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청춘은 묻는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느냐고. 표정을 보면 심각하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고민하던 햄릿처럼 절박하게 고민한다. '잘하는 일이냐 좋아하는 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C전무의 사례를 통해 답을 찾아보자.

외국계 회사 회계담당 임원으로 퇴작한 C전무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바로 취업한 회사에서 회계 관련 업무를 맡았다. 일을 정말 잘했다. 계산은 늘 정확했고 자금의 흐름을 예리하게 읽어냈다. 승진도 빠르고 연봉도 껑충껑충 뛰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누구보다 잘하는 그 일이 본인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하루 종일 들여다봐야 하는 엑셀 파일이 싫었습니다. 엑셀 파일 안에 빼곡하게 들어찬 8포인트, 9포인트 크기의 숫자는 더 싫었지요. 언제부터인가 출근을 했는데 컴퓨터를 켜기가 싫어지더군요. 전원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까만 모니터를 보며 한참을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엑셀 파일과 숫자와의 싸움이 시작된다는 걸 아니까 피하고 싶었던 거죠.

 

C전무는 30대까지는 타인의 인정을 받는 뿌듯함과 승진하는 쾌감, 돈 버는 재미에 일을 열심히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애정도 관심도 없이 그저 돈과 승진을 위해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은 C전무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회사도 일도 사람도 싫어졌다. 출근도 하기 싫고,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는 것마저도 싫은 사람이 맡은 일을 잘 해내기는 어렵다. 원인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있는 법.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C전무의 성과는 조금씩 나빠졌다. 몇 년 후 회사는 퇴사를 권유했다.

 

상담을 받기 위해 내 앞에 앉은 C전무는 담담했다. 남들은 퇴직해서 서운하지 않느냐고 걱정하지만 자신은 괜찮다고 했다. 오래 버텼다고, 그동안 할 만큼 했다고, 아쉬움은 없다고 했다. 남은 인생은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하든 힘든 건 비슷할 것 같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배운 점은 일에서 의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돈만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즐거움과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보고 싶습니다."

 

일을 통해 돈을 많이 벌고 지위가 높아지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일하는 이유가 마음의 울림과 끌림이 아니라, 돈이나 명성을 위한 게 전부라면 곤란하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루 여덟 시간 이상, 매일매일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와중에 경쟁에서 이기고 성과도 내야 한다. 가슴이 답답해지지 않는가? 직업은 한 번 선택하면 1~2년 하고 끝나지 않는다. 도저히 못하겠다 싶으면 직업을 바꿀 수 있지만, 쉽지는 않다. '직장'을 바꾸는 것도 어려운 요즘에 '직업'을 바꾸는 건 더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어려움은 더하다. 시작이 중요하다.

 

좋아하는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관심 분야를 자꾸 들여다보고, 용기를 내어 기회를 만들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단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잘하기 위해서 배우는 과정이 재미가 있고, 재미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실력이 늘어간다. 그래서 처음에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둘 다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실력은 좋지만 마음이 끌리지 않는 일을 선택하면 결국 자신이 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도 아니고 잘하는 일도 아닌 쪽으로 변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마음이 가지 않는 일을 오래도록 잘 하기는 어렵다. C전무가 그 예다.

 

중요한 출발을 앞두고 있는 당신은 부디 인생을 길게 보고 자신을 위하는 선택을 하기 바란다.

 

자신을 위한 시간과 기회를 마련하자

 

이제 마무리하자. 당신은 지금까지 해야 할 것,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하라고 한 것은 많이 하고 살았다. 이제는 가슴이 이끄는 것에 귀를 기울여보기를 바란다. 어릴 때부터 모아두었던 자료를 살펴보고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자신이 어디에 끌리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뒤져보자. 나를 제대로 알고 도전하고, 경험하고, 판단하자. 마음속 울림을 따르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전한 청춘 세 명의 이야기를 전한다.

 

혜민 : 나는 공부를 잘했다. 무서운 엄마에게 혼나기 싫어서 공부를 하고 등수를 올렸다. 나가기 싫은 대회에 나가서 상도 탔다. 전공도 엄마가 선택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곳에 관심이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허수아비처럼,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아왔다. 요즘 꾸역꾸역 나를 들여다보았다. 내 인생인데 나는 없었다. 이제 달라지고 싶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있었지만 말도 못 꺼내봤다. 이제 해봐야겠다. 내 인생 최초로 엄마에게 반기를 들어보려 한다. 나를 위해 살아보고 싶다. 앞으로는 나 자신의 행복과 만족감을 위해 살고 싶다.

 

승재 : 내 마음속 끌림을 따르고 싶다. 부모님의 기대와 권유, 학벌, 사회적 위치, 친구 관계 등 내 삶을 가로막고 있는 단단한 벽을 뚫어보고 싶다. 성공하고 행복할 거라는 확신은 없다. 힘들 것 같아 걱정도 된다. 그래도 나만의 삶,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 벽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보겠다. 책임도 내가 진다.

 

희중 : '나에게 1년만 시간을 주자'. 나는 지금까지 어떤 분야에 관심이 가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청춘이 다 지나가기 전에,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에 나에게 시간을 좀 주려고 한다. 인생을 크게 볼 때 청춘 시기에 마음속에서 끌리는 일을 찾고, 그 일을 경험해보는 데 1년을 투자하는 건 낭비가 아닐 것이다. 부모님과 상의해 1년간 휴학을 하기로 했다. 시야를 넓혀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는 시간으로 채워보겠다. 1년을 후회 없는 도전과 경험으로 채워보고 내 길을 결정하겠다.

 

나를 위한 선택은 내 안에서 나온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에게 시간과 기회를 좀 주자. 연구에 의하면 성과를 예측하는 힘은 능력보다 흥미가 더 강하다. 어릴 때부터 막대한 연습 시간을 쌓아야 한다든가,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좋아서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부터 시작해서 피겨스케이트 선수나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것이 아닌 이상, 좋아하는 일을 하는 편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

 

생각하고 경험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청춘이 아니면 누리기 힘들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몇 주, 아니 단 며칠이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자신에게 시간을 좀 주자. 마음속 끌림을 찾고 경험을 해보자. 인생에서 내 결심을 실행으로 옮기기에 가장 좋은 때가 있다. 당신이 살고 있는 청춘이 바로 그때다.

 

나를 모르는 나에게_ 하유진

 

 

by 미스터신 2017. 11. 9. 16:08

생각의 힘을 기르는 방법을 찾아서

 

얼마나 많이 아는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미래학자 버크민스터 풀러는 인류가 가진 지식의 총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리라 예측한 바 있다. 그가 발표한 '지식 두 배 증가 곡선'에 따르면 현재 13개월마다 인류 지식의 총량이 두 배로 증가하며, 그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 주기가 최대 12시간으로 단축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러한 지식의 폭발, 이른바 지식의 빅뱅은 우리가 지금가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건이다.

 

이것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2010년 인쇄본 발매를 중단한 이유다. 244년의 전통을 가진 세계적 권위의 백과사전이 종말을 고했다는 것은 곧 쓰여진 지식의 종말을 의미한다. 인류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의 시대가 도달한 지식수준을 따라잡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도 1~2년이 지나면 금방 옛 지식이 되고 만다. 한 번 배운 것으로 평생 먹고 사는 시대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 정보가 넘쳐나고, 새로운 지식의 창출 속도가 가속화되는 21세기는 더 이상 지식의 시대가 아니다. 한마디로 한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의 양은 중요하지 않고, 그 중요성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얼마나 많이 아는가'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고, 필요할 때 원하는 지식을 찾아내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더없이 중요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능력을 기르는 키워드는 다름 아닌 '생각'이다. 지금 전 세계의 교육 현장은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교육에 주목하고 있다.

 

실수해도 괜찮아! 풀이 과정에 점수 주는 프랑스 시험

 

프랑스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다. 지금까지 총 62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또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노벨상 자체가 학문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프랑스에 유독 뛰어난 수학자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의 필즈상 수상자들은 생각을 길러주는 프랑스의 교육을 이유로 꼽는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다른 걸까. 프랑스의 명문 사립인 윌스트 고등학교의 3학년 교실을 찾아가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고등학교 1학년 수학 시험 문제를 풀어보게 했다. 32명의 학생이 우리나라와 똑같은 조건에서 문제를 풀었다. 문제의 양은 프랑스 시험보다 두 배나 많다. 그런데 주어진 시간은 평소의 절반이다. 그러다보니 프랑스 학생들 대부분이 문제를 잘 풀지 못했다. 67점 만점에 평균 점수는 약 15점밖에 되지 않았다. 32명 가운데 30명의 학생이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어려운 이유를 들어보면 단지 문제의 양과 시간 탓만이 아니다.

 

"한국식 시험은 방정식, 원, 삼각형, 기하학, 대수 등 방대한 주제에 대해 고민해야 하네요. 프랑스 시험은 하나의 주제에 관해 여러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해서 생각할 수 있어요."

 

"프랑스의 시험에서는 문제를 풀 때 참고사항이 많아요. 주가 되는 문제 하나에 대해 연속적인 질문들이 계속 나오는 식이거든요. 정답까지 인도받는 느낌이죠."

 

"한국식 시험은 선다형이라 정답을 모를 때 아무 답이나 찍을 수 있어요. 프랑스 시험은 모두 서술형이라 그럴 수 없어요."

 

시험 문제를 푸는 것만 본다면 딱히 수학을 잘한다고 할 수 없는 프랑스 학생들. 이들은 어떻게 수학을 공부할까? 수학 시간에 교사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기본 개념에 대한 설명이다. 프랑스 수학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잘 푸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학생들은 서술형 문제에 풀이 과정을 써야 하는데, 답이 틀려도 자기가 적은 만큼의 부분점수를 받는다.

 

한국의 수학 문제를 굉장히 길고 어렵고 여러 단계에 걸쳐서 풀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분 점수가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이론을 잘 알고 있어도 풀이 과정에서 한순간 삐끗하면 그 문제는 모두 틀린 게 된다. 반면 프랑스 학생들은 틀리는 데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실수하거나 일부만 알아도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학생들은 문제를 풀 때 유독 그림을 많이 그린다. 머릿속에 있는 수학 개념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스스로 이해한 뒤 풀기 위해서다. 또한 이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학생이 틀려도 야단치지 않는다. 실수는 정답을 향해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학생에게는 늘 오류를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학 교육과 비교해보자.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내신 시험은 50분 동안 30문제를 푼다. 한 문제를 2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풀어야 하다 보니 프랑스 학생들처럼 그림을 그리는 건 사치다.

 

그런데 프랑스 학생들보다 문제의 정답을 빠른 시간 안에 훨씬 잘 맞히는 우리나라 학생들과 관련해 이상한 통계가 하나 있다.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 혹은 재미가 없어서 수학을 싫어하거나 포기하는 학생들을 이른바 '수포자'라고 하는데, 수포자의 비율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다. 초등학생은 37퍼센트, 중학생은 46퍼센트, 고등학생은 무려 60퍼센트가 수포자다.

 

학생들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 일단 너무 어렵다. 이 어려운 수학 개념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어디에다 쓰는지도 모른 채 배워야 한다. 다른 과목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데 얻는 결과물은 너무 적다. 그러니 수학이 싫어지는 건 당연하다. 수학의 본질은 원리와 개념을 이해하고 추론하여 결론을 도출해내는 데 있을 터인데, 우리의 수학 교육은 그것과는 거리가 많이 멀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시민을 기르는 프랑스의 철학 교육

 

프랑스 학생들은 한국 고등학교의 시험 문제를 절반도 풀지 못했지만, 그들이 써낸 풀이 과정에는 문제에 접근하기위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잘 드러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수학을 비롯한 모든 교육의 목적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데 있다. 그리고 그러한 교육을 지탱하는 근원적인 바탕에는 철학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문과나 이과 진로에 상관없이 누구나 일주일에 네 시간씩 철학 수업을 듣는다. 철학 수업에서 학생들은 철학적 질문에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프랑스가 철학 수업을 고수하는 이유는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프랑스에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입 시험으로 철학 시험을 본다. 200년 전통의 프랑스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첫 관문이 바로 철학 시험이다. 네 시간 동안 세 개의 주어진 주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논문 형태로 작성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문제들이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어떤 법도 따르지 않는 것인가?"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이 처러진 다음 날에는 그 주제가 신문에 반드시 실린다. 시험문제 자체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프랑스에는 철학 토론 모임이 열리는 카페도 아주 많다. 고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철학을 주제로 토론하는 것은 프랑스 사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풍경이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의 특징은 이 문제들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모범답안이 없기에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한 문장도 쓸 수 없다. 이 시험이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랑스 시민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 위대한 도구였다.

 

철학 시험뿐 아니라 바칼로레아의 모든 문항은 주관식이다. 20점 만점에 10점을 넘으면 합격이고, 합격한 사람은 어느 지역, 어느 대학에나 지원할 자격을 얻는다. 무려 열흘에 걸쳐 치러지는 바칼로레아 시험에 매년 1조 원 넘는 예산이 들어간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은 바칼로레아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학생들을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올바른 시민으로 길러내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 강국 핀란드는 왜 새로운 교육 혁신을 시작했는가

 

프랑스가 지적 전통을 기반으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교육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핀란드에서는 다른 방향의 교육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핀란드는 이미 전 세계가 인정하는 교육 강국이다. 그런 핀란드에서 하는 세계 최초의 시도, 무엇일까? 바로 융합교육이다. 서로 다른 과목의 교사들이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과목을 통합해 가르치는 융합교육은 지금 핀란드 교육의 화두다.

 

교사 재교육이 진행되는 핀란드 헬싱키의 한 대학 실험실을 찾아가 보자. 생물, 화학, 물리, 수학, 미술, 직물 등 여섯 과목의 교사들이 자연의 재료로 염료를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연의 색'이라는 주제로 어떻게 학생들을 함께 가르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해서 최종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전시까지 할 것인지를 협의했다.

 

'기름으로 오염된 바다를 어떻게 정화할 것인가'와 같은 주제도 훌륭한 융합 수업의 콘텐츠가 된다. 교사들은 이 주제를 위해 생물, 역사, 수학 등을 융합한 커리큘럼을 마련했다. 융합 수업은 이론 공부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바다를 만들어 보고, 기름을 제거하는 방법도 실험한다.

 

수업의 내용을 예로 들면 이렇다. 어떻게 물은 남겨놓고 기름만 제거할 것인지, 기름 유출량에 따라 필요한 오일펜스의 길이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과거에 발생한 기름 유출 사고들은 어땠는지 등. 하나의 주제를 풀어가는 과정에 여러 과목이 녹아 있다. 심지어 실제로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노를 저어보는 체육 활동도 하고, 물고기로 요리하는 가사 활동까지 겸한다.

 

이러한 융합교육을 통해 실용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학생들은 예습이라는 걸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중요한 건 사전에 책에서 미리 얻은 지식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집중해서 생각하고 즐겁게 몰두하는 사고력이다.

 

기존 교육 제도도 매우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핀란드가 이러한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이 특정 과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생각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야말로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교육이라고 믿는다. 핀란드는 세계 최고의 교육 선진국이지만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부지런히 더 나은 교육을 찾는다.

 

학습시간은 우리나라 학생의 3분의 1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핀란드 학생들

 

이쯤에서 핀란드와 우리의 교육 현실을 한번 비교해보자. 핀란드는 OECD 국가들 가운데 가계 소득 대비 사교육비 비중이 가장 적은 나라다. 우리나라의 30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핀란드보다 효과가 더 있을까? 우리나라와 핀란드의 중학교 3학년의 일과를 비교해보자.

 

대한민국의 중학교 3학년 용웅이는 오후 네 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바로 일본어 수업을 받는다. 일본어 수업 후 공부를 하다가 일곱 시가 되면 보습학원에 간다.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서다. 학원 수업은 밤 열 시까지 이어진다. 밤 열 시 반, 학원에서 돌아와 그제야 늦은 저녁 식사를 한다. 그런 뒤에도 쉴 틈 없이 숙제하느라 밤 열두 시까지 책과 씨름하다 잠이 든다.

 

핀란드의 중학교 3학년(기초학교 9학년) 로우페 역시 오후 네 시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 가장 먼저 책상에 앉는다. 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서다. 로우페의 공부 시간은 하루 두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숙제를 다 한 로우페는 강아지와 동네 산책을 하고, 저녁 시간에는 소형 오토바이 면허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집 근처 학원을 찾는다. 학원에서 교통법규 수업을 듣는 것이 그의 마지막 일과다.

 

용웅이와 로우페의 일과표를 비교해 보니, 학교 수업을 제외한 용웅이의 학습시간은 일주일에 총 50시간, 로우페는 17.5시간이었다. 한국의 용웅이는 핀란드의 로우페보다 무려 세 배나 많은 시간을 공부하면서도 이렇게 쫓기듯 말한다. "강남에 사는 학생은 아마 저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거예요. 안 하면 바로 뒤처져요. 미리 고등학교 과정을 예습, 복습해야 해요."

 

OECD에서 실시하는 국제학습프로그램 PISA의 평가 결과를 보면, 점수의 총점은 근소한 차이로 핀란드가 1위, 우리나라가 2위다. 그런데 한 시간 동안 공부해서 몇 점이나 점수를 올리는지를 분석한 학습효율화지수에서 핀란드는 여전히 1위였지만 우리나라는 24위로 뚝 떨어졌다. OECD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친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습시간은 핀란드뿐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를 훨씬 뛰어넘는다.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면 학업 성취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그다음부터는 시간을 투자하든 돈을 투자하든 효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학습효율화지수에 따르면, 핀란드 학생들은 효율성이 담보되는 시간까지 공부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그 수준을 훨씬 넘어섰는데도 끊임없이 시간과 돈, 노력을 투입한다. 어느 시점 이후에는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학습효율화 지수가 낮은 건 우리가 아주 비효율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나라 학생이 공부에만 치여 살고 있을 때 핀란드 학생은 공부뿐 아니라 다양한 취미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우리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왜 이런 비효율적인 레이스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 단 한 번의 실수로 등수가 밀려나는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는 '실수하면 죽는다'는 무서운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다 보니 문제풀이를 무한 반복하고, 정답을 맞히는 기계처럼 공부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과 돈, 노력을 투자해서 얻는 것은 안타깝게도 딱 한 가지, 바로 문제풀이 기술이다. 커지는 사교육 시장의 대안처럼 등장한 EBS의 교육 프로그램들도 대부분 이 문제풀이 기술을 가르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인도 틀리는 국어 문제를 풀고 네이티브도 못 맞히는 영어 문제를 풀다

 

도대체 한국 교육은 얼마나 문제풀이 기술에 집중하고 있는 것일까. 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참고로 60만 명가량의 수험생 가운데 한 해 만점자는 서른 명 이내라고 한다.

