담임선생님들이 '서울대 많이 보내기'를 진학지도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원래 의대에 뜻이 있어 점수에 맞춰 Y대 의대에 가려는 학생을 강압하여 서울대 수의과대로 보내고, K대 경영대학에 가려는 학생을 강압하여 서울대 농대에 보내는 식으로 서울대 진학률을 2퍼센트나 더 올린 결과 그해 전국 톱을 차지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강압에 의해 서울대에 간 그 학생들 대부분이 결국 휴학이나 자퇴를 하고 다시 대입을 치러 이듬해 자신이 원하는 학과를 찾아 갔다는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요즘에는 이런 식의 강압은 없을지 모르지만 대학의 레벨에 우선순위를 두고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는 짜 맞추기는 여전하다. 자신의 적성이나 소질에 따른 인생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입이 끝나면 많은 학생들이 노량진 고시학원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전공은 전공일 뿐 자신의 진로와 무관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대학을 졸업하고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전공을 전혀 살리지 못하게 된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기업에서도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무슨 전공을 했으니 업무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를 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러니까 대학은 소질을 계발하고 전공을 연마하는 장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위한 간판으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연고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좀처런 개선되기 힘들 것이다.
전국 초중고 교장, 교감의 97%가 '학교현장에서 노동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교육은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행위 또는 그 과정" 이라 정의된다.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주는 것이다.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것의 활용을 통한 사회적 기여다.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교육은 장기간 이루어지고 있지만, 익힌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는 장에 대한 교육은 전무한 실정이다.
성년인 대학생들조차 대부분 직업의식과 직업관이 바로 서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취업한 뒤에 대부분 새롭게 가르쳐야 한다. 김정일 교수(한국노동교육원)의 조사에 따르면, 가장 비중 있게 다뤄야 할 노동교육으로 직업의식과 직업관(39.7%)이 꼽혔고 노동의 가치관과 윤리(35.7%), 노동문제의 이해와 해결(9.0%), 노사관계의 특징과 본질(7.9%)이 뒤를 이었다.
필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제안하고 싶다. 적잖은 이들이 직업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정보 없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야 다급한 마음에 직장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이 희망하는 직업을 선정해 놓고 그 직업에 필요한 계발을 꾸준히 실행하여 그 직업을 실현할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아니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먼저 직업을 정하고 그에 맞춰 직장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일반적인 직업 선택 기준은 사회 통념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의 규모, 연봉과 복지, 안정성 등 몇몇 통념이 대다수에게 기준이 되어 버린다. 인간은 제각기 기질과 역량(소질)이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통념만으로 개개인에 맞는 직업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가장 큰 모순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결정하지 않고 일할 장소를 선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업관을 갖고 일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무리다.
미국과 덴마크의 경우,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 내 진로지도 프로그램을 통해 직업 탐색, 진로 계획에 대한 교육을 하고, 개인별 진로계획 기록부를 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학생의 진로 선택을 위한 정보를 제공, 판단, 권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 많은 선진국들이 중등기간 중 직업현장 체험을 의무화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2004년 9월부터 14~16세 모든 학생들이 '일 관련학습'을 경험해야 하는 것을 법률상 필수요건으로 규정했다. '일 관련학습'은 일에 관한 체험을 통한 학습, 일 또는 직업 활동에 관한 학습, 일에 필요한 스킬의 학습 등 일과 일에 유용한 지식, 스킬, 이해를 개발하기 위해 일과 관련된 상황을 이용하는 계획된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이 일을 통해 배우고, 일에 관해 배우며, 일을 위해 배울 수 있도록 강조하고 있다.
핀란드는 '직업생활 소개기간 TET'을 교육과정 일부로 두어 8~9학년과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실제 작업현장에서의 직업생활에 관한 경험을 갖게 하고 있다.
프랑스는 교과과정을 통해 '발견 과정', '직업세계 발견'과 같은 교과목을 학습하고, 비 교과과정을 통해 '기업체 견학활동'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 밖에 독일은 지역고용안정센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학생들에게 진로상담을 제공하거나,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고, 덴마크는 7~9학년 학생에게 의무교육 기간 이외 1~2주 가량의 직업체험 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출처 : 비전진로교육 연구소 김희수,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로정보센터 진미석 선임연구위원, 인용 및 재조합)
우리나라도 최소한 초등학교에서 이런 직업교육과 경제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맹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고 공부만 하라고 하는 방식으로는 창의적인 인재, 주체적인 인간을 육성할 수 없다. 이론적인 지식과 실용적인 지식을 병행할 때 비로소 교육의 본 의미가 살아날 것이다.
우리 아이 진로 찾아주기, 오평선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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