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들이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 좌절을 느끼는 순간은 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완전 초반이다. 처음 1킬로미터가 생각보다 상당히 힘들다. 숨도 많이 차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힘든 순간이 달리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건 아니다. 이 힘든 시기를 조금만 참고 더 달리면 한결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뛰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마라톤이 처음부터 끝까지 힘든 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실제로 달려보면 힘든 순간을 지나서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찾을 수 있다. 그때가 바로 힘든 시기를 무사히 지나는 순간이 된다.

 

한마디로 달리기는 정신력으로 몸을 바꾸는 운동이다. 힘들어도 꾸준히 달리다 보면 심장과 허파의 기능이 내 몸의 운동을 충분히 받쳐줄 수 있게 바뀐다.

 

실제로 달리기를 시작한 초반에 심박 수를 재보면 수치가 높다. 그런데 한창 뛰고 있는 도중에 다시 심박 수를 재보면 그렇게 높지 않다. 달리는 데 필요한 산소 등의 요소들이 이미 충분히 제자리를 잡은 덕분이다. 혈액 순환도 안정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심장이 무리해서 몸 여기저기에 피를 공급하지 않아도 된다.

 

많은 전문가가 드는 예인데, 풍선을 분다고 한번 상상해보라. 처음 풍선을 불 때는 잘 부풀지 않는다. 정말 세게 힘을 주어 불어야 바람이 겨우 조금 들어간다. 이렇게 몇 번 불다 보면 어느 정도 풍선이 부풀고 그제야 바람을 불어넣는 게 한결 수월해진다. 우리 몸과 폐도 마찬가지다. 풍선을 부는 것처럼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땐 힘든 게 당연하다. 1~2킬로미터는 뛰어야 어느 정도 바람이 들어간 풍선처럼 몸도 유연하게 바뀐다. 그 시간이 지나야만 전보다 덜 힘든 상태에서 달리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심장과 폐도 제대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다. 다만 풍선을 계속 불면 터져버리는 것처럼 달릴만하다고 해서 계속 더 속도를 내면 부상을 당할 수도 있으니 갑자기 무리한 연습은 금물이다.

 

오래 달리다 보면 다리 근육도 바뀐다. 오래 달릴 수 있는 근육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원래 사람의 몸은 가만히 있어도 세포들이 죽고 없어지고 또 새롭게 생기곤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오래 달리기를 계속하면 원래 잘 뛰지 못했던 근육이 장거리 달리기를 해도 끄떡없는 모습으로 변화한다. 인체의 신비란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간혹 달리기와 관련해 흔한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다. 무릎이 상할까 봐 달리기를 못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다. 의사 입장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괜찮다. 요즘 사람들의 무릎은 오히려 너무 안 써서 상하는 것이다. 무릎을 보호하겠다고 가만히 있으면 그게 무릎을 상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적당히 쓰고 달리는 정도의 충격을 주어야 더 튼튼해지는 게 무릎이다. 물론 너무 무리하면 무릎도 상하겠지만, 천천히 달리기 정도의 운동으로 상하는 건 아니니 걱정 말고 달려도 된다.

 

달리기가 우리 몸에 변화를 가져오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정말 중요한데도 사람들이 많이 놓치고 사는 것, 바로 '우울'이다. 달리기는 우울한 마음도 건강하게 바꾸어놓는다. 미국의 경우, 전체 인구 중 10%가 우울증이라는 통계가 있다. 미국의 전체를 3억 명이라고 봤을 때 무려 3,000만 명 정도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우리나라도 이 수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선진국에서 인생의 행복도를 보면 20는 높고, 30대와 40대는 점점 낮아진다. 그러다 50대와 60대가 되면 다시 높아진다. 전형적인 V 라인이다. 일도 많이 하고 가정을 꾸린 뒤 육아도 해야 하는 3,40대의 삶이 제일 힘겹게 느껴지다가, 나이가 들수록 평온하고 편안한 노후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니다. 20대가 그나마 제일 높았다가 30대, 40대, 50대, 60대가 될수록 점점 수치가 낮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만족도가 반비례하는 역슬래시(\) 라인이다.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데도 힘든 시간이 계속 쌓이기만 한다. 행복보다 불행지수가 너무 높은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상적인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한 자살률, 특히 노인 자살률도 우리나라가 1위인 것이다.

 

달리기가 이 모든 우울과 불행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전 세계적으로 달리기 인구가 느는 것도 달리기가 우울증에 효과가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원래 달리는 동물인데, 삶이 힘들어진 데다 더 이상 달리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더 우울하고 몸이 아픈 것일 수도 있다.

 

'러너스 월드' 객원 편집기자인 스콧 더글러스는 '나는 달리기로 마음의 병을 고쳤다'라는 책에서 달리기가 어떻게 우울함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알려준다.

 

우울증의 전형적인 특징은 '내가 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아' '삶의 낙이 없어'처럼 자기 패배적인 생각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임상심리사이자 러너인 브라이언 배시 박사에 따르면, 달리기는 이러한 생각들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달리기로부터 얻게 되는 커다란 심리적 이점 중 하나는 자아존중감의 향상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다는 데에서 자신감을 얻는 것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좋게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콧 더글라스는 이러한 배시 박사의 말을 실제로 겪어 본 사람이다. 그는 기분이 불완전한 기분부전장애와 만성 우울증을 학창 시절부터 오랫동안 앓아왔다. 10대 시절,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대마초를 피우는 등 쾌락을 추구해도 나아지지 않던 그의 기분이 달리기를 하며 점차 극복 가능한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달리기 덕분에 그는 정신적, 신체적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30분 만에 긍정적이고 열의에 찬 행복한 기분을 경이롭다고 표현했다.

 

지난 20여 년간 우울증 치료를 위한 잠재적 방법으로 운동에 관한 연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우울증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에 운동이 항우울제만큼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 운동에 해당하는 활동은 대부분 유산소 운동을 말한다.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인 달리기를 내가 계속 추천하는 이유다.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

by 미스터신 2020. 4. 1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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