 

"한 문제집을 열 번 이상 풀기도 해요. 영어는 외울 만큼 여러 번 보고, 수학도 한 문제를 풀고 또 풀죠.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이 숫자나 표현만 바꿔 나오기 때문에 평가원 기출 중심으로 반복해서 풀었어요."

 

거의 모든 만점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대답이다. 즉, 이들의 공부 비결은 한마디로 많은 문제를 푸는 것이다. 반복적인 문제풀이로 문제의 패턴을 익히다 보면 정답을 맞히는 요령도 생긴다고 했다. 1993년 처음 수학능력시험 제도가 생겼을 때의 취지가 무색하다.

 

우리나라는 교육열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다.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가계를 지탱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교육비를 지출한다. 그렇다 보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육비를 쓰고 있고, 특히 사교육비 비중은 다른 나라들을 압도한다. OECD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한 해 사교육비 규모는 18조 원에 달한다. 경기도 한 해 예산과 맞먹는 수치다.

 

심지어 2002년부터는 교육, 보육비를 의미하는 엔젤계수가 식료품비를 의미하는 엥겔계수를 아주 빠른 속도로 추월하기 시작했는데, 해가 지날수록 이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이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행 학교 교육이 학생들의 사고력을 키워주지 못한다면, 암기 학습은 효과적일까? 기본적으로 외워야 할 단어가 많아 암기 능력이 중요한 외국어 능력은 어떨까?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이런 질문이 무색할 정도다. 우리나라의 외국어 교육이 가진 함정 때문이다.

 

2015학년도 수능 외국어 영역에서 오답률이 가장 높았던 세 개의 문제를 영어권 나라에서 온 외국인 대학생 열두 명에게 풀어보게 했다. 세 문제를 모두 맞힌 외국인은 단 한 명뿐이었다. 반면에 세 문제를 모두 틀린 외국인은 다섯 명이나 되었다. 실험에 참가한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문제 수준이 엄청나게 높다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 학생들은 어떨까? 외국인이 쩔쩔매는 이 문제들의 정답을 열 명 가운데 약 여섯 명이 맞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외국인보다 영어 실력이 뛰어난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일까?

 

사실 외국인들이 풀었던 세 문제는 모두 EBS 교재에 나왔던 지문 그대로 수능에 출제된 것들이다. 이렇게 같은 문제가 나온 것은 사교육없이 EBS만 열심히 공부해도 수능을 잘 볼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 때문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이 EBS 교재 해석본을 달달 암기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꼬집는다. 결국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 유형을 잘 외운 사람이 경쟁에서 이기는 상황이다.

 

그리고 시를 직접 쓴 시인이 자신의 시를 해석하는 문제를 틀리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최승호 시인은 이 황당한 결과에 대해, "내 시가 교과서나 수능 모의고사에 나오곤 한다. 그런데 나는 다 틀린다. 그래서 지금은 안 풀어본다"며 "모국어의 맛과 멋을 느껴야지, 시의 주제가 무엇이고 사조가 무엇인지 묻는 교육은 '가래침' 같은 것이다. 시 교육의 목표는 웃는 것 그리고 좋은 작품을 감상하는 안목을 키워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식을 암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조하는 사람으로 어떻게 키울 것인가

 

매년 11월이면 수능이 치러진다. 열아홉 살에 치르는 이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많은 부분이 좌우된다. 그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여기기에 우리는 경쟁하듯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 노력을 투자한다. 하지만 모두가 목을 매는 이 시험이 과연 한 사람의 인생을 판가름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중요한 건 이제 이런 시스템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답 기계'만을 쏟아내는 우리의 교육은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중대한 위기 앞에 놓여 있다.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들이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 모순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겪게 될 문제들은 모두 시험지 밖에 있다. 몇 개의 보기 중에서 정답을 고르는 객관식일 리도 없다. 이미 많은 지식을 스마트폰으로 30초 안에 다 검색할 수 있는 시대다. 단순히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누가 어떤 지식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넘쳐나는 지식 속에서 이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가려내는 판단력, 어느 것이 핵심인지를 파악해내는 통찰력, 흩어져 있는 지식들을 연결하는 통섭력,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것들을 느끼는 감각 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미래 교육은 그러한 능력, 바로 '생각의 힘'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그 변화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할 때다.

 

어떻게 생각의 힘을 키울 것인가? / 배선정 PD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해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수능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달린다. 고등학교까지 1인당 양육비가 2억 3000여만 원에 이르고, 아이들의 일과는 학교, 학원 수업 외에 다른 것이 거의 없으며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학생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12년 교육의 종착지인 수능은 학생들에게 단순 문제풀이 기술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므로 자신의 생각을 지우고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2015학년도 수능만점자 학생 한 명도 "오로지 교육과정이나 교육과정평가원이 정해주는 길만 따라가야 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정답만 찾아가야 한다고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교육은 무엇인지, 지금 그러한 교육을 받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

 

교육은 얽혀 있는 이해관계자가 많은 영역이다. 또 입시제도와 연결되어 있어 한 부분만을 논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그래서 대안을 제시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교육 강국의 사례를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함으로써 그들의 제도가 갖는 장점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 전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또 다른 정답을 찾겠다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교육 문제도 하나의 답이 아니라 여러 답이 있을 수 있으며, 우리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여러 참조점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핀란드와 프랑스 사례는 서로 다른 부분에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프랑스와 핀란드, 두 나라의 교육은 전통 대 개혁이란 단어로 정리해볼 수 있다. 프랑스 대입시험인 바칼로레아는 그동안 수차례 우리나라 수능의 대안으로 언급되어왔다. 하지만 서술형이라는 형태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왔던 것 같다. 우리가 바칼로레아라는 시험의 형태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안에 흐르는 프랑스 교육의 정신이다. 바로 '생각의 힘을 기르는 교육'이다. 그 정점에 바칼로레아 철학시험이 있다.

 

철학시험은 대입시험 공통과목으로 프랑스 특유의 것이다. 학생들은 '인간은 욕망의 지배를 받는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와 같이 정답이 없는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 정해진 정답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스스로의 생각을 여러 단계를 밟아 설득력 있게 펼쳐나가야 한다. 이런 과정은 철학뿐 아니라 수학을 포함한 다른 과목을 통해서도 훈련된다.

 

취재 과정에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과 프랑스 고등학교 한 반을 선택해 서로의 수학 시험 문제를 바꿔 풀어보게 했다. 한국의 아이들은 2시간 동안 서술형 6문제를 풀어야 했고, 프랑스 아이들은 50분에 객관식 25문제를 풀어야 했다. 두 나라의 아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한국 아이들은 과정을 서술해야 하는 프랑스 수학시험을 낯설어했지만 아는 만큼 쓰면 부분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용기 내 풀기 시작했다. 수학이 어렵다며 포기했던 아이들조차도 자신이 아는 선에서 생각하기 시작했고, 답을 서술해나갔다.

 

프랑스 아이들도 한국 시험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풀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르는 문제는 건너뛰거나, 점수가 높은 문제를 먼저 풀거나 하는 등의 전략이 부재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첫 장 1번 문제부터 순서대로 풀어나갔고, 모든 문제를 풀어본 학생은 절반도 되지 못했다. 다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문제를 풀기 위해 도형을 그리고 과정을 서술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에서는 객관식 문제 하나를 틀리면 등급이 내려가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따라서 모르는 문제는 시도 자체를 하지 못한다. 대신, 암기한 공식을 대입해 빨리빨리 풀 수 있는 문제를 선택한다. 하지만 프랑스 아이들은 시도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도 점수를 받아왔기 때문에 한국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프랑스 아이들은 총점 67점에 평균 15점을 받았지만 크게 낙담하지 않았는데 이런 문화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프랑스 학생들은 이처럼 교육과정을 통해 스스로 시도하고 생각하는 훈련을 받아왔다. 그리고 200년이 넘는 시간을 이어온 바칼로레아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펼쳐 보인다. 그야말로 전통과 역사성에서 기인한 교육의 힘이라 하겠다.

 

반면, 핀란드는 새로운 시대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강력한 개혁을 하고 있었다. 핀란드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 결과에서 한국과 1, 2위를 다툴 정도로 학생들의 학업능력과 성취도가 우수해 교육 강국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핀란드 사회는 이 결과에 만족하지 않았다. 성취도에 비해 학업에 대한 학생들의 동기와 흥미도가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많은 논의를 해왔고, 2012년 교과개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융합교육을 도입했다.

 

과목 간의 벽을 허무는 융합교육은 한 교과목에서 배운 내용이 다른 과목과 어떻게 연결되고 적용되는지 이해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에서는 이를 현상 기반 학습이라고 부른다. '바다에 유조선이 좌초돼 기름이 유출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같이 실생활과 관련된 주제를 놓고 생물, 수학, 역사 등 여러 과목을 연계해 교육한다. 최근 일어났던 가장 큰 기름유출 사고를 이야기하면서 역사를 공부하고, 유출량과 면적을 계산하며 수학을 배운다. 또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면서 생물을 접하고, 물 위의 기름때를 제거하는 실험을 하면서 화학을 공부한다. 이렇게 자신의 생활과 밀접한 주제를 통해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다 보니 학생들은 더욱 흥미를 갖고 수업에 임하며, 모르는 것은 스스로 더 찾아본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학습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주었을 뿐인데 학습 태도와 흥미도가 크게 오른 것이다.

 

물론 모든 개혁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핀란드는 교과개혁을 2012년에 시작했는데, 국가 공통 교과과정을 2014년에야 완성했다. 2년 반이 걸렸다. 핀란드 교육위원회는 업무방식의 변화, 배움에 대한 새로운 인식변화, 효과적인 학습 방법 등과 관련된 연구 자료들을 수집했고, 교육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지방자치단체, 학교, 교사연수원의 관계자들, 연구원, 학부모 및 학생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심도 있게 논의했다. 개혁을 실시하기 전에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등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시대 변화에 따른 개혁의 필요성에 모두가 공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핀란드 사회가 또 다른 미래 변화를 감지하고 필요성을 느낀다면, 또 다른 개혁 역시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과 개혁으로 대변되는 프랑스와 핀란드, 이 두 나라의 교육에도 공통점이 있다. 오랜 시간을 거친 사회적 합의가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를 치르기 위해 한 해 1조 원이 넘을 정도로 많은 돈을 투입한다. 하지만 국민의 79퍼센트는 바칼로레아를 없애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렇듯 생각의 힘을 기르는 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칼로레아를 유지해올 수있었다.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교육개혁에 대한 요구로 큰 틀을 마련한 핀란드는 40여 년동안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 틀을 수정, 보완해왔다. 그 결과 세계 최정상의 교육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2016년부터 전국에 의무화되는 융합교육도 이 큰 틀 안에서 새 시대에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합의한 결과물이다.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던 시대는 끝났다. 지식의 양보다는 창의적인 능력과 생각의 발전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가 이미 우리 눈앞에 와 있다. 교육은 해당 국가의 국민이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사회적 합의다.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 프레임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결과물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후세대를 위한 어른의 당연한 책무다.

 

지식의 폭발 이후,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_ 명견만리

by 미스터신 2017. 9. 29. 17:25

대학은 어떤 수업개혁을 준비해야 하는가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받아 적어야 최우등생이 된다?

 

"수업시간에 교수님 말씀을 문장 그대로 똑같이 적어요. 토씨 하나까지도 안 놓치려고 해요. 요약하거나 키워드만 적어서는 부족해요. 농담까지 다 받아적습니다."

 

"필기만으로는 안심이 안 돼 수업시간에 아예 녹음기를 켜놔요. 교수님이 말씀하신 문맥까지 그대로 외우려고요."

 

"아예 노트북으로 속기해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교수님이 말씀을 시작하시는 것과 동시에 자판 소리가 일제히 타다다닥, 말씀 끝나면 탁 소리가 멈추죠."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공부법이 비슷한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교수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이른반 전사를 하고 있는 이 학생들은 놀랍게도 서울대에서 A+를 받는 최우등생들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히는 서울대학교에서도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교수가 전달하는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 한국 대학 교육의 현실을 고발한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은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던 2009년. 상위 2.5퍼센트 안에 드는 최우등생들을 인터뷰했다. 당시 두 학기 넘게 4.0 이상의 학점을 받은 학생은 모두 150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46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동안 학생들을 만나 수업 태도, 과제 수행, 학점 관리 등 학습 전략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만 4개월이 넘게 걸렸고, 이를 다시 분석하는 데 1년이 더 걸렸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좋은 학점을 받는 비결은 한결같이 교수의 말을 전부 받아 적는 것, 무려 87퍼센트의 학생이 이와 같이 답했다.

 

더 놀라운 것은 또 있었다. 만일 본인의 생각이 교수와 다를 경우 자신의 생각대로 시험 답안을 써내겠느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뭐라고 답했을까? 46명 가운데 무려 41명, 즉 90퍼센트가 자신의 생각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교수보다 자신의 생각이 더 낫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만의 생각이란 학점을 잘 받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면 할수록 생각하는 능력을 잃는다?

 

이혜정 소장의 연구는 애초에 최우등생들의 공부 비법을 분석해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알려주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조사를 진행할수록 이 소장은 학생들에게 최우등생들의 공부법을 배포할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결코 권장할 수 없는 비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이러한 조사 결과가 최우등생들만의 특징인지 아니면 서울대 전체 학생들의 특징인지 알아내고자 조사 범위를 확대했다. 1111명에게 다시 공부법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그리고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해냈다. 학생들의 노트 필기 습관과 학점은 정비례하고 있었다. 학점이 높은 학생일수록 수업시간에 교수의 설명을 모두 필기한다는 비율이 높았다.

 

이 연구에서 중점을 두었던 세 가지 학습 자질은 수용적,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다. 수용적 사고력은 자신이 배운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암기하는 데 중점을 두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높을수록 시험에서 정확하게 기억해내는 능력도 높을 것이다. 비판적 사고력은 주어진 내용을 여러 방향에서 다시 생각해보면서 배운 내용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창의적 사고력은 주어진 내용을 다르게 생각해보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능력이다.

 

분석 결과, 학점이 높을수록 수용적 사고력이 높았다. 다른 말로 하면 결국 학점이 높은 학생일수록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사고력이 수용적 사고력에 비해 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수용적 사고력도 필요하다. 수용적 사고가 결국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로 이어지는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로지 수용적 사고력만 높이 평가하는 학습환경에 놓이면, 배우면 배울수록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모순이 생겨난다. 즉,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공부하는데 오히려 점점 더 퇴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서울대 최우등생들이 바로 그런 환경에 놓여 있다. 왜 그토록 똑똑한 인재들이 스스로도 미련하다고 여길 정도로 교수가 강의하는 내용을 모두 받아 적을까.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교수의 말을 다 받아 적고 교수의 생각에 나의 생각을 일치시킬수록 높은 학점을 받아 취업에 성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46명의 최우등생 가운데 80퍼센트인 37명은 전혀 예습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습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높은 학점을 받는 데 예습은 소용이 없었고, 교수의 말을 잘 받아 적어 암기하는 복습만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연구를 시작하기 전 이 소장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창의적, 비판적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좋은 학점을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1학년 때는 수업시간에 키워드 중심으로 필기하면서 질문도 많이 했고 시험 때는 제 생각을 드러내려 했어요. 그리고 끔찍한 학점을 받았어요. 아, 이렇게 공부하면 안 되는구나... 그 후로는 수업시간에 열심히 필기해요. 물론 학점은 좋아졌지요."

 

이 학생의 고백처럼 대학 초년생 시절 창의적, 비판적인 성향이 높은 학생들은 낮은 학점이라는 결과 앞에서 자책감을 느끼고 창의적, 비판적 사고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공부법을 수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서울대와 같은 명문대 학생들만 그럴까?

 

우리나라 62개 대학에 다니는 4만 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국교육개발원 2014년 조사에 따르면, 대학 교육을 통해 전공 지식이 향상되었다는 학생은 꾸준히 늘었다.. 수용적 학습을 잘 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력이 향상되었다는 학생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도 그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똑똑하지만 온순한 양이 될 것인가, 급변하는 세상에 필요한 인재가 될 것인가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연구 결과가 하나 있다. MIT 미디어랩에서 학생의 일상생활과 패턴에 따른 교감신경계 변화를 측정했다. 이 연구의 원래 목적은 몸에 착용하는 작은 센서로 일상의 교감신경계 변화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실험은 이렇다. 피험자의 손과 팔에 기기를 부착하고 일주일 동안 일상생활 패턴에 따라 교감신경계의 전자파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한다. 그런데 실험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피험자인 대학생의 교감신경이 수업시간 중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교감신경계는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흥분되고 긴장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 활발하게 활동한다. 반면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을 때는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 피험자가 직접 실험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할 때는 교감신경계가 활발하게 활동했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특히 초반부에는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었다.

 

반면 텔레비전을 볼 때와 수업을 들을 때는 교감신경계가 거의 활동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수업은 일방적으로 듣고 적기만 하는 식의 수동적 강의다. 즉,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강의식 수업에서 학생은 어떠한 자극도 각성도 없이 멍하게 있는 상태였다. 수업을 들을 때의 긴장상태가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만큼이나 별다른 자극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대학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 대부분은 이러한 수동적 강의식 수업이다.

