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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13 장점만 바라보면 장점이 더 커진다_ 김상운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당시 우리를 몹시도 괴롭히던 못 말리던 문제아가 있었다. 그는 늘 칼을 갖고 다녔다. 그 칼은 칼집에 접어 넣으면 7~8센티미터 정도의 길이였지만, 펼치면 배로 늘어나 아이들에게는 섬뜩한 인상을 줄 만했다.
망나니 친구는 그 칼을 갖고 다니며 수시로 이리저리 던지곤 했다. 특히 아이들이 필기하려고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으면 불시에 나타나 손 주변에 칼을 홱 내리꽂았다. 그리고 기겁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 친구와 5년 동안 줄곧 같은 반이었다. 등교할 때면 그 친구 얼굴이 떠올라 발길을 돌리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가 멀리 다른 학교로 전학 가버리거나 아예 이 세상에서 제발 싹 꺼져버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선생님들도 그를 아예 내놓은 자식으로 취급했다. 교실 창문이 깨지거나 누군가 코피가 터지면 선생님들은 대뜸 이런 말부터 던졌다.
"또 네가 그랬지? 너 말고 그런 짓 할 사람이 누가 있겠니?"
그는 1학년 때부터 줄곧 그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나 그저 그가 말썽만 부리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그가 매일 점심을 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그의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도 아무도 몰랐다. 그의 얼굴이 시퍼렇게 멍든 채 나타나도 아무도 몰랐다. 그가 또 누군가와 싸움을 벌였으려니 했다.
그런데 5학년 담임선생님은 달랐다. 어떻게 알았는지 망니니 친구가 점심을 거른다는 걸 알고 도시락을 따로 챙겨왔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매일 챙겨왔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나자 친구가 변하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어느 날 그가 또 창문을 깼다. 우리는 벌벌 떨었다. 선생님은 인자했지만 잘못에 대해선 몹시 엄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망나니 친구 대신 벌을 뒤집어써야 할 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전원이 단체기합을 받아야 할 게 뻔했다. 드디어 선생님이 교실에 나타났다.
"깨진 유리창 빨리 치워."
선생님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뒤 망나니 친구를 따로 불러 말했다.
"창문이 깨졌지?"
과거 선생님들은 으레 "또 네가 그랬지?" 라고 했었다. 하지만 5학년 담임선생님은 "너"를 지칭하지 않고 "문제"만을 지적했다. 그리고 말없이 이 고개를 푹 수그린 그의 손을 슬며시 잡고는 미소만 짓는 것이었다. 잠시 후 선생님이 말했다.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바라는 게 뭐지?"
친구가 잠시 후 모기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이 제 아버지였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친구의 다른 면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가 땅바닥이나 종이쪽지에 그림을 끼적거리는 걸 보고 그림에 흥미를 갖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우리는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친구에게 "넌 미술에 소질이 있구나"라고 말하는 걸 자주 들었다.
선생님은 그의 재능을 꿰뚫어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선생님의 칭찬이 없던 재능을 만들어낸 것일까? 친구의 그림 실력은 정말 나날이 좋아졌다. 그림에 취미를 붙이자 서서히 다른 과목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적이 일어났다. 친구가 남을 괴롭히는 일이 싹 사라진 것이다. 5년 내내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칼도 자취를 감췄다.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친구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1년 후 졸업식 날, 그 친구는 최우등상을 받았다. 모든 선생님이 '이 아이는 구제불능이야' 하고 바라보자 그는 정말 구제불능의 망나니가 됐다. 하지만 그 담임선생님이 '이 아이에게도 숨겨진 재능이 있을 거야'라고 바라보자 정말 숨겨진 재능이 튀어나왔다.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소년이 있었다. 공부도 못하고 친구들과 뛰어놀지도 못했다. 늘 교식 구석에 틀어박혀 어서 수업이 끝나기만 기다리는 게 하루 일과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는 일이 벌어졌다.
"야! 교실에 쥐가 나타났다!"
삽시간에 교실은 난장판이 됐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쥐를 잡기 위해 난리를 떨었지만 아무도 그 쥐가 어디 숨어 있는지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모두 체념하고 있을 때 조용히 앉아 있던 소년이 외쳤다.
"선생님, 그 쥐는 지금 벽장 속에 숨어 있어요."
모두가 단단히 준비를 갖춘 채 벽장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쥐는 쉽게 잡혔다. 선생님이 그를 불러 칭찬했다.
"너에겐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 있구나. 네 귀는 정말 특별하구나!"
이 한 마디가 소년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유일한 강점을 키워나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적인 팝 음악가로 성장했다. 앞이 안 보였던 스티비 원더의 이야기다. 한 가지 강점만 파고들다 보니 그 강점이 점점 커져서 모든 약점을 완전히 뒤덮고도 남았던 것이다.
빌 게이츠는 직원들을 뽑을 때 학력을 보지 않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한 가지만 본다고 한다. 그건 바로 창의력이다. 그리고 이렇게 선발된 직원들에게는 최고의 근무환경을 만들어주고, 능력보상제도인 스톡옵션도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행한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입사한 사람들 중 2천 명 이상이 2년 만에 백만장자가 된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주당 80시간 이상의 격무에 시달리지만 불평 한 마디 없이 근무한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학력과 창의력과는 큰 관련성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들은 하버드나 예일 등 명문대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평범한 대학에서 오히려 더 많이 배출된다. 2007년 이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미국인 25명의 학력을 보면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 MIT 등 알려진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은 여덟 명뿐이다. 나머지는 안티오크 칼리지, 워싱턴, 드포우, 켄터키 유니온, 홀리크로스, 헌터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 출신들이 많다. 노벨화학상은 어떨까? 역시 명문대 출신은 예닐곱 명 정도다. 나머지는 네브라스카, 베레아, 아우스버그, 호프 등을 졸업한 사람들이다. 사정은 일본도 마찬가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열 다섯 명 중 열 명이 홋카이도 대학 등의 지방대 출신이다.
창의성은 암기식 학교성적이 좌우하는 게 아니다. 가능성 역시 학벌에 좌우되지 않는다. 10년 후, 20년 후 자신이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잘하는 단 한 가지 강점에 미친 듯이 파고드는 사람이 10년 후, 20년 후에 그 분야의 최고가 된다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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