 

한국은 물론 영미권의 많은 대학에서 강의해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한국 대학생의 공부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가 요즘 대학생에게 붙여준 별명이 해바라기입니다. 수업 시간에 제가 왔다 갔다 하면 모든 시선이 저만 따라와요. 제가 말 잘 듣는 학생이 제일 싫다. 교수에게 좀 덤벼라, 이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얘기해도 이런 모습이 잘 고쳐지지 않더라고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대학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가 교육제도라면, 대학은 그 교육제도의 정점이자 상징이다. 인류 역사에서 대학은 지식을 쌓고, 생각을 교류하며, 시대의 담론을 펼쳐낸 지성의 장이었다. 한 사회를 발전시키고 미래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생각과 가치들이 바로 대학으로부터 나왔다.

 

한국을 비롯해 서구의 대학교육 제도를 받아들인 곳들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대학은 사회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시대 변화를 올바르게 읽어내는 비판의 장이자 시대가 묻는 엄중한 물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성의 공간이었다. 그 때문에 개인과 가족은 물론 전 사회가 대학 교육에 자원을 투여해왔다. 그것이 사회전체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에는 더 이상 큰 배움도, 새로운 도전도 없다.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고,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인재가 아닌 학점의 노예만 길러내고 있다. 이혜정 소장은 대다수 서울대생의 관심은 대기업에 취업할 것이냐, 고시를 볼 것이냐, 교수가 될 것이냐와 같은 고민과 선택에 묶여 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세상이나 사회적 정의는 먼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학의 위기는 대한민국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2020년에 대학 캠퍼스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고, 미래학자인 토마스 프레이는 전 세계 대학의 절반이 20년 내에 문을 닫을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대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중요한 모델이 되어왔던 미국의 상황을 살펴보자. 미국 대학도 취업 전쟁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맞고 있다. 미국의 수많은 대학생들 역시 취업이 잘되는 학과, 돈 잘 버는 직업을 얻는 관문으로서 대학 생활을 정의한다. 또 대학 역시 경제, 경영, 컴퓨터공학, 생명과학처럼 취업에 유리한 학과에만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예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런 환경이 사람이 교육을 통해 키워야 할 능력을 오히려 저해시킨다는 데 있다. 미국 대학 교수의 90퍼센트 이상이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대학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꼽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뉴욕대 교육사회학과의 리처드 아룸 교수의 연구는 대학 교육이 처참히 무너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아룸 교수는 대학 교육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4년에 걸친 연구를 진행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연구에 참여했던 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대학4년 동안 비판적 사고력이 단 1점도 향상되지 않은 것이다.

 

아룸 교수는 '학생들의 등록금이 잘 쓰이고 있는가?', '학생들이 돈을 낸 만큼의 가치를 돌려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확언했다. 미국의 대학 등록금은 2005년에서 2014년 사이에 무려 40퍼센트나 상승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주립대학은 1960년대 자유언론운동이 일어났던 곳으로, 미국 내에서도 비판정신과 인문학적 전통이 살아있는 최고의 명문 주립대다. 하지만 이 대학도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다. 2015년 10월 이곳에서 대학 교육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에 참석한 학생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대학 등록금에 비해 그만큼의 일자리도, 학문적 성취도 얻지 못하는 대학 교육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한 버클리 대학생의 말이 인상적이다.

 

"영화 <굿 월 헌팅>에 이런 말이 나와요. '네가 5만 달러를 내고 배운 것을 나는 공공 도서관에서 2달러의 연체료를 내고 배웠어.' 이젠 정보도 손쉽게 얻을 수 있고 그 학교 대학생이 아니어도 청강을 할 수 있지요. 우린 단지 버클리 대학과 자신의 이름이 적힌 졸업장을 받기 위해 등록금을 내는 거예요."

 

최근 미국에서 대학 문제에 커다란 화두를 던지 윌리엄 데레저위츠 교수는 이 세미나에서 대학이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기보다는 실용적 고려라는 명분 아래 대학 본연의 목적을 상실했으며, 바코드를 찍어내는 것처럼 비슷한 스펙,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사회 시스템에 순응하는 그저 '똑똑하고, 온순한 양'들을 길러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데레저위츠 교수는 그의 최근 저서 <공부의 배신>에서도 대학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비판한 바 있다.

 

"교육의 목표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당신을 직장에서는 쓸모 있는 인력으로, 시장에서는 잘 속아 넘어가는 소비자로, 국가에서는 순종적인 국민으로 전락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고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교육의 의미, 삶의 목적과 같은 중요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이 주제는 청년시절에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생각의 힘을 키우는 교육, 수업개혁을 시작하라

 

데레저위츠 교수가 말하듯 지금의 대학은 학생들이 첫 직장을 준비하는 직업양성소가 되었다. 대학이 스스로를 이렇게 규정하는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교육해야 하는 대학의 임무에도 어긋날뿐더러 시대착오적인 현상이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 지금의 대학교육이 얼마나 뒤떨어지는지는 아래의 숫자들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다.

 

3-5-19

 

이 숫자들이 무엇을 뜻할까? 앞으로 미래 세대가 살아가게 될 방식을 말해준다. 미래 세대는 일생 동안 3개 이상의 영역에서 5개 이상의 직업을 갖고 19개 이상의 서로 다른 직무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미래학자들은 단 한 개의 직업으로 평생 살 수 있는 시대는 끝나간다고 말한다.

 

즉, 첫 번째로 가지게 될 직업이 인생에서 차지하게 될 중요도를 기계적으로 나누면 5분의 1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첫 직장을 여는 열쇠 하나를 깎느라 4년이라는 시간과 엄청난 등록금을 온전히 다 쓰고 있다. 물론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점을 받고 온갖 스펙을 잘 쌓은 학생은 첫 직장을 수월하게 얻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첫 번째 취업문을 성공적으로 뚫었더라도 10년 뒤에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회사에 다닌다 해도 그 회사의 주력 산업이 완전히 바뀌어서 전혀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야 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럴 때 자신에게 필요한 새로운 열쇠는 무엇일까. 적어도 이미 '옛것'이 되어버린 전공 지식은 아닐 것이며, 수용적 사고 100퍼센트의 능력은 아닐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대학 문을 나설 때 손에 쥐어야 하는 것은 방문 하나만 열 수 있는 톱니 열쇠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여야 한다. 그런데 대학은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더 퇴보하여 단순한 취업 공부로 학생들을 몰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기초체력이자 뼈대가 될 수 있는 마스터키를 학생들의 손에 쥐어주기 위해 대학은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미국의 한 오래된 대학에서 이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미국 동부 메릴랜드 주 아나폴리스에는 1696년에 설립된,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세인트존스 대학이 있다. 전교생이 400명 정도 되는 아주 작은 대학인 이곳에서는 어딜 가나 책을 읽고 토론하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이 대학에서는 4년 내내 100권의 고전을 읽는다. 철학부터 수학, 과학,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커리큘럼의 전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어렵고 접하기 힘든 고전을 읽을 뿐 4년 내내 똑같은 과정을 공부한다. 취업에 몰두하는 다른 대학과 달리 세인트존스는 학생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수업은 모두 탁자에 둘러앉아 이루어진다. 모든 수업은 토론 수업이고, 토론을 주도하는 것은 물론 학생이다. 교수는 가르치는 대신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만을 한다. 수업이 끝나고 늦은 저녁 시간이 되어도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못다 한 토론에 한창이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은 세인트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대학 4년 동안 100권의 고전을 읽으며 학생들은 긴 안목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그려나간다. 세인트존스 대학의 학생들에게 대학은 생각의 터전이다. 온종일 책을 읽고,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며,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키워 나간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고 미래를 주체적으로 설계해 나가기 위해 대학 4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특별한 전공 없이 졸업하지만 법, 금융, 예술, 과학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이 대학에서 어떤 자질을 키워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이름에 가려지지 않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 능력, 나에게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능력, 세밀한 지식만이 아니라 전체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 대학 4년 동안 인생의 마스터키를 얻었다고 확신하는 이 대학 학생들과 졸업생들의 말 속에는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담겨 있다.

 

어떤 교육 환경에서 창의적인 사람이 나오는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수업개혁을 진행하는 곳이 또 있다. 하버드 대학 에릭 마주어 교수의 수업은 특별하다. 마주어 교수도 예전에는 250명의 학생을 앞에 앉혀놓고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이 그것을 암기해 시험을 치도록 하는 수동적 주입식 강의를 했다. 그는 늘 강의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고, 하버드 내에서도 강의 잘하는 교수로 손꼽힌다. 하지만 정작 시험을 치러 보면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 그는 고민끝에,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보다 훨씬 더 큰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교수법을 바꾸었다.

 

그는 단편적이고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대신,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주도하는 강의 방식을 개발했다. 핵심은 질문과 토론이다. 그의 수업은 모두 팀 단위로 이뤄지는데, 문제를 풀 때도 학생 혼자 풀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며 함께 해결한다. 마주어 교수의 강의실에서는 단순하게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자유로이 소통하고 교류하며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을 키워 나간다.

 

마주어 교수는 앞서 MIT 미디어랩의 연구에 등장했던, 교감신경을 전혀 자극하지 못한 수업이 우연히 잘 가르치지 못한 지루한 수업이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의 심리학자 샤나 카펜터의 연구팀이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매우 체계적인 내용으로 유창하게 진행하는 강의든, 그 반대로 체계적이지도 않고 버벅거리며 못하는 강의든, 그저 앉아서 듣기만 하는 수업은 실질적인 학습효과에 큰 차이가 없었다.

 

이는 매우 주목할 지점이다. 학생들의 강의 만족도는 유창한 강의가 어수룩한 강의보다 두 배 이상 높았지만, 실제로 강의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는지 테스트했더니 두 강의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즉 교수의 일방향적인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배움은 수업의 질과 무관하게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의를 졸지 않고 재미있게 듣는다고 해서 정말로 깨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마주어 교수는 이제 학생들에게 현존하는 지식을 암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지식을 생성할 수 있도록 창의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전략은 '허용'이다. 학생이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그저 '허용'하는 것, 교육자는 '나를 이겨봐라, 나를 이길 수 있으면 A+를 주겠다' 하는 열린 마음으로 학생을 대해야 하고, 우리는 그런 교육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 토양에서만 창의적인 사람,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온다.

 

대학 진학률 80퍼센트의 대한민국, 취업률은 OECD 꼴찌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현실은 어떤가? 학생들은 토론하는 대학을 원하지만, 대부분의 강의실에서 토론은 실종됐다. 대학 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2011년 83퍼센트에서 2014년 65퍼센트로 뚝 떨어졌다.

 

기성세대들은 아주 쉽게 오늘날의 청년들을 비난한다. 이 비난은 청년 세대의 지적 능력에 대한 저평가로도 이어진다. 요즘 청년들은 자기만 알고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하다는 식이다. 그러나 그 책임은 기성세대가 만들고 기성세대가 유지하고 기성세대가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에 있다. 사회에 나가면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대학에서마저 '나 홀로 최고'가 되는 공부만 시킨다.

 

무엇보다 평가자부터 바뀌어야 한다. 교수의 말을 앵무새처럼 잘 외운 학생만을 높이 평가하나면 당연히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이 부족하고 소통과 협업에 서툰 사람을 키울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대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다. '대학을 못 가면 사람 구실 못 한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라는 말 아래,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경이적인 대학 진학률 수치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1990년대까지도 40퍼센트가 채 안 되었지만 2005년부터 급격하게 증가해 2006년 82퍼센트를 넘어섰고 2010년에 들어서도 꾸준히 70퍼센트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OECD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1위이고, 미국, 일본, 유럽의 대학 진학률보다 두 배 이상 높다.

 

그 진학률의 상승폭만큼이나 등록금의 상승세도 가파르다. 1975년부터 2010년까지 35년 동안 대학 등록금은 사립대가 28배, 국립대가 30배 이상 올랐다. 같은 기간 쌀값이 6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전세금도 11배가 올랐으니 대학 등록금 상승세가 얼마나 가파른지 알 수 있다. 학자금 대출 규모도 엄청나다. 정부학자금 전체 대출액은 2014년 말 10조 7000억 원으로, 학생 1인당 평균 대출액이 704만 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에 비해 우리나라 대졸자의 평균 취업률은 58.6퍼센트에 불과하다. OECD 국가들 가운데 단연 꼴찌다. 문제는 이 비율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계 출신 90퍼센트가 논다'는 뜻의 '인구론'이란 말도 있다. 인문학 전공자들은 기업에서 환영받지 못해 십중팔구는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복수전공한다. 통폐합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존폐 위기에 시달리는 것도 인문계 학과들이다.

 

게다가 갈수록 취업의 문이 좁아지는데, 취직을 잘하겠다고 너도나도 대학에 가니 기업의 입사 경쟁률은 고공행진을 멈출 줄 모른다. 현대차 그룹의 경우 2015년 상반기 4000명을 채용하는 대졸 공채에 10만 명 이상이 몰렸다. 이제는 '입사 고시'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학점이 4.0이 넘어도 부족하고, 토익 960점이 넘어도 만점이 아니니 불안하다. 결국 더 높은 학점을 따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포기한다.

 

그러나 폭발적인 기술 발달로 앞날이 예측 불가능해지면서 세상은 개인에게 점점 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225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구직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소통 능력'과 '협업 능력'이 꼽혔다. 그러나 학점과 스펙만을 위한 달리기에서 오히려 이런 능력은 없어지게 된다.

 

이미 세계 각국의 교육은 달라지고 있다

 

빅데이터를 통해 지금 우리 대학의 현실을 보여주는 키워드를 도출해보면 아래와 같은 단어들이 나온다.

 

혼밥, 인구론, 후회, 수강신청, 학점, 학벌, 어학연수, 복수전공, 취업사교육, 토익, 스펙, 청년, 실신, 등골탑, 이태백, 돌취생, 취업 깡패, 전화기, 화석선배, 5포세대, 학위, 취업, 동아리 고시, 학자금 대출, 월급, 자소설, 자원봉사, 결혼, 승진, 출세, 재산, 고액연봉, 평판, 권력, 명성, 인턴, 대기업 공채, 현차 수능일, 삼성 고시

 

단연 취업과 관련된 내용들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 '혼밥'이라는 키워드가 특히 자주 등장한다. 대학생의 약 72퍼센트가 혼자 밥을 먹고 그것을 편하게 느끼는, 이른바 '혼밥족'이라고 한다. 극심한 청년 취업난과 경제불황이 대학생들의 밥 먹는 풍경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대학에서 소통과 교류가 사라지는 현상을 확연히 보여주는 우울한 통계다. 게다가 대학 진학 자체를 후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최재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대학생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대학 진학을 후회하느냐'고 물었는데 무려 75퍼센트가 '후회한다'고 대답했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원하는 직업을 찾지 못해서, 취업이 잘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취업이 안 된다고 대학 교육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학이 '취업 준비소'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다른 대학, 다른 전공을 가진 청년들이 언제부터인가 모두 똑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속에서 미래 세대는 더욱 외로워지고 있다. 물론 꿈과 낭만을 좇기에 지금의 대학이 처한 현실은 너무 각박하다. 하지만 수천만 원씩 쏟아붓는 대학 교육에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도대체 대학을 나오면 무엇이 더 나아지는 것일까?

 

우리 대학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이 답을 먼저 준비하는 곳이 훨씬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과거 우리가 교육의 양적인 측면에 수많은 자원을 쏟아부었다면 이제는 질적인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 취업을 위한 실용적인 공부가 아니라 세상과 사회, 인생을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는 교양교육과 기초학문에 다시 집중하고, 학생 중심의 교수법으로 생각의 힘을 키워야 한다. 이미 세계 각국의 교육의 압도적인 추세는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춰가고 있다. 그것을 위해 에너지를 집중할 때 희망이 있을 것이다.

 

대학은 사라질 것인가? / 최진영 PD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던 9월, 한 면접 대기장. 아직은 앳된 모습의 대학생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여 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대학생들은 정장 재킷에 넥타이까지 잘 올려 맸다. 한눈에도 긴장한 표정. 면접에 들어갈 지원자끼리 조를 이뤄 '조 구호'를 만들라는 과제에 대기장 공기가 사뭇 진지해진다.

 

면접장 안의 공기는 절박하기까지 하다. "본인이 리더로서 가진 면모는?", "도서정가제에 관한 본인의 생각은?",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찬반 입장은?" 모든 걸 간파하겠다는 말쑥한 정장 차림의 면접심사관 네 명과 무엇이든 방어하겠다는 네 명의 지원자가 치열하게 기 싸움을 벌인다. 이곳은 다름 아닌 한 경제단체 산하의 '경영 동아리 면접장'이다.

 

이 동아리의 회원이 되려면 최대 15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경영 동아리 중 하나인 이곳에서 활동하면 취업때 하나의 스펙으로 쓸 수 있음은 물론 경제계 인사들과 인맥을 쌓아 취업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입소문 때문이다. 자신이 경제, 경영 관련 학과이냐 아니냐는 고려사항이 아니다. 요즘은 어떤 학과라도, 취업하려면 경영 동아리 스펙 하나쯤은 필수라고 여긴다. 그래서 매년 학기 초만 되면 취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각종 경제, 경영 동아리에 몰려든다.

 

기본 8대 스펙을 만들기 위해 대학생들은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학점을 기본으로 자격증, 외국어 점수, 공모전 수상, 인턴, 동아리 등 대학교 안팎의 기본 항목들을 충실히 채우고 나서야 조금 안도할 수 있다. 우리가 만난 대학생은 '스토리가 있는 스펙'을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스펙 리스트'를 만들어 여름방학과 아르바이트 임금을 모두 투자했다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취업할 수도, 잘 살아갈 수도 없는 세상이 됐기에 나타나는 서글픈 트렌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대학은 왜 존재해야 할까? 대학은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기에, 우리는 이렇게 엄청난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대학에 시간과 돈을 쏟고 있는 걸까. 학자금 대출액만 연간 무려 2조원인 시대. 예전처럼 취업을 보장해주지도 않고, 그러한 대학 본연의 기능인 '지성과 지혜의 축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바로 이 질문을 확인하고 그 답을 찾아보고자 했다.

 

시작은 먼저 한국 대학생의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명문 사립대에 임시 부스를 설치해 학생들의 속마음을 듣고, 서울대에서 A+만을 받는다는 학생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K는 주변의 많은 학생들처럼 지역의 유수 특목고를 졸업했고 내로라하는 대학에 와서도 고학점을 유지하는, 누가 봐도 '모범생'이었다. 그에게 "고학점을 유지하는 비밀을 들려달라"고 질문했다. K는 교수님의 말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모두 적는 '전사'기술과, 책과 노트의 완벽한 암기를 고득점의 비결로 털어놓았다. 또한 어떻게 필기를 하고, 어떻게 중간, 기말고사에 대비하는 것이 좋은지도 자세히 알려주었다. 요약하자면 '비판적인 생각'은 버리고, 교수와 대학의 제도를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였다.

 

K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지금과 같은 공부 방법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도 아니고 창의적인 사고에도 적합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학자가 꿈이었던 K에게 고등학교 시절에 꿈꿨던 대학 공부는 창의적인 생각을 실현하는 장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K에게 대학은 다음 과정을 위해 '길들여져야만 하는' 하나의 관문이 됐다. 강의를 그대로 받아적어 암기하지 않고,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공부한 소수의 다른 친구들은 좋은 학점을 받지 못했다. 교수님에게, 대학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다고 K는 털어놓았다. K는 자책했다.

 

많은 학생들이 K와 같았다. 분명 지금의 대학이 자신에게 일자리도, 그렇다고 지식과 지혜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길들여져야 한다. 그나마 그렇게 4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 졸업장 하나라도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있었다.

 

취재를 해나가면서 지금의 대학 문제, 교육 문제는 사실상 사회, 경제 문제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모두가 극한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고, 남보다 더 높은 학점과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에서 '온순한 양으로 길들여지'게 된 것이다. 이는 UC버클리와 같은 미국 명문 대학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 결국 천문학적인 돈과, 20대의 절반이라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 대학.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 밖에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목소리도 미국 내에서 나온다. 대학은 그야말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결국 제작진이 찾은 대학의 방향은 '지혜'였다. 방송에서는 '마스터키'로 표현했지만, 이는 사실상 '지혜'다. 학점 은행식, 취업학원이 아닌, '삶의 순간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혜'. 일자리가 부족한 이 시대에 혼자만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경쟁 속에서 스펙 쌓기에 발버둥 치는 이기적인 개인이 아니라 '함꼐 잘 사는 방법을 같이 도모할 수 있는 지혜', 틀에 맞춰져 한정된 일자리를 다투는 게 아닌 '새로운 직업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지혜'다. 미국 세인트존스 칼리지에서 본 '지혜를 다루는 기술'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상상한다. 우리에게 적용하는 길이 쉽지 않겠지만, 진정 미래 세대가 더욱 잘살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고 믿는다.

 

왜 우리는 온순한 양이 되어갈까_ 명견만리

by 미스터신 2017. 9. 29. 11:49

아버지가 오랜 기간 교육 상담을 해오면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언급한 사례를 중심으로 얘기해보겠다. 다음은 학력과 지적 수준,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부모님과 자녀가 둘인 가정의 상담 사례다.

이 가정은 아빠와 엄마의 교육관이 상반되었다. 아빠의 교육관은 초등학교 시절은 그냥 즐겁게 놀고, 중학교 들어가 공부를 시키자는 것이었다. 엄마의 교육관은 반대였다.

첫째는 아빠의 교육관이 이겨서 그렇게 키웠다. 하지만 나중에 둘째는 엄마의 교육관으로 키우게 된다. 상담 당시 첫째는 5학년이었고 둘째는 2학년이었다.

"첫째는 무엇을 하든 간에 귀찮아하고, 괴로워하고, 노력은 많이 하나 성적이 나오지 않아 걱정이다. 아빠가 등산을 함께 하는 등 인내심을 키워주려 노력하여 인내심은 꽤 많은 것 같은데, 항상 힘들어한다. 둘째는 무엇을 하든 적극적이고, 욕심이 많고, 피아노 대회도 입상하고, 영어도 오빠를 가르치는 수준이다. 첫째가 아들이라 더 기대가 큰 편인데 어쩌면 좋은가?"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공부에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학자로 성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여 키울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학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주 약간의 기회를 더 가지게 할 뿐이다. 실제로 인생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서 우리가 의미 있게 받아들여야 할 내용은 정서적 측면이다. 공부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 용기, 도전, 흥미, 자신감과 같은 정서적, 감정적인 측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수학 선생님을 좋아해서 수학을 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칭찬 하나에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내가 또래보다 잘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더 도전하게 되고 흥미를 가지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공부를 했더니 흥미가 생기기도 한다. 꼭 흥미가 먼저 생겨야만 공부를 하려고 덤벼드는 것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공부는 성취감과 같은 정서적인 면이 매우 중요하다.

위의 사례에서 오빠의 경우는 스스로 흥미가 생겨서 공부를 적극적으로 하기를 기다리고 마음껏 놀게 했지만, 정작 또래 사이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또래보다 못하다는 것을 반복해서 느끼다 보니 공부를 포함한 다른 분야까지 괴롭고 귀찮은 상태가 되었다.

이러한 학생이 나중에 반전이 생겨 일취월장하여 공부에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조건은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책을 읽는 습관이 갖춰진 상태인 것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책 읽기 자체가 모든 과목의 전이효과가 커서 나중에 치고 나가는 폭이 크다.

승민이도 나중에 자녀에게 아버지가 했던 방식을 써보면 좋겠다. 승민이 어머니는 승민이가 스스로 책을 잡을 때까지 계속해서 책을 읽어줘서 책은 재밌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시켰다. 놀이와 공부가 구분이 안 되는 유치원 때 영어, 수학, 체육, 바이올린, 피아노 등을 접하게 하였다. 승민이는 어머니가 퇴근할 때까지 이 수업을 받았는데, 이런 수업을 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4학년까지 이어졌고, 4학년 때 처음으로 승민이가 어머니에게 학습량이 너무 많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 대폭 줄이고 스스로 공부할 선택권을 준 것이다. 4학년까지는 승민이가 노는 것인지 공부하는 것인지 몰랐기 때문에, 한 과목을 빼려고 해도 빼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태권도 수업도중에 너를 빼내서 외식을 했을 때 태권도장에서 못 놀았다고 울었을 정도니까.

그리고 승민이가 이렇게 이야기했지.

"다른 애들은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을 힘들어해요. 저는 하나도 안 힘든데."

실제로 초등학교 6학년 한 반의 상황을 보면, 학습 능력이나 습관의 차이가 최대 5년의 차이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 어떤 아동은 수업하는 것을 만화영화 보듯이 편하게 즐겁게 하지만, 어떤 아동은 국어책 한 줄 따라 쓰는 것도 너무 힘들어하고, 수학책 한 문제 푸는 것도 고통스러워할 정도로 큰 차이가 난단다.

아버지가 생각하기에 공부는 정서적인 요소가 중요하고, 정서적인 면은 유아기 때 많은 부분이 결정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장하면서 또래에서 내가 잘한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아버지는 강남의 한 고등학교의 대학 진학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중학교 때 각 지역에서 전교 1등을 하거나 강남 지역에서 우수한 성적을 냈던 학생들이 모인다는 곳이다. 하지만 진학 결과는 참담했다.

학생 구성원들만 봤을 때는 모두가 일류대를 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매우 적은 비율만 일류대를 갔다. 내신의 영향도 있겠지만 내신만으로는 설명의 근거가 부족했다. 투자 대비 수능 점수 결과 자체가 매우 비효율적이다. 선행학습도 하고, 고등학교 3학년 입시생을 방불케 할 정도로 중학교 생활을 했던 학생들임을 감안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자신감에 비해 너무 뛰어난 동료들의 모습을 보니 정서적인 부작용을 가져왔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아버지는 생각한다. 얼마 전 아버지는 친구들과 스크린 골프를 치러 갔다. 모두 처음 골프채를 잡았는데, 갈 때마다 순위가 정해졌다. 모두 다 엉터리이고 못하는데도, 높은 순위를 많이 했던 친구들은 골프에 흥미를 느껴서 계속하게 되고 잘하게 되었다. 하지만 낮은 순위를 했던 친구들은 골프에 흥미를 못 느끼고 아예 중단하게 되었다.

스스로 책을 읽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은 학교 성적에만 연관이 있는 게 아니다. 인성과 행복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인생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누구나 갖고 싶은 직업은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교대에 가야 교사가 되고 의대에 가야 의사가 되듯이, 대학 입학을 통해 어느 정도 가려진다. 청소년기에는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참고 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하기 싫은 일을 참고 하는 연습은 나중에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능력을 준다.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행복할 수 있는 능력, EQ의 공통점 등을 간단히 한 문장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하기 싫은 일을 참고 하는 능력"

이것은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어도 이런 능력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그렇지 못하면 무척 짜증스럽고 고통스러워한다.

이 능력이 갖춰져 있으면 앞으로 살면서 평생 주어질 책임과 의무와 고통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므로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행복을 연습하기 위한 도구의 측면으로 볼 때라도, 이런 수양과 연습의 차원에서 공부를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

마흔살 행복한 부자아빠의 특별한 편지_ 아파테이아

by 미스터신 2017. 6. 23. 20:01

책과 더불어 살아온 저자로서 한 가지 송구스러운 충고 아닌 공감을 위해 남기고 싶은 뜻이 있다.

나는 세계 여러 지역과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 왜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이 선진국가가 되고 세계를 영도해가고 있는가. 그 나라의 국민들 80% 이상은 100년 이상에 걸쳐 독서를 한 나라들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러시아 등은 그 과정을 밟지 못했다. 아프리카는 물론 동남아시아나 중남미에 가도 독서를 즐기는 국민적 현상을 볼 수가 없다.

나는 우리 50대 이상의 어른들이 독서를 즐기는 모습을 후대에게 보여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시급하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우리들 자신의 행복인 동시에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진입, 유지하는 애국의 길이라고 확신한다. 나이 들어 느끼는 하나의 소원이기도 하다.

김형석, '백년을 살아보니' 중에서

by 미스터신 2017. 1. 25. 14:55

나는 지금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마다 TV 생방송을 진행한다. 여기에 짬짬이 글을 써서 책을 내고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는 기업이나 학교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한다. 흔히 교수라고 하면 아이들을 가르칠 때만 빼고는 연구실에 머무르며 비교적 여유롭게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때론 잠시 책상에 앉을 틈도 없이 누구 못지않게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절대 거르지 않는 것은 바로 독서다. 10분 동안 2페이지를 읽든, 필요한 자료를 찾느라 10권을 읽든 날마다 독서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은 조금씩 다르지만 하루도 책을 펼치지 않은 날은 없었다. 내가 책을 쓰는 저자이고, 교수라서가 아니다. 일과 삶 양쪽에서 나를 성장시키고, 눈앞의 문제에만 매달리느라 중요한 결정을 그르치고 후회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유일무이한 도구가 바로 독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 법학부를 졸업한 뒤, 나는 교육자의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에 진로를 바꾸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만큼 하루빨리 논문을 쓰고 졸업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마음은 바빴지만 현실은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장장 8년이라는 시간을 대학원에 다니며 공부하는 동안 나이는 서른이 넘었고, 이렇다 할 직장도 없는 빈털터리였으며, 힘들게 쓴 논문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게 원하던 공부를 하면서도 "지금 하는 일이 뭐예요? 수입은 얼마나 되죠?" 라고 묻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불안하고 초조했다. 다른 이들은 한참 앞서가고 있는데 나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별 성과도 없고 초라해 보일 뿐인 것 같아 대학원 따위는 그만둘까 고민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 미래에 대한 불안과 회의감 속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독서밖에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고,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그래도 뭔가를 배울 수 있으니 더 낫다는 생각 때문에 미련할 정도로 책의 세계로 파고들었다. 책을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와 같은 문제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당시에는 매일 책을 읽는 습관을 하나 만드는 것이 유일한 수확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시간 강사부터 시작해서 대학에서 자리를 잡고,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동안 그때 내가 얻은 것이 독서 습관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하는 힘, 풍부한 간접 경험, 나와 타인 나아가 세상을 이해하는 유연성 등 독서를 통해 무수히 많은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흡수한 저자들의 생각과 지식, 삶이 내면에 켜켜이 쌓여 무슨 일이든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주었고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지 않고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다시 말해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은 내가 똑똑하거나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매일 책을 읽은 힘 덕분이었다.

 

신문, 텔레비전, 인터넷 등 책보다 재미있고 즉각적인 정보와 지식을 주는 도구들이 많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책을 읽는 것만큼 귀찮고 머리가 아픈 일이 없는데, 책을 읽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냐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살기로 마음먹었다면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나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으로 살고 싶다면, 단단한 내공을 쌓아 삶의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해도 우리가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은 한정되어 있어서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나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이 깊은 내공을 쌓는 데 필요한 재료의 질과 양을 더하는 행위다. 내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격렬하게 부딪히기도 하고 마치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섞이기도 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생각이 탄생한다. 그리고 여기에 내가 살면서 겪은 경험과 지혜가 합쳐지면서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내공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독서는 사람이기에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시간적, 경험적 한계를 극복해서 내면에 숨겨져 있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떤 고비나 위기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인생을 꾸려 나간다.

 

자꾸 똑같은 실수를 하면서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며 스스로를 비하할 때가 있다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간관계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크고 작은 실패로 자신감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책을 읽길 바란다. 죽음을 이겨 내고 일본 최고의 기업가가 된 손정의나 술과 마약으로 망가졌던 삶을 추슬러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토크쇼 진행자가 된 오프라 윈프리를 만든 것도 다름 아닌 책이었다. 책은 나를 다독이고 위로하며,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당당한 자존감과 긍정의 힘으로 어디에서나 빛나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혹시 지금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내심 독서는 귀찮고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독서의 기술을 모르기 때문이다.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거나 내용이 어려운 책일수록 좋은 책이라는 등의 책과 독서에 관한 수많은 편견과 압박에서 벗어나라. 독서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지금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책을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길 바란다. 1권을 재미있게 읽어야 100권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남들보다 많은 책을, 정확하게 읽고, 바로 일과 삶에 활용할 수 있다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승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2005년 미국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서 인생의 선택을 '점과 점 이어 긋기'에 비유하며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지금 한 일이 인생에 어떤 점을 찍는 것이라고 한다면 미래에 그것들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돌이켜 보니 그 점들은 이미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 내가 하는 어떤 일이 지금 혹은 미래에 어떤 의미인지 당장은 알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훗날 과거를 돌아보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언젠가는 점과 점들이 이어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현재를 충실하게, 우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였다.

 

독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읽는 책 한 권이 내게 무엇을 줄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직하게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수많은 점들을 갖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깨닫게 되지 않을까. 점과 점이 이어져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우리 함께, 책으로 찍은 점을 늘려 나가자.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_ 사이토 다카시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7. 1. 14. 15:39

아이를 사랑손님처럼 대하라

 

하루에 3시간이 아니라 10시간씩 붙어 있으면서 최선을 다했는데도 아이가 잘못 자랐다고 혼란스러워하는 어머니들이 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매직타임을 잘못 사용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는지 또한 중요하다. 블랙매직, 즉 흑마술이란 귀신이나 악마 등 사악한 존재의 힘을 비려 마술의 힘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잘못된 말과 행동이 흑마술처럼 작용할 수 있다. 3시간의 매직타임이 블랙매직이 되지 않기 위해 생각해볼 것이 있다.

 

아이와 엄마는 서로에게 거울 같은 존재이다. 엄마의 감정, 행동, 말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같이 있어도 불안 수준이 높아서 지나치게 안달복달하는 엄마라면 아이가 안정적인 정서를 갖기 힘들다. 아이가 늘상 보고 듣는 것이 불안과 관련된 감정과 행동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불안은 각자의 경험에서 형성되었고 개인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겠지만 부모 자신이 풀어야 하는 문제이다. 새로 인생을 시작하는 아이에게 막무가내로 "엄마가 살아봐서 하는 말인데" 하며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런 부모라면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부모에게 이것처럼 잔인하고 기분 나쁜 말도 없으리라. 하지만 얼마나 많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상담실에서 "차라리 부모님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흐느끼는지 모른다.

 

불안이 지나쳐 자식을 과잉보호해서 오히려 망치는 일도 있다. 헬리곱터맘, 혼테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결혼 예단으로 한몫 단단히 챙긴다는 뜻인 혼테크는 망신스럽기까지 하다. 결혼한 지 5년 안에 이혼하는 부부 중 절반이 예단 문제때문이라니 자식을 망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리 부모가 마마보이, 파파걸을 만들려고 해도 자식이 거절하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부모의 자식은 거절을 하지 못한다. 불안의 뿌리가 마음 깊이 박혀서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 놓이면 극도로 예민해지고 위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악습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한결같이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부정적인 메시지로 사고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 어릴 때 반복한 사고는 지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듣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산다. 냉정하고 폭력적인 부모를 보고 자라면 이 사람의 세계에서 폭력은 물처럼 흔한 것이 된다. 생애 초기에 특정한 상황에서 학습한 경험은 다른 상황에까지 확대되는 일반화가 된다. 어릴 때 맞고 자란 여성이 결혼한 후 남편의 폭력 행동에 둔감해지는 이유이다. 여러 번의 일반화를 경험하면 '나는 원래부터 매를 맞을 만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긴다. 한번 고정관념이 생기면 다른 세상을 경험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그렇게 주눅이 들면 다른 사람도 나를 그렇게 여기고 신뢰하지 않으며, 나는 세상에 대해 또 눈치를 본다. 이렇게 악순환을 겪으면서 점점 변화하려는 의지는 사라지고 포기하게 된다. 원래 그렇지 않았던 사람도 세상이 보는 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며 단추를 잘 끼웠다면 그다음은 부모의 언행일치, 즉 일관성이 중요하다. 메시지는 긍정적인데 막상 부모의 행동이 그렇지 않다면 아이는 혼란에 빠진다. 언행일치는 특히 아이가 자랄수록 점점 중요해진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는 무슨 말을 할지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다 말실수를 해도 어차피 아이도 잘 알지 못하고 금방 잊어버린다. 하지만 아이의 전두엽이 발달하고 맹렬한 도덕적 사고를 시작할 무렵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엄마의 말 한마디 그냥 놓치는 법이 없고 정확하게 허점을 잡아 찔러댄다. 바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점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몸 고생은 끝나지만 마음고생은 더 심해진다. 아이가 친절하지 못하다고 불친절하게 야단치는 엄마, 아이 얘기는 듣지도 않고 소리를 지른 후 너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말을 안 듣느냐는 아빠. 이런 장면을 자주 본 아이는 일찌감치 인생이 모순이라는 냉소적인 시각을 갖게 되어 삶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진다. 아이가 어릴 때와 달리 부모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면 부모의 언행 불일치를 많이 봐서 설득력이 없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 부모들이 얼마나 모순되는 언행을 보이는지 하루 일과를 녹화해서 본다면 부끄러워 자리를 피하고 싶을 것이다.

 

어떨 때는 80점만 받아도 잘했다고 하고 어떨 때는 90점을 받아도 야단치거나, 만날 쌀쌀맞게 굴다가 100점을 받아 올 때만 힘껏 안아주며 관심을 보이면 아이에게 존경받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아이는 부모에게 조건적인 사랑만 받았기 때문에 자기 가치감이 떨어져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쉽다. 심지어 같은 자리에서 변덕을 부리며 냉탕과 열탕을 왔다 갔다 하는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 화가 나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다. "당장 안 나가?" 그래서 나가면 "나가라고 바보같이 나가?" 라고 또 소리를 지른다. "말 좀 똑바로 해." 그래서 똑바로 하면 "어따 대고 또박또박 말대꾸야?" 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아이는 차라리 미치는 것이 낫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는 미쳐버린다. 냉탕과 열탕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전문용어로 '이중 구속' 형태의 대화를 만들어버린다. 어느 쪽으로도 행동할 수 없게끔 양쪽에서 조인다는 의미로 아동 정신분열증의 원인 중 하나다.

 

부모라면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는 그렇지 않더라도 자식에게만은 온화해야 한다. 그럼에도 엄마가 차고 냉정하다면, 아빠가 성질이 급하고 화를 잘 낸다면, 아이는 나름대로 살길을 찾는다. 냉정한 엄마나 불같이 화를 내는 아빠를 두어도 성공해서 잘 사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하지만 냉탕과 열탕을 왔다 갔다 하는 부모 밑에서 아이는 살길을 찾지 못한다. 처음에는 무력감과 혼란만 느끼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급기야 정신이 통합되지 못해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이에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아이에게 죄책감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만약 기독교 집안이라서 원죄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면 그 원죄가 이미 사함을 받았다는 얘기도 반드시 해주어야 한다.

 

죄책감은 자기 가치감, 도덕심, 애타심의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죄책감을 갖고 있으면 스스로 떳떳하지 않고 항상 눈치를 보며 기죽어 지내기 때문에 자기 가치감을 느낄 수 없다. 내가 죄가 많으니 당연히 남도 많을 것이라고 여겨서 항상 남을 의심하거나 깔보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도덕심도 발달하지 못한다. 반대로 스스로 당당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남들도 나만큼 훌륭하다고 여기며 자연히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애타심이 발달한다. 어려서부터 고귀하고 당당하게 대접받은 아이가 그런 어른이 되고, 죄 없이 무결하고 고귀한 아이로 인정받아야 죄책감을 느낄 행동을 하지 않는다.

 

물론 죄책감을 남기지 말라고 해서 잘못을 무조건 묵인하라는 뜻은 아니다. 잘못했으면 야단치고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해야 한다.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대가를 치르고 진심으로 뉘우치게 해야 한다. 진심으로 뉘우친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잘못된 네 행동을 꾸짖은 것이지 너를 미워해서가 아니라고,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알려주는 것이 죄책감을 남기지 않는 방법이다.

 

죄책감 없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네 살 무렵부터 골드 스탠더드를 만들어 지키게 하면 좋다. 살면서 꼭 지켜야 하는 원칙을 부모가 잘 생각하여 정하면 된다. 주의할 점은 5개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수가 많아지면 희소가치가 떨어져서 꼭 지키겠다는 마음이 사라진다. 몇 번 주의를 주었는데도 골드 스탠더드를 계속 어기면 과감히 매를 들어야 한다. 반드시 매를 들어야 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자신을 해칠 때이다. 두 번째는 남을 해칠 때이다. '거짓말하지 않기'는 당연히 지켜야 할 원칙이지만 골드 스탠다드에 포함될 정도의 원칙은 아니다. 지키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아빠가 싫어도 좋다고 해야 하고, 엄마가 할머니처럼 보여도 예쁘다고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거짓말을 하면 당연히 야단맞고 거짓말을 못해도 영문 모르게 야단맞는 황당한 상황밖에 볼 것이 없으므로 이런 골드 스탠더드는 바람직하지 않다. 골드 스탠더드 2개 정도는 아이가 좀 더 컸을 때 만들어도 좋다.

 

금쪽같은 골드 스탠더드의 빛이 바래지 않으려면 평소에 웬만하면 잔소리를 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중요한 전략이다. 아무 때나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하다 보면 어느 날 작심하고 골드 스탠더드를 위반한 데 대한 집행을 할 때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 무서운 것도 한두 번이지 매일 무섭게 야단치는 것은 훈육의 효과를 떨어뜨린다. 부엉이처럼 침묵하다가 아이가 정말 잘못했을 때 제대로 한 번 무서운 모습을 보여야 효과가 있다.

 

아이의 눈을 보지 않고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훈계는 잔소리다. 잘 자라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잔소리를 많이 들은 아이는 오히려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는 독불장군이 되거나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허약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아이가 크면 말을 점점 줄이자. 말을 아끼라는 말이지 마음을 아끼라는 말이 아니다. 웃는 얼굴로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은 부모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엄마가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 죄책감을 심어주지 않으면서 골드 스탠더드를 만들어 지키게 하면서 아이를 키웠다. 또 평소에는 말을 아꼈고 말을 해야 할 때는 왕창 했다. 이렇게 했다면 거의 완벽하다. 부모 역할의 최고봉에 거의 올랐다. 이때 중요한 마지막 관문이 있다. 바로 감정의 정화이다. 전문가들은 벤틸레이션이라는 용어를 쓴다. 벤틸레이션이란 '환기'라는 뜻으로 굴뚝 청소를 떠올리면 된다. 꽉 막힌 굴뚝을 뚫어 연기를 빼주어야 집이 엉망이 되지 않는 것처럼 아이들의 꽉 막힌 감정을 그때그때 뚫어주어야 큰 탈 없이 자란다. 감정은 왜 막힐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너무 감정을 억압해서, 또 하나는 제때 뚫어주지 않아서이다.

 

아이도 학교를 오가는 길에서, 학교에서, 또 집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그 분풀이를 하고 싶어 한다. 일단 분풀이가 끝나면 언제 화를 냈느냐는 듯이 다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하루하루 인생을 헤치고 모으면서 아이는 성장한다. 이 분풀이가 바로 벤틸레이션으로, 올바른 성장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정신과에 내원하는 환자 대부분은 성장기에 제때 벤틸레이션을 하지 못해 분노와 허탈, 우울과 공허감이 누적되어 삶의 동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돈 내고 심리 상담 받으면서 벤틸레이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적된 정서 억압은 사회 부적응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켜 본격적으로 심리 상담을 시작한다 해도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서 난폭한 행동을 보이고 심지어 교사에게 대드는 것은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낮에 학교에서 화가 날 수도 있고 모멸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저녁에 부모가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며 이해시키고 감정을 받아주면 아이는 그날의 스트레스를 잊고 다음 날 즐겁게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의 말을 듣지 않는 부모보다 더 나쁜 것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을 때 오히려 부모가 "그런 것도 참지 못하냐"며 더 화를 내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의 마음은 집에서도 닫혀버린다. 화난 마음이 닫혔을 뿐 없어지지는 않았으므로 아이는 학교에서 그 화를 주먹과 욕설로 표출한다.

 

감정의 굴뚝을 그때그때 풀어주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뇌에서 감정을 처리하는 변연계 때문이다. 변연계는 힘이 무척 세서 한 번 나쁜 영향을 받으면 아이가 자라 늙어 죽을 때까지 영향력을 발휘한다. 특히 아직 대뇌피질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초등학생 때까지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워 쇠고기 파동 시위에 끌고 나가거나, 단체 행동을 하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삭발하는 부모들은 제 손으로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셈이다. 자유와 민주를 위해 그런 행동을 했다 해도 아이는 그 당시 현장에서의 느낌과 감정만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자유와 민주를 위한 행동이라는 이성적인 판단은 훨씬 나중에 할 수 있으며 그전에는 오직 '좋다', '나쁘다'는 감정적 판단만 있을 뿐이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고 옆에서 무서운 동물들이(나중에 경찰임을 알게 되지만) 엄마를 죽이려 하고, 엄마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며 흐느끼는 행동은 아이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렵고 위협적인 인상으로 남는다. 두렵고 위협적인 인상이 뇌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상 이성의 뇌가 아무리 발달해도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린다.

 

심리 치료란 이러한 불안의 시발점을 찾아 성인의 시각에서 그 당시 일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어머니의 행동이 사실은 대의를 위한 행동이었으며 그때 나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현실을 성숙한 눈으로 보지 못했음을 깨닫고, 어머니를 용서하고 감정을 털어버리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때로는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한다. 이성이 발달하기 전의 아이에게 부모의 가치관과 대의명분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은 그저 세뇌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행동이라도 아이에게 불안을 줄 수 있다면 엄마, 아빠 둘이서만 하는 것이 옳다. 아이가 안전하게 자라도록 보호한 다음, 어른들의 대의를 생각하자, 제 2차 세계대전 중 처절한 전투를 벌인 영국과 독일은 그 와중에도 최대한 아이들은 보호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가능하면 총성이 들리지 않는 시골로 보냈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 속 아이들의 위대한 모험은 그렇게 탄생했다.

 

20년 넘게 정신과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한국의 정신 질환 추세를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다. 1990년에 정신과 심리실에서 수련을 받기 시작할 때는 정신과 환자들의 연령대에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유아기의 발달 지연 문제를 지나 유년기인 초등학교 입학 무렵의 적응 문제를 넘어가면 잠시 멈추었다가 일부 청년이 전두엽 기능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를 감당하지 못해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동안 소강기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50대에 갱년기 우울증, 60대에 노인 우울증과 치매가 발병하는 양상이었다. 당시 같이 공부하던 의사들끼리 농담 삼아 "우리는 모두 서른 살이 넘었으니 정신분열증은 걸리지 않겠다. 이제 치매만 조심하면 되네" 했던 기억이 난다. 정신분열병은 전두엽 기능이 폭발적으로 발달할 때 필요한 도파민 분비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니 그 시기를 잘 넘겼다면 당연히 앞으로는 사고의 혼란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였다.(2012년부터 정신분열병이란 용어가 조현병으로 바뀌었지만 일반적으로 정신분열병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환자 연령대에 변화가 생겼다. 일단은 예전에 없던 왕따나 학교 폭력, 인터넷 중동으로 청소년기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졌고, 한국인의 일생에서 가장 힘들다는 고3시기를 잘 버텨냈음에도 20대 환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대학에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졸업한 후 직장을 얻지 못해 우울해하며, 직장에 가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애인과 헤어지면 바로 손목을 긋고, 군대는 할 수만 있다면 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군대에 가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청소년기의 혼란은 30대까지 연장되어 결혼을 해도 아이를 건사하지 못해 부모에게 맡기고 주식으로 한 방에 돈을 벌려다가 가정이 파탄 난다. 갱년기 우울증은 과거보다 10년이 빨라진 40대부터 나타난다. 한마디로 소강기가 없어졌다.

 

놀랍게도 소강기가 없어진 최근 10년은 조기 유학이 급증한 기간이기도 하다. 통합적인 뇌 발달이 아닌 부분적인 뇌 발달을 목표로 한 결과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조기 유학의 열병은 한두 가족의 가정을 파탄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려할 만한 사회현상을 함축한다. 먹고살 만한 경제력과 찬란한 문화를 갖추고 있음에도 조기 유학비율이 세계 1위가 되었다. 경제적으로 무리가 있는데도, 아이가 진정으로 행복해하지 않는데도, 건강한 가정이 무너지는데도 무리해서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신이라면 그 잘못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나는 정부의 무능함을 탓한다. 조기 유학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상대적인 박탈감과 열등감에 허덕인다. 그래서 조기 유학 대신 서울대 법대에 집착하는 터무니없는 보상 심리가 발동하면서 온 가족이 숨 제대로 쉬지 못하니 정신과 내원 환자들의 연령대에 소강기가 없어진 것이다.

 

조기 유학을 떠나는 가족에게는 잘 다녀오라고 해주자. 부모와 함께 외국의 문물을 접하면서 영어 능력도 키우는 복 받은 가족에게는 진심으로 부러운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그런 복이 없다면 다른 복이 있음을 알고 빨리 그 복을 찾으면 된다. 내 주머니 속에 있는 다이아몬드를 몰라보고 남의 보물에만  정신이 팔려 탐내고 질투하며 속상해하는 것만큼 시간 낭비가 어디 있을까. 세상에는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으니 어느 것이 진정 행복한 길인지도 알 수 없다. 우리 가족의 상황과 내 행복의 색깔에 맞는 길을 찾아갈 뿐이다.

 

우리는 행복하고자 많은 것을 시도했지만 행복은 오히려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방법을 바꿔야 하지 않을가. 아이만의 조기 유학, 영어 올인 등 특별한 공부 방법은 특정한 아이에게만 효과가 있고 내 아이와 우리 가족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엄마 냄새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정신과에 오는 아이들의 부모 중 가장 많은 유형은 엄마는 너무 약해서 아이의 든든한 벽이 되어주지 못하고, 아빠는 돈 버느라 가족에게 관심이 없는 유형이다. 이런 부모 아래에서 자라는 아이는 가족 간의 친밀감이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 가치감이 낮다. 게다가 부모에게 문제 해결 능력을 배우지 못해 학교와 사회에서도 자신감이 없고 우울감,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그런 가정이라도 가정의 모습을 유지하며 하루 세끼 밥 먹으면서 살아가면 아이가 입원까지 하지는 않는다. 입원할 만큼 심각해지는 것은 아버지가 아이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아이와 아내를 무시하고 때리거나, 엄마도 아이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오히려 욕을 퍼붓고 밥도 주지 않는 경우이다. 그리고 이런 폭력이 없어도 아이가 총체적 난국에 빠지는 것은 엄마가 갑자기 영원히 가출한 경우이다.

 

아이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예고 없는 엄마의 가출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여도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여전히 잔소리를 했고 아버지는 여전히 겉돌았다. 변한 것은 엄마가 없어진 것이다. 아이는 평소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도 엄마가 가출한 후 아이는 무너져버렸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며 절규했다. 마음이 여린 아이는 혼자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었던 고통과 분노를 가짜 자신, 데이먼을 통해 표출했다.

 

아이가 무너진 것은 엄마 냄새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엄마 냄새가 사라졌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병에 걸리진 않는다. 아이의 누나와 동생은 이런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선천적으로 정신력이 약했는데 후천적인 스트레스를 만나 정신병을 일으킨 것으로 진단되었다.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담배를 많이 피우고도 폐가 선천적으로 강해 암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듯이 선천적으로 정신력이 강한 아이는 같은 스트레스 상황도 잘 이겨낸다. 폐기능이 원래 약한 사람이 담배라는 부정적인 자극을 자주 접하면 쉽게 폐암에 걸리는 것처럼 선천적으로 정신이 유약한 데다 엄마 냄새가 없어진 후천적인 스트레스가 더해져 정신병이 생긴 것이다.  정신이 유약한 아이에게 사라진 엄마 냄새,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엄마 냄새는 너무도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누나와 동생도 사라진 엄마 냄새의 영향이 전혀 없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냄새의 정확한 본질은 무엇일까? 사랑의 냄새는 어디에서 나올까?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우리는 옥시토신을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부른다. 특히 여성의 자궁 수축과 젖분비를 촉진하며 모유 수유를 할 때 옥시토신이 다량 분비된다. 옥시토신을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애무해서 아이를 만들게 하고, 자궁을 수축해서 아이가 빨리 나오게 하며, 아이가 먹을 젖이 나오게 하고,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 엄마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오게 하는 등, 온통 사랑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은 남성의 뇌에서도 분비되지만 여성의 자궁과 유방에 옥시토신 수용체가 있어 사랑의 냄새는 여성이 훨씬 더 진하다.

 

게다가 아이는 엄마 냄새를 가까이에서 맡는 정도가 아니라 10개월 동안 엄마 몸속에서 순도 100%의 냄새를 공유하다가 이 세상에 나온다. 그러니 아이에게 엄마 냄새는 생명의 냄새이기도 하다.

 

앞서 엄마가 가출하면 아이는 정신과에 입원할 정도로 무너진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가 가출한 집은 어떨까? 아주 복합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아빠가 가출한 집에서 입원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지는 아이는 아직 보지 못했다. 아빠들에게는 서운한 말이겠지만 아빠는 가출해도 집에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밥을 해주지도 빨래를 해주지도 않았고 엄마처럼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않았다. 아빠가 갖다주던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면 엄마 혼자서도 아이에게 밥을 해주고 학교에 다니게 한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답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엄마들이 엄마 냄새를 가두는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남편에 남편에 대한 순종을 강조한 전통적 아내의 역할을 잘못 해석하고 남편만 바라보는 남편바라기가 되어서이다. 이런 아내는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남편만 바라보는 망부석이 된다. 가정에 문제가 생겨도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남편이 자식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고 화만 내다 지쳐 아이를 방치하기까지 하는 엄마들이 많다.

 

또 하나는 명백한 스트레스다. 오랜 기간 정신과에 내원한 환자들을 볼 때 경제적 스트레스와 대인 갈등 스트레스가 엄마 냄새를 잠그는 요인 1,2위를 다툰다. 병원에서는 그중 대인 갈등 문제를 다루는데, 대인 갈등 중에서도 남편과의 갈등, 남편의 외도는 엄마 냄새와 엄마 마음을 가둬버리는 초강력 마비제이다. 남편의 외도는 아내의 지적수준에도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행동까지 하게 만든다. 여기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더해지면 자식을 포기하고 가출하는 지경에 이른다.

 

괜찮다. 두려울 것도, 땅을 치며 후회할 것도 없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다만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먼저 세 가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어릴 때 부모에게 받았어야 할 것을 받지 못한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 지금부터라도 줄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긍정의 마음, 시간이 걸리겠지만 기다리면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는 믿는 마음이 중요하다.

 

하루 3시간 엄마 냄새_ 이현수 박사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12. 16. 13:53

그래도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까지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장난감을 갖고 놀 시간에 글자를 가르치는 것이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라면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전두엽이 발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장난감은 전두엽을 가동시키지만 단순한 글자떼기는 고작 측두엽만 가동시킨다는 사실을 모른다. 물론 측두엽은 기억과 학습, 정서까지도 관장하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히 학습을 기억하는 단계를 넘어 통합과 창조를 해야 하는데 부모들이 너무 측두엽 개발에만 열을 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지루한 것은 오히려 획일적인 중, 고등학교 환경이다. 지루한 환경이 좋지 않은 이유는 뇌가 지루하다고 받아들이면 도파민이 더 이상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흥미롭고 특히 예상하지 않았던, 도전해볼 만한 자극이 주어져야 분비된다. 텔레비전을 보는 아이의 뇌를 관찰해보면 처음에는 대뇌피질의 발화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한참 지나면 피질 활동이 잠잠해지며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뇌가 지루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주 따끈따끈한 뇌 연구 결과가 있다. 2010년에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연구진이 생후1~2일 된 신생아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신생아의 뇌가 24시간 내내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결과에 대한 연구자들의 해석이 상업적으로 잘못 이용될까 봐 걱정된다.

 

어린이의 사고 과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스위스의 심리학자 피아제는 어린이의 인지 발달을 감각 동작기(0~2세), 전조작기(3~7세), 구체적 조작기(8~12세), 형식적 조작기(13~16세)의 4단계로 분리했는데, 크게 전조작기 단계(7세 이전)와 조작적 단계(7세 이후), 2개의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조작이란 심리적으로 내면화된 정신적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로, 무언가를 비교하고 법칙을 알아내고 새로 만들어낸다는 의미이다. 이 조작이 제대로 된 모양새를 갖추려면 7세를 넘어야 한다. 7세 이전에는 되지 않거나 설령 된다 해도 불완전하므로 전조작기라고 이름을 붙인다. 7세가 넘어 조작을 할 수 있어도 12세까지, 초등학생 때까지는 구체적 조작, 즉 지금 내 눈 앞에 진행되는 사실에 대해서만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중학생이 되어야 비로소 형식적 조작, 즉 현실 세계를 넘어서는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다.

 

피아제의 인지 발달 이론에 따르면 유치원 때까지는 조작이라는 것을 해보았자 한계가 있다. 아이들의 조작 행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계산하기, 크기 비교하기, 색깔 구분하기, 모양이 다른 그릇에 담긴 100밀리리터의 물을 같다고 인식하기, 특정한 사물이 관찰하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이지만 같은 대상임을 알기, 그리고 문자 습득이 있다. 듣기, 말하기는 선천적인 언어능력이지만 읽기, 쓰기는 조작 행위이다.

 

ㄱ+ㅏ+ㅇ=강, ㅁ+ㅗ+ㄱ=목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조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어머니들은 왜 이렇게 골치 아픈 음소 맞추기 얘기를 하는지 이미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 유치원 때까지는 한글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시키니까 글자를 그리는 것이지 능숙하게 조작하지 못한다. 그래도 일찍 시작하면 좋지 않냐고 묻는 부모들에게 말한다. 너무 일찍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정신적 조작을 할 시기에 이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다. 외부에서 시키니까 하는 수동적 모방 학습의 경험 때문에 내부에서 유발되는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학습에 흥미를 잃은 것이다. 벌써 뇌 회로가 그렇게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어릴 때부터 문자 교육을 권하는 것은 인지 발달의 단계를 잘 모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나는 부모들에게 피아제의 이론에 근거해 이름을 살짝 바꾼 양육 단계를 제안한다.

6세를 기준으로 이전은 감각 운동 양육기, 이후는 상징 사고 양육기라 하겠다. 감각 운동 양육기는 감각 능력과 운동 능력을 집중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시기이다. 감각 가운데 시각의 예를 들어보자. 아기는 시각 기능을 갖추고 태어나지만 3차원 입체시가 발달해 엄마가 앞에 있든, 옆에 있든, 웅크리고 자고 있든, 아파트 10층 창문 밖으로 자기를 내려다보든 '저 사람은 우리 엄마구나' 하고 알 정도로 정교한 조준과 파악을 완성하려면 6세가 되어야 한다. 운동 능력에는 걷고 뛰는 대근육 운동과 가위질하고 단추를 채우는 소근육 운동이 포함된다. 즉 6세까지는 감각 자극에 충분히 노출되고 많이 뛰어노는 것이 뇌 발달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물론 요즘 세상에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다치지 않고 많이 뛰어놀 공간도 부족하고 하루 종일 붙어서 아이를 보호해줄 시간도 없다. 그래도 6세까지는 뛰어노는 시간이 문자를 익히는 시간의 5배 이상 되어야 하며, 초등학생도 3학년까지는 학원 가는 시간의 3배를 놀아야 한다. 특별한 프로그램도 필요 없다. 널찍한 땅에 몇 가지 도구만 있으면 아이들은 비석치기, 사방치기, 땅따먹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하루 종일 잘 논다. 성추행이나 유괴 등의 위험이 걱정된다면 일자리를 원하는 어르신을 2인 1조로 곳곳에 배치하면 어떨까. 어르신들도 햇빛을 받으며 몸을 움직이면 치매나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테니 아이들과 좋은 짝이 되지 않을까.

 

많이 걷고 뛰어놀 게 하면 뇌에서 비디엔에프라는 뇌유발신경전달인자가 발생한다. 비디엔에프는 강력한 뇌 성장 요인으로, 이 물질 때문에 뇌가 발달해 공부를 잘하게 된다. 그리고 비디엔에프가 더 이상 분비되지 않을 때 노화가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뇌 발달 차원에서 보면 중,고등학생도 아직 뇌가 발달하므로 계속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하버드 의대 정신과 임상 교수인 존 레이티는 체육 수업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고등학교에서 정규 수업이 시작되기 전 0교시 체육 수업을 한 후 학생들의 학습 능력이 17%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규율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비율이 이전 학기에 비해 83%나 감소했다고 한다. 꼭 체육 수업이 아니라도 그냥 운동장을 돌게 하는 것도 좋다. 햇빛을 받으며 30분 이상 걷는 것만으로도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70%는 해결할 수 있다. 햇빛을 쬐며 친구들과 걸으면서 수다를 떨다보면 긴장이 풀리고 친근감이 늘어나 학교 폭력도 줄어든다. 또 비타민 D가 합성되어 뼈가 튼튼해져 체력도 좋아진다. 무엇보다 햇빛은 기분을 좋게 해준다.

 

계절성 우울증이라는 것이 있다. 약물치료와 함께 라이트 테라피를 하면 효과가 좋은데, 라이트 테라피란 빛을 많이 쪼여주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파장과 세기로 광선을 쪼여주지만 햇빛을 많이 쬐는 것으로도 청소년의 우울증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내가 교장이라면 운동장을 최대한 넓게 확보해서 수학 2시간 연강하고 30분 운동장을 돌게 하고, 영어 2시간 연강하고 30분 돌게 하겠다. 공부 잘해, 폭력 없어져, 체력 좋아져, 성격 좋아져, 그야말로 일석사조의 효과가 있는 교육법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은 어릴 때 좀 더 많이 뛰어놀게 하지 못한 것이다. 많이 뛰어놀면 학원에 1년 보내는 것보다 더 머리가 좋아진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라도 마음껏 뛰어놀면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해소되니 너무 속상해하지 않으려 한다. 비디엔에프는 스트레스 호르몬에 맞서는 기능도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시기는 아이의 언어 상징 양육기이다. 비로소 상징, 즉 문자와 숫자를 익혀야 할 때다. 이때 집중적으로 한글을 익히면 이전에 3~4년에 걸쳐 배운 것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이다. 가르쳐주면 아이는 바로 흡수하고 활용한다.

 

이러한 아이의 발달 단계를 무시하고 감각 운동 양육기에 문자를 가르치면 스트레스가 된다. 이제 막 일어선 아기에게 자꾸 자전거를 타라고 하면 어떨까? 자전거가 스트레스가 되어 평생 꼴도 보기 싫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려면 흥미와 동기가 반드시 필요한데 스트레스가 된 대상에게는 흥미도, 동기도 생기지 않는다. 또 문자 학습에 치여 감각 운동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고 고작 글자만 아는 매우 협소한 인지 체계가 형성된다. 듣고 보고 걷고 뛰면 되었지 무슨 감각과 운동이 더 발달해야 하느냐는 부모님이 계실까 봐 말한다. 볼 수 있다고, 걸을 수 있다고 아이의 발달이 끝나는 건 아니다. 보기와 걷기가 합작해 어떤 상황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장애물을 잘 피할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아이의 감각 운동 기능은 완성된다. 마데카솔과 후시딘 구입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면 비로소 이 단계에 이른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연구진은 메추라기에게 인위적 자극을 주면 감각이 빨리 발달하는지 연구하기 위해 수백 개의 메추라기 알 중 일부에 갑작스럽게 빛을 쬐었다. 정상적으로는 새끼 새가 부화된 후 빛을 쬐지만, 일찌감치 빛을 쬐면 시각 발달이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알에서 깬 새끼 새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를 보였다. 새끼 새의 뇌에 시각 발달이 지나치게 빨리 요구되면서 어미 새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머리에 새기는 각인 능력이 발달하지 못해 부화한 후에도 어미 새를 따라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했다. 이처럼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교육은 오히려 정상적인 발달을 방해한다.

 

6세 이전은 일종의 반수면 상태라 뇌가 공부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하지 못한다. 놀면서 만지면서 듣고 보면서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기술을 익힐 뿐,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우리 인간은, 특히 아이는 상징보다 경험에 먼저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구체적 조작기를 거쳐야 형식적 조작기로 넘어가는 발달 과정 때문이다. 사과를 글로 배우기 전에 만져보고 맛보고 빨간 사과, 파란 사과, 노란 사과가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 한다. 상징은 지식 세계를 압축해놓은 것이다. 경험보다 압축된 지식을 먼저 접하는 것은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를 먹지 못하고 달랑 비타민 한 알만 먹는 것과 같다. 한글 공부는 초등학교 입학 1년 전에 시작하면 충분하다, 우리 아이들도 모두 그랬다. 고작 두 아이를 가르쳐보고 어떻게 확신하냐고 따지는 분에게는 이렇게 말하겠다. 피아제는 고작 세 명의 자식을 관찰해서 인지 발달 이론을 만들었다. 집중적인 관찰이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한 피상적 통계보다 훨씬 신뢰감을 줄 때가 있다.

 

6세 이전에 문자와 숫자 공부를 시킬 필요가 없다고 해서 책을 읽어 주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책 읽기는 중요하다. 6세 이전에는 스스로 읽도록 지나치게 강요하지 말고 책을 많이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흔히 뇌를 우주에 비유한다. 복잡한 뇌세포들의 구조가 셀수 없이 많은 별로 구성된 우주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듣고 이해하는 것은 우주의 오른쪽 끝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스스로 책을 읽는 것은 몇 억 광년 떨어진 우주의 중간에서, 쓰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몇 조 광년 더 떨어진 우주의 왼쪽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뇌의 발달 과정에 맞게 천천히 진행해야 탈도 없고 가장 효율적인 성과를 낸다. 만약 엄마가 책을 만날 읽어줬더니 아이가 어느 날 스스로 읽는다면? 물론 입을 틀어막을 필요는 없다.

 

2011년 3월에 한림대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과 연구 팀에서 사교육 시간과 우울증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하루 4시간 이하의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 가운데 10% 정도가 우울 증상을 보인 반면 4시간이 넘는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30%가 우울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 나는 연구 결과보다 과정에 더 눈길이 갔다. 일주일에 4시간이 아니라 하루에 4시간이다. 선진국에서는 방과 후 공부 시간이 일주일에 7시간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하루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방과 후 3시간이다. 어른도 회사에서 일할 때 집중적으로 몰입하는 시간은 3시간 정도이다. 나머지는 그냥 멍하게 있거나 습관적으로 일을 하거나 떠들거나 먹거나 회의를 한다. 학교 수업만 집중해도 이미 7시간 정도 공부하고 오는데 이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우리는 이 난리를 쳐야 하는 것인가?

 

뇌가 폭발하는 두 번째 시기인 10세 이전까지는 원 없이 놀아야 이후 뇌가 제대로 발달한다. 굳이 학원을 보내야 한다면 공부보다는 친구와 책과 친해지는 목표만 세워야 한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까지는 상냥하던 엄마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억센 아줌마로 변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잡아먹겠다고 한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초등학교는 유치원 때보다 훨씬 더 긴장되는 곳이다. 순식간에 엄격해진 환경은 문화 충격 수준이다. 한마디로 이때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아직 인간이 아니다. 학교만 무사히 왔다 갔다 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기다. 이때 좋은 성적을 요구하거나 성실한 시험 준비를 강요하는 것은 올챙이에게 얼른 멀리 뛰어보라고 채찍질하는 것과 같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실컷 놀게 하면서 학교 숙제만 지키게 한다. 숙제는 몸이 아플 때를 제외하고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숙제는 사회와 하는 첫 약속이다. 이 약속을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듯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이후의 모든 원칙과 규율, 제재가 도통 들어 먹히지 않는다. 숙제를 무시하면 책임감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간혹 유명한 학자들이 자신은 어릴 때 숙제도 하지 않고 학교생활도 엉망이었다고 말하는데, 그들은 천재라 어떤 상황에서도 공부를 잘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말에 넘어가면 안 된다. 천재가 아니라면 숙제를 반드시 하도록 해야 한다. 당신이 늙어서 편하게 살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다.

 

4학년이 되면 아이의 적성과 성격에 맞는 공부 방법을 찾아 뇌의 개발을 도와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고 뇌를 발달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10세부터 20세까지는 인간의 발달 과정 중 뇌 발달이 정점에 이르는 기간이다. 이때 집중적으로 뇌를 단련해야 불이 활활, 물이 펄펄, 힘이 불끈불끈 솟아난다. 또 이 시기에는 성욕과 공격성이 늘어나 책을 통해 지식을 쌓는 시간이 없다면 쾌락과 감각만 추구하는 부정적 자극을 통제할 수 없어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없다. 대한민국 학교수업과 수능의 난이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집에서 차분히 공부하도록 도와줄 수 없는 맞벌이 부부는 학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아이가 학교 공부에 흥미를 전혀 갖지 못한다면 '너 같은 놈은 인간도 아니다'라며 삶의 의욕을 박살 내지 말고 다른 것으로 뇌를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 백배 현명하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라도 학교는 큰 의미가 있다. 친구를 만나고 함께 점심 먹고 교양을 쌓는 장소가 되면 된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다른 아이들이 학원 갈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만화책도 좋으니 책을 많이 읽게 하거나 망원경으로 별을 찾게 하는 등 아이가 좋아하는 공부를 시키면 된다. 그것도 안되면 엄마보다 살림을 잘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연구하게 해도 좋다. 어떤 활동이든 열심히 하면 된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라면 딱 한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 잠을 제대로 자는 것이다. 수면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공부는 모래 위에 올린 성과 같다. 수면이 학습 능력을 높인다는 연구는 매우 많다. 수면은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고 정서적 긴장도 해결해준다. 우리가 격렬한 꿈을 꾸는 것은 낮에 경험한 부정적 정서를 내보내기 위해서이다. 아이가 떼를 쓰다가도 잠을 자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긋 웃으면서 깨는 것처럼 우리는 자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낸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자는 시간이 아깝다는 분들에게 대뇌피질이 두꺼워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책도 음악도 운동도 아니고 바로 명상이다. 무언가를 계속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자신의 내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이 뇌를 더 튼튼하게 해준다.

 

심리검사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을 위해 아이의 마음을 읽는 다른 방법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무언가를 시도했는데 아이가 갑자기 몸이 아프다고 하거나 얼굴이 어두워지면, 잠을 자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엄마의 눈을 잘 쳐다보지 않는다면 그 즉시 멈추어야 한다. 아이에게 그 방법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아이가 '싫다'고 딱 부러지게 말하면 절대로 시키지 말아야 한다. 좋다는 원어민 영어 학원도 아이가 가기 싫다고 하면 일단 멈추어야 한다. 사랑하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아이는 없다. 다만 엄마들이 느끼지 못하는 두려움을 먼저 직감하고 싫다고 할 뿐이다.  반대로 무언가를 시도했는데 아이가 잘 적응하면 그것은 아이의 장점이자 적성이 된다. 어떤 아이들은 영어 학원을 매우 좋아하고 그 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그 과가 아니라면 멈춰야 한다. 그러면 영어를 싫어하는 아이에게는 절대로 영어 공부를 시키지 말아야 할까? 6개월이나 1년 후에 다시 시도하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1년 후에 다시 시도하면 된다. 어릴 때 빨리 영어를 시작할수록 발음이 좋아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보내면 자신감과 동기가 없어진다. 발음이 안 좋아도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지만 자신감을 잃은 아이들은 무엇을 해도 먹고살 수 없다.

 

약한 아이는 강요보다 지지적인 환경에서 쉬운 일부터 시작해 조금씩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서서히 강해지도록 격려해야 한다. 강한 아이는 강한 면의 장점을 말해주면서 서서히 공존과 배려를 배우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의 행동과 모습은 세상의 스트레스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성이다. 그 성을 억지로 무너뜨리고 아이를 180도 바꾸려고 하면 부작용만 나타난다.

 

사랑은 절대로 뒤늦은 법이 없다

 

내 아이가 왕따를 당한다고 가정해보자. 내 아이는 어떤 상태일까?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못 먹겠지. 그렇다면 교장 선생님을 뵙고 아이를 점심을 먹인 후 다시 보내겠다고 해야 한다. 그런 전례가 없다면 교장실에서 먹게 해달라고 해야 한다. 끈질기고 진정성 있게 호소한다면 학교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줄 것이다.

 

못하는 것이 있다면 이후의 모든 과정을 스톱시켜야 한다. 참자고 해도 아이가 참아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학교에 가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프다면 병가를 얻어 보살펴주어야 한다. 등, 하굣길에서 친구와 부딪치는 것이 무섭다고 하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고등학생이라도 부모가 등, 하굣길을 동반해야 한다. 그것도 못할 정도라면 자퇴시키고 몸을 추스른 후 검정고시를 볼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남들과 다른 내 아이와 나를 향한 세상의 눈이 당연히 무섭고 부담스럽지만 잠시 내려놓고 오지 아이에게만 집중해야 한다.

 

문제가 생긴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이 부족해서, 더 정확하게는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거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사랑을 주어야 한다. 사랑은 뒤늦은 법이 없다. 항상 사랑해왔다면 지금부터는 지혜롭게 주어야 한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쉽게 지혜로운 사랑을 줄 수 있다.

 

"선생님이 애가 평소에 어떤지 못 봐서 그래요. 직접 보면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걸요? 내가 동생에게 웃어주거나 살짝 어깨만 두드려줘도 동생을 벽에 밀어붙이고 멱살을 잡고 식탁 위의 음식을 다 쓸어버리고 난리도 아니라고요. 완전 또라이라고요."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짐작되는 바가 있어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만약 어머니가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면 어떻겠어요? 아들보다 더 난리를 치지 않겠어요?"

 

"아이는 동생이 자기보다 엄마의 사랑을 받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거예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충분히 느껴야 동생도 미워하지 않고 반항도 안 합니다. 억지로 해보았지만 막상 말하고 보니 아이를 아직 사랑한다는 거 아시겠죠?"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절대로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남편에게 화가 나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아이에게 화를 퍼부어대니 부부 치료도 꼭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하루에 50번도 넘게 아이에게 손찌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아들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로 더 진행되었다가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아들에게 멱살 잡히는 최악의 상황에 이를 뻔했다.

 

사랑의 물꼬가 터지면 기적이 일어난다

 

아이에게 이제부터라도 사랑을 주기로 마음먹었다면 사랑은 절대로 뒤늦은 법이 없다. 별은 어릴 때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뒤늦은 사랑으로 그 행복감을 회복했다. 별은 엄마가 교장실에 쳐들어간 순간 미움과 분노, 혼란감과 무력감의 벽을 무너뜨렸다. 아빠와 달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올바른 방향을 잡은 엄마는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일사천리에 세상을 평정했고, 그 과정에서 별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아이가 어릴 때 부모에게 받았어야 하는 보호이다. 또 자신에게 함부로한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자존감을 느꼈다. 아빠는 강압적으로 1등을 요구했지만 엄마는 할 수 있는 것만 조금씩 해보자고 했으니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늘 웃어주고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엄마에게서 세상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한번 물꼬가 터진 사랑은 기적을 낳아 무려 14년 동안 분노와 적개심으로 닫힌 마음의 문을 4년 만에 완전히 열었다. 별은 남들이 보기에 좀 특이해 보일 뿐인 건강한 청년으로 자랐다. 마음을 치료하려면 아파온 시간의 2~3배 기간만큼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나의 기준을 뒤집어놓았다. 포기하지 않고 너무 기대하지도 않으며 어제보다 1% 나은 오늘을 위해 사랑을 주며 노력하다 보니 놀랄 만큼 빠른 시간 내에 아이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겨 상담을 받으러 온 부모들이 처음에는 치료 지침을 잘 따르다가도 3~4개월이 지나면 슬슬 초조해하며 6개월, 1년이 지나면 왜 아직 낫지 않느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 결론은 간단하다. 아이가 나을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세상에 너무 치였기 때문에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는 별이 엄머처럼 해보았느냐고 묻고 싶다. 마음을 비우고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하면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은 고생 총량의 법칙이 있는 듯하다. 발등에 고생이 떨어졌을 때 화를 내고 울고 회피할수록 고생의 시간은 늘어난다. 하루라도 빨리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갈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열린다.

 

별의 사례는 20여 년간의 임상 경력 중에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첫 째, 사랑을 바탕으로 한 기술이 때로는 놀랄 만큼 빨른 시간 내에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둘째, 보호자와 치료자가 같이 아파하고 문제를 극복하며 결과까지 지켜보았던 드문 사례였다.

셋째, 치료자가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본 놀라운 사례였다. 별이 꿈에서 아버지와 화해한 것도 그렇다. 어려운 정신분석 치료 과정도 없이 별이 스스로 꿈에서 자신의 상처를 털어버렸다.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 세계도 건강해졌음을 의미한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책에 담고 싶어 "가명을 뭘로 할까?" 라고 물었더니 은이 씨가 또 감동적인 멘트를 날렸다.

 

"별로 하자. 별 자체로 빛나듯이 모든 아이들은 타고난 빛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이 아이의 빛이 다시 빛나게 도와주었을 뿐이야."

 

비록 한때 자신의 상처 때문에 아이를 잠시 방치했지만, 상처와 고통을 잘 이겨낸 사람이 얼마나 아름답고 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은이 씨에게 나는 틈만 나면 말한다.

 

"자리 깔고 앉아!"

 

하도 내가 이 말을 해서 요즘은 조금 마음이 생겼는지 그럼 '수암골 아줌마'라고 해달란다. 별이 최근 폭탄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전문대학교를 졸업하면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해서 공부를 더 하고, 졸업한 후에는 정식으로 중국어 통역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안전과 사랑, 자존심의 욕구가 채워진 아이가 이제 자기실현 욕구를 보이는 것이다.

 

엄마와 별은 넉넉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 먹고 자는 안전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사랑을 주는 엄마가 있고, 대학교에 진학해 잘 적응하다 보니 별의 하위 수준의 욕구들이 4년 만에 충족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망설이던 가족에게 별은 중국어 인증 시험 인정서를 갖고 와 꼼짝없이 수용하도록 했다. 그러면 또 돈이 들테니 은이 씨는 수암골 아줌마라도 할 기세다. 별과 은이 씨가 앞으로 얼마나 더 놀라운 일을 보여줄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 전문가를 믿으십시오. 전문가가 개입하는 시간에는 홀가분하게 자신을 벗어던지고 쉬세요.

* 희망이고 절망이고 언어적 유희에 놀아나지 마십시오. 절대 포기하지 말고 그저 자신이 지금 할 것을 실행하세요.

* 이 모든 상황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딱 한 번만 진심으로 인정하세요. 눈물이 나온다면 크게 우세요. 하지만 그 뒤로는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말고 죄책감을 느낄 시간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더 아이를 안아주세요.

* 세상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모습'에 목숨을 걸지 마세요.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관된 모습에 아이를 맞추려고 실망하고 좌절하지 말고 조금 다른 현재 모습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나가세요. 단, 정상이라는 기준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마세요. 정상이라는 기준은 아이가 이 세상에서 편하게 지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 이아가 이렇게 된 이유는 부모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임을 인정하세요. 전문가가 아이를 다루는 몇 가지 기술을 가르쳐줄 것이며 그 지침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사랑 결핍감이 해결되지 않는 한 기술을 100개 익힌들 소용이 없습니다.

 

하루 3시간 엄마 냄새_ 이현수 박사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12. 1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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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3층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호흡, 체온 등 생명 유지를 담당하는 뇌간이 1층에, 희로애락의 감정과 욕구를 담당하는 변연계가 2층에 자리 잡고, 마지막으로 3층에는 생각하고 판단하며 충동을 조절하는 대뇌피질이 있습니다.

 

어미 몸에서 나오기 전에 생명의 1층을 지은 아이는 15~20년 동안 감정의 2층을 짓습니다. 1층과 2층이 튼튼하게 지어진 다음에야 지성의 3층이 견고하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1층과 2층을 부실하게 짓거나 아예 짓지도 않고 성급하게 3층만 거대하게 쌓으려고 하니, 어느 순간 집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입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적 자극을 들어붓는 것은 플라스틱 골조 위에 집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빙자해 우리 아이들을 바닥없는 집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내 아이가 100세까지 행복하려면 정서의 튼튼한 기둥을 세워야 하는 어린 시절 10년을 정말 잘 보내야 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이 경우는 시작이 90%입니다. 20%의 사람들이 80%의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파레토 법칙을 양육에 적용하면, 어린 시절 10년이 이후 90년의 성공과 행복을 좌우합니다. 여기서 10년을 잘 보낸다는 것은 절대로 지적 자극 얘기가 아닙니다. 정서적 안정이 최우선 입니다. 아니, 정서적 안정이 전부입니다. 열 살까지는 스스로 책을 읽고 싶도록 해주는 환경을 만드는 것 외에 공부를 지나치게 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

앞에서 설명했듯이 아기의 뇌는 태어난 후 3년에 걸쳐 완성된다. 왜 아기는 엄마 배 속에서 뇌를 완성해서 태어나지 않을까. 완전한 상태로 태어나려면 뇌가 너무 커져서 엄마의 좁은 자궁을 빠져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구조와 기능만 갖추어 태어난 아기의 뇌는 태어난 후 환경에 맞게 재정렬하면서 급성장한다. 그 집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거기에 자신의 뇌를 맞춘다. 엄마를 엄마로 알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며 자기가 어떤 집안의 사람으로 태어났는지 정체감을 갖추기까지 최소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태어나서 3년, 출산은 계속된다.

 

이 시기에 아기가 부모와 세상에 뇌를 맞추기 위해서는 자신만을 위하고 보호해주는 대상이 필요하다. 따라서 어린이집 같은 공동 양육시설에 3세 이전 아이를 너무 오래 두어서는 안 된다. 공동 양육 시설은 내 아이에게만 사랑을 주는 곳이 아니라 많은 아이에게 평균적인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보육교사가 내 아이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은 고작 8분이라니 즉 572분 동안 아이는 혼자다. 밤 10시까지 시설에 맡겨진 3세 이하 아이는 천천히 병에 걸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시간 투자에는 한 가지 불가피한 속성이 있다. 반드시 그때, 즉 아이가 어렸을 때 제공해야지 나중이 되어서는 거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결정적 시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 부모의 시간을 제대로 투자받은 아이가 온전하게 자란다. 결정적 시기에 만난 사람들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는데, 아이에게 엄마는 첫사랑이 되고 엄마에게 아이는 이상형이 된다. 발달심리학자 로렌츠가 발견한 각인이 이때 형성되기 때문이다. 로렌츠는 오리가 갓 태어났을 때 어미 오리 대신 자신이 곁에 있었더니 아기 오리들이 자신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보고 이 시기에 양육자에 대한 단단한 심리적 연결 고리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각인은 세상과의 첫 연결 고리로, 벌거숭이로 태어난 아이가 세상과 처음 접속하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각인이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아이를 안정되게 키울 수 있다. 아이가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면, 생후 3년 동안 충분한 시간을 투자받지 못해 부모를 각인 대상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20년 동안 임상 경험을 통해 얻은 확신에 찬 주장이다.

 

그렇다면 뇌를 제대로 발달시키기 위해 누워 있어야 하는 인간 아기는 엄마에게 어떻게 각인할까? 생후3~4개월이 지나야 시각이나 청각으로 엄마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는데 말이다. 걸을 수 없는 아기가 엄마에게 각인하는 비밀은 바로 엄마 냄새이다. 냄새는 곧 지금 이곳이 안전하다는 신호가 된다. 안전해야 밥을 먹고 안전해야 응가를 볼 것이며 안전해야 책을 읽고 문명을 건설할 수 있다. 그 안전감의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냄새와 온도이다.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 안에는 부모의 온기와 냄새가 가득 차 있다. 성인이 된 우리는 부모님의 온도와 냄새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매 배 속 일정한 온도의 양수 속에서 보호받던 아이는 태어난 후에도 엄마 냄새와 일정한 온도를 통해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계속 가져야 한다. 인간의 태생은 태어난 뒤에도 3년 정도 더 계속 되기 때문이다.

 

호르몬 분비는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의 몸에서는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거나 억제된다. 친부모가 범죄자라면 더욱더 무관심하고 불친절할 것이며,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은 또 다른 이유이다. 다시 말해 부모의 냄새를 충분히 맡지 못하거나, 부모가 있어도 아이에 대한 사랑이 결여된 나쁜 냄새를 맡은 아이는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랑의 냄새를 충분히 맡게 해주어야 한다. 그 냄새는 당연히 엄마, 아빠 것이어야 한다. 할머니 냄새는 아이와 50% 적합성을 보인다. 100%의 엄마 냄새로 감정적 안정을 완성하는 데 3년이 걸린다면 50%의 냄새로는 몇 년이 걸릴까?

 

분명히 6년이라는 답을 얻겠지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할머니의 심성과 아이와의 조화로움에 따라 4년이 되기도 하고 8년이 되기도 한다. 하물며 근연도가 전혀 없는 도우미 아주머니의 냄새는 갓난아이에게 총체적 불안감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아기는 그 냄새를 저장하고 기억하며 안정을 취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문제가 커지는 것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3개월, 6개월마다 바뀔 때이다. 아기는 서서히 등대를 놓치고 바다를 표류한다. 매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쯤 되면 엄마는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

 

근연도가 50%라도 할머니가 일관되게 키운 아이는 당연히 안정적으로 자란다. 하지만 대부분 할머니가 엄마보다 먼저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가 충분히 성숙하기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거나 같이 살지 못하면 그동안 마음을 맡겼던 대상을 잃으면서 아이는 불안감과 혼란에 빠진다. 대부분 이런 혼란감은 일시적이지만 때로는 심각한 정도에 이르기도 한다.

 

명우의 모든 일은 단 4개월 사이에 일어났다. 엄마는직장을 계속 나가고, 명우가 태어난 후 13년 동안 평화로웠던 집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 평화는 사실 진정한 평화가 아니었을 것이다. 근연도 50%의 할머니 냄새는 아이의 욕구를 100% 충족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50%의 냄새만으로도 최상의 적응을 해왔지만 그 냄새마저 사라진 뒤 깊이 내재되어 있던 결핍감이 치솟은 것이다. 당연히 결핍감을 해소하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는 이 불편한 감정이 싫어 그것을 무조건 없애려 애쓰고, 그 결과 여러 가지 문제 행동을 보였다.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라면을 끓여 먹고 오토바이를 훔치는 동안에는 외로움과 결핍감이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명우를 낳기 전부터 이를 악물고 다닌 19년의 직장 생활은 하루아침에 사직서를 냈다. 그나마 아이가 몽니를 부리는 것은 상황이 좋아질 수 있다는 신호이다. 이것조차 받아주지 않고 거부하면 아이들의 분노로 집 안에는 곧 쓰나미가 몰려온다.

 

결정적인 시기에 할머니에게 각인된 아이는 이후 엄마 곁에 왔을 때 그 냄새가 낯설어 이상하게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엄마도 결정적인 시기에 아이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는다. 때마침 둘째를 낳아 엄마가 집에 들어앉으면 둘째에게는 첫째보다 훨씬 더 애정을 갖게 된다. 엄마는 그래도 둘째의 마음을 얻었지만 첫째는 무엇을 얻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이유 없이 동생과 비교당한다. 상황을 바꿔보자. 첫째 아이는 엄마가 키웠는데 둘째를 떼어놓았다. 엄마에게는 첫째라도 남았지만 둘째는 결핍감 때문에 평생 피해 의식을 갖고 살아간다. 엄마가 아이들을 모두 할머니 손에 맡겼다면? 엄마는 돈 말고는 남는 것이 없으며 아이들은 서로에게 '왜 태어났니' 하며 노래를 불러준다. 가정 잔혹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부모 없는 아이는 그럼 죽으란 말이냐?'

불행하게도 친부모가 이 세상에 없다면 아기는 말끔하게 그 냄새를 정리하고 자기가 적응해야 할 새로운 사람의 냄새를 정한다. 동물적 본능으로 세상에 없는 냄새는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예기치 않은 사고로 자식을 먼저 보내고 손주를 키우는 할머님, 할어버지는 절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부모가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는데도 눈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아이는 그 냄새를 찾기 위해 평생을 허비한다. 갓난아기 때 입양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친부모를 찾는 이유이다. 일단 찾아서 냄새를 맡아보고 나서야 다음 단계를 결정한다. 이 냄새를 계속 맡을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버릴 것인가.

 

엄마는 양육의 333법칙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 하루 3시간 이상 아이와 같이 있어주어야 하고,

* 발달의 결정적 시기에 해당하는 3세 이전에는 반드시 그래야 하며,

*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떨어져 있다 해도 3일 밤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부모가 너무 바빠서 하루, 이틀 밤 정도는 건너뛰어도 아이는 그동안 비축해놓은 사랑의 배터리 잔량으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3일 밤이 넘어가면 위태로움을 느끼면서 부모에게 더욱 달라붙는다. 하루 3시간은 아이를 온전하게 자라도록 하는 매직타임이며, 3년은 엄마의 냄새와 온도를 제공해야 하는 최소한의 역치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3년 동안 제대로 투자했다면 4년, 5년 투자한 것과 아주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3년을 제대로 채우지 못했을 때는 하늘과 땅 차이로 결과가 달라진다. 3년과 4년의 차이는 정서적 안정성이 좀 더 견고한가 약한가의 차이로 끝난다. 하지만 3년을 채웠는가 채우지 못했는가의 차이는 아이가 정상적인 발달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로 커진다.

 

매직타임도 아이가 어릴수록 효과가 좋다. 처음에는 엄마 사랑의 대체물이었던 게임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한 힘을 지니며 중독으로 이끈다.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의 뇌는 마약을 하는 사람의 뇌와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뇌가 그렇게 변해버리면 엄마 사랑의 약발은 떨어진다. 마약 중독자에게도 엄마가 있다. 눈물로 호소하며 자식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지만 그들에게는 엄마의 눈물이 너무 늦어버렸다. 아이에게 밥을 주듯 엄마의 3시간을 반드시 주어야 한다. 시간 맞춰 밥을 주듯이 3시간도 제때 제대로 주어야 한다. 엄마가 편한 시간이 아닌, 아이가 절실하게 원하는 시간에 주어야 한다.

 

애착이란 아기와 양육자 사이의 정서적 유대를 말한다. 아기가 따뜻하고 친근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만족과 즐거움을 느낄 때 형성된다. 애착이 안정되게 형성된 아기는 '나는 보살핌을 받을 만한 사람이야, 엄마는 좋구나. 내가 필요할 때 언제나 엄마가 있네. 세상은 살 만한 곳이네'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살 만하다고 느낄 때 아기의 마음은 세상에 뿌리를 내린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보살핌을 잘 받은 아이는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는다. 이는 내적 개념으로 자리 잡아 청년을 거쳐 노년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영향을 미친다. 평생 동안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지, 하찮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지가 이미 3세 무렵이면 결정된다.

 

생후3년 동안 엄마에게 안정적인 애착이 된 아이는 이후 서슴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살다가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3세 이전에 준비해둔 마음의 종잣돈으로 잘 헤쳐 나간다. 이제 아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엄마는 1시간 동안 외출할 수 있고 아이는 3시간 동안 어린이집에 있을 수 있다. 점점 익숙해지면 아침에 학교에 가서 오후3시까지 중간에 엄마를 찾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머물다가 올 수 있다. 그렇게 3일 정도 수련회에 가고 일중일 동안 캠프에 가고 한 달 이상 배낭여행을 가며 2년 동안 군대에 다녀올 수 있게 되면 비로소 엄마 곁을 떠나 결혼을 한다. 이제는 두 사람의 심리학에서 대상을 바꿔 엄마에게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해도 전혀 불안하지 않을 만큼 독립하는 것이다.

 

애착이 불안정한 아이는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쳐도 쉽게 흥분하고 좌절하고 울고 보채며 자주 아프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독립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부모나 주변 사람들에게 의존한다. 결혼시키기 어렵고 엄친아 이야기를 했다가는 명절 때 얼굴 보기도 힘들며 이혼당한 후 제 자식 키워달라고 이제 좀 조용히 살아가려는 부모의 인생 항로에 끼어들기도 한다. 어렸을 때 3년의 투자를 아꼈다가 30년동안 뒤치다꺼리를 할 수도 있다.

애착이 심하게 불안정하거나 아예 애착이 형성되지 않으면 마음이 튼튼하게 뿌리내리지 못해 건강한 줄기를 뻗지 못한다. 그 결과 성격과 정서에 문제가 생겨 삶이 위태로워진다.

 

스승의 뜻을 받들어 의미 있는 삶에 대해 평생 연구해온 프랑클의 제자들은 삶의 의미를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누군가의 곁에 있어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따뜻한 눈으로 상대를 봐주는 일, 특히 약한 아이를 봐주는 일은 우리의 삶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가치와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찾은 이상 우리는 이미 무상으로 로고테라피를 받는 셈이다.

 

이런저런 일로 상심해 드러누웠던 엄마들이 심리 치료를 받지 않고도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벌떡 일어나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누가 엄마'라고 불리는 것이다. 자식 때문에 산다는 것은 절대로 변명이나 합리화가 아니다. 비겁한 것은 더욱 아니다. 주체성이 없다는 것은 현학자들의 말장난일 뿐이다. 자식 때문에 사는 당신은 지구에서 몇 안 되는 진실하고 순수한 의미 중 하나를 찾아서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자식 때문에 산다는 것은 실로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식이 우리 삶의 의미가 되려면 자식이 어렸을 때는 우리가 그들의 의미가 되어주어야 한다. 엄마만 있으면 안심되고 엄마만 있으면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고 엄마만 있으면 뽀송뽀송한 이불에서 잘 수 있어서 엄마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야 한다. 즉 엄마는 한때 자식의 삶의 의미이다. 물론 자식이 스무 살쯤 되면 이제는 그들이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예전보다 거리를 두어도 된다. 이때는 오히려 자식이 내 삶의 유일한 의미가 되거나 자식의 유일한 의미가 엄마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경우는 자식을 향한 집착이 되기 때문이다. 집착은 사랑이 아니므로 서로를 불행하게 만든다.

 

부모와 안정적으로 애착을 맺은 아이는 세상을 신뢰하고, 마음의 뿌리에서 세상 밖으로 줄기를 뻗는다. 반대로 신뢰감이 형성되지 않으면 아이는 이 사람에게 자신의 뇌를 맞출지 망설인다. 그 결과 선천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자아 발달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산만한 형태로 발달된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면 계속 경로를 재탐색해야 하듯이. 생활이 안정되고 아이가 불안함을 느끼지 않고 자란다면 그만큼 좋은 심성을 갖기 쉽다. 정서와 성격은 쌍둥이 같다.

 

에디슨이 알을 품고 있을 때 엄마가 야단쳤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심지어 학교에서 자퇴를 권유했을 때조차도 아이를 믿으며 집에서  공부를 계속하도록 격려했다. 엄마의 이런 태도가 에디슨으로 하여금 부모에게, 더 나아가 세상에 무한한 신뢰를 느끼고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에디슨은 자신을 퇴학시킨 학교와 사회에 불만을 품고 좋은 머리를 나쁜 방향으로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오늘도 하루 종일 전구 밑에서 보낸 우리는 에디슨을 낙관적인 사람으로 키워낸 그의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잘못된 연결 고리는 부모에게서 찾을 수 있다. 부모가 아이의 눈을 오랫동안 맞춰주지 않기 때문에 시선이 분산되고, 시선이 분산되니 주의도 분산된다. 부모의 눈이 금방 돌아가니 아이의 눈도 돌아간다. 우리의 생활에서 진득하게,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거의 없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아이는 주의를 빨리빨리 바꾸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뇌를 발달시킨다.  나는 아이의 주의 산만은 부모가 만든 병 중 하나라고 말한다. 부모의 일정한 온도와 냄새, 일관되고 긍정적인 목소리를 받지 못한 아이들은 대변을 볼 때도 이리저리 주변을 살필 것이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아파 산속에서 볼일을 볼 때처럼 말이다. 어디에서 위험이 닥칠지 알 수 없기에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눈을 계속 굴린다. 부모가 바쁜 집은 부모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아이에게 장시간의 텔레비전 시청이나 인터넷 사용을 허용한다. 리모컨과 마우스 덕분에 눈앞의 화면은 1분에 서너 번도 더 바뀐다. 학원도 요기조기 많이 다닌다. 옆집 아이가 성적이 올랐다면 바로 다음 날에 그 아이의 학원으로 옮긴다. 집집마다 인형은 5개가 넘고 자동차, 블록 등의 장난감도 10개를 넘는다. 읽지도 않은 책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자극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집중하기 어렵다. 얼마 후면 모든 학교에 태블릿 피시가 보급되어 교과서가 없어질 것이라는데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란하게 돌아가는 화면 속에서 아이들의 주의력은 더 산만해지며 시력도 더 나빠질 것이다. 대인관계는 더욱 메말라갈 것이다. 3세만 되면 대한민국 어린이의 70%가 모이는 어린이집에서는 이런 일이 더 자주 벌어진다. 앞에서 말했듯 어린이집 교사가 한 아이에게 눈을 맞추는 시간이 하루에 평균8분이다. 주의 산만을 유발하기에 딱 좋은 조건이다. 8분 후 자기를 보고 있던 대상의 눈이 돌아가면 아이의 눈도, 뇌도 돌아갈 수밖에 없다. 최소한 만3세가 넘으면 교사가 자신을 보든 말든 자신만의 주의력을 지탱할 수 있지만 누워만 있는 아이들에게는 몹시 걱정되는 환경이다.

 

할머니에게 맞춰 살다가 2~3년 후 또 부모에게 맞춰야 하는 아이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직장에서 2명의 상사를 모시는 것과 같다. 이 시기에는 무조건 아이에게 일관된 양육을 해줄 방법을 짜내야 한다. 이 시기에 돈을 좀 적게 벌더라도 아이에게 집중할수록 아이는 더 안정되고, 아이가 안정적으로 자라면 부모는 훨씬 더 안정적으로 더 길게 직장에 다닐 수 있다.

 

지금까지 아이가 하루에 부모의 냄새를 맡아야 하는 시간은 최소한 3시간 이상이라고 계속 말했다. 여기서 한 가지 고백을 해야겠다. 하루에 3시간은 현실의 답이다. 내 마음속에는 진실의 답이 하나 더 있는데 '생후 3년까지는 하루 종일'이다. 이렇게 용기 없고 무식하기까지 했던 내 모습을 변명하고자, 최소한의 시간만 주어도 망가지지 않고 잘 크는 나와 형제의 아이들, 친구와 이웃의 아이들을 방패 삼아 하루 최소 3시간이라는 최소공배수를 뽑아냈을 뿐이다. 즉 3시간은 답이 아니라 현실 상황을 고려한 자기 합리화의 시간이며 합의점일 뿐이다.

 

엄마가 옆에 있으면 아이는 하루 종일 세상을 탐험하며 즐겁게 지낸다. 좀 더 다양한 자극과 햇빛과 신선한 공기가 있는 자연에서 놀게 하면 금상첨화이다. 아이는 같은 곳에서도 하루하루 다른 즐거움을 찾아낸다. 하지만 어른들은 곧 지루해진다. 지루해진 어른을 위한 요령을 하나 알려주겠다. 바로 책 읽기다. 3시간 동안 줄곧 책만 읽을 수는 없다. 전 세계 200만 독자를 사로잡은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의 저자 짐 트렐리즈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루 15분씩만 책을 읽어주어도 아이의 뇌를 깨운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책을 읽어준 아이들이 성적이 좋고 정서도 더 안정된다는 수많은 사례를 소개했다. 심지어 정신지체 아동이 정상 지능으로 회복되는 사례도 있다.

 

책을 읽어주면 먼저 아이의 정서가 안정된다. 책 속 이야기와 그림을 통한 심리적 이완 효과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좀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 바로 책을 읽어주는 시간 동안 엄마의 냄새와 온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화가 많이 났을 때는 책을 읽어주기 힘들다.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엄마 마음이 안정된 상태라는 의미이다. 그 상태에서 전해지는 엄마의 나긋한 목소리, 익살스러운 동물 흉내, 따뜻한 숨결등이 아이를 안정시키고 행복하게 한다. 다만 짐 트렐리즈가 책을 읽어줌으로써 지능을 발달시키는 면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나는 책을 읽어주는 동안 엄마 냄새와 온도가 제공되어 아이의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 더 본질적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보는 동화, 즉 영상 동화도 있다. 엄마와 함께 세련된 영상동화를 보다가 잠든다면 좋겠지만, 일부 광고에서처럼 직장 일로 힘든 엄마가 책 읽어달라고 보채는 아이를 떼어놓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어떤 발명품도 엄마 냄새와 온도를 대체할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대체품은 없을 것이다.

 

앞서 소개한 짐 트렐리즈의 말처럼 책을 읽어주면 성적도 좋아진다는 말은 사실일까? 책을 읽어주면 당연히 문자 해독 능력과 이해력이 높아진다. 하지만 여기에도 중요한 요인이 있다. 기분이 좋고 정서가 안정된 엄마와 같이 있었던 것, 그 경험이 책과 연결된다. 책을 떠올리면 아이는 저절로 엄마와 함께 있다는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고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감정은 학교 들어가서도 이어진다. 좋아하면 몰입하게 되고 좋은 성적을 낼 수밖에 없다. 아빠가 책을 읽어주면 더 좋다. 아빠의 냄새도 맡을 수 있고, 책 속의 남성적인 캐릭터까지 실감 나게 느껴져 정서 발달에도 좋다. 당연히 엄마하고만 하는 것으로 알았던 책 읽기에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 덧붙여져 두뇌 활동도 활발해진다. 뇌는 기본적으로 새롭고 신기한 것을 무척 좋아한다.

 

돌도 안 된 아이에게는 어떻게 책을 읽어줄까? 무릎에 앉혀놓고 그냥 읽어주면 된다. 그림을 보여주며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해주면 된다. 책이 없다면 신문도 좋고 광고지도 좋다. 광고지에 나오는 과일과 채소 그림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부모가 더 많은 수다를 떨어야 하니 좀 귀찮긴 하다.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해줘도 좋고 그것도 기억나지 않으면 수박이 2만 원이라는데 가당치도 않다, 이 돈이 다 농부 손에 들어갈까, 어쨌든 아빠가 수박 살 돈을 벌었으니 대단한 사람이다. 너도 건강하게 잘 자라야 한다 등등 구시렁구시렁 아무 얘기나 해도 된다. 무엇이든 눈으로 보는 글자는 나중에 모두 학습과 연결된다. 단, 컴퓨터 앞에서 보는 화면 속 글자는 안 된다. 컴퓨터 중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책을 읽어주라는 말을 조기교육을 시키라는 말로 오해하는 부모들이 있다. 책을 너무 빨리 읽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공부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저 부모가 함께 책을 읽어주며 자연스럽게 글을 이해하고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의 책은 고전적인 권선징악의 교훈도 다시 음미해볼 수 있고, 다섯 살 이후로 변치 않았던 세상을 보는 관점도 새롭게 한다. 이러한 인지적 전환은 치매를 예방하는 데도 좋다. 장시간 드라마를 보게 하면서 뇌를 촬영하면 뇌 활동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자극은 자극이 아니라 흔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지적인 사고를 하는 순간 우리 뇌는 매우 활발하게 움직인다. 어차피 3시간을 주는 것, 아이도 즐겁고 엄마의 뇌도 좋아지고, 먼 훗날 아이가 공부를 즐겨 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인생을 잘 꾸려갈 수 있도록 책을 읽어주자. 이야기는 힘이 세다. 셰에라자드는 왕에게 1000일 동안 이야기를 해주어 사형을 면제받았다. 책을 많이 읽어서 잘못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어릴 때 부모와 함께 읽은 책은 평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뇌력을 만들어준다.

 

하루 3시간 엄마 냄새_ 이현수 박사

 

★ 구리시 인창동 현대홈타운 아파트 영재교실

 

 

 

by 미스터신 2016. 12. 2. 16:37

그렇다면 불확실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큰 그림을 그릴 것인가? 혼란스러울수록 기본을 지켜야 한다. 콜라, 사이다, 맥주가 제아무리 맛있어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이듯이, 화려한 양육 이론들의 허와 실을 파악하려면 아이의 발달 과정을 지배하는 '뇌'를 아는 것이 기본이다. 인류가 정복할 마지막 영역이라고 할 정도로 뇌는 아직 밝혀진 것보다 숨겨진 것이 더 많은 신비한 기관이다. 가설과 이론이 계속 업데이트 되지만 세 가진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첫째, 뇌는 다구조 다기능으로 이루어져 있다.

둘째, 뇌 발달에는 순서가 있다.

셋째, 원시 뇌가 안정되어야 고등 뇌 기능이 잘 발휘된다.

 

이 세가지 사실을 무시하는 양육법은 일시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여도 소탐대실의 결과만 낳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형태 가운데 소탐대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너무 많아서 위험하기까지 한 것은 바로 조기 유학과 조기교육이다.

 

혼자 떨어진 아이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사춘기는 두 번째 두뇌폭발기이다

 

맨처음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인간의 뇌 구조와 기능을 복습해보자. 인간의 뇌는 3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1층에 호흡, 체온 등 생명 유지를 담당하는 뇌간, 2층에 희로애락의 감정과 욕구를 담당하는 원시뇌인 변연계가 있으며, 생각하고 판단하며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대뇌피질이 3층에 있다. 1층과 2층이 견고해야 그다음 3층이 번듯하게 올라갈 수 있다.

 

엄마 배 속에서 나온 뒤 생후 2년 동안 유아의 뇌는 뇌 신경을 둘러싸고 있는 시냅스 가지들이 과잉 발달해 성인의 2배까지 이른다. 나중에 어떤 뉴런이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많이 만들고 보는 것이다. 이후 3년째 되는 해에 뇌는 솎아내기에 들어간다. 즉 필요 없는 부분은 없애고 필요한 부분을 강화한다. 이 단계까지가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의 뇌를 맞추는 시기이다.

 

1단계가 잘 이루어지려면 비교적 평안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뇌의 가장 앞쪽 부위인 전두엽 기능이 폭발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다. 보통 10세부터 시작해 12세 때 본격적으로 발달한다. 이 시기에도 생후2~3년 때와 비슷한 뉴런의 급증과 솎아내기 현상이 다시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뇌는 일시적으로 상당한 과부하에 걸린다. 따라서 질풍노도와 같은 혼란을 느끼고 잘못된 판단이나 위험한 행동에 쉽게 유혹된다. 3세쯤에도 엄청난 혼란을 겪지만 그때는 부모가 모든 것을 다해주었기 때문에 아이는 비교적 힘들지 않게 그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 반면 10세쯤 되면 아이는 좀 더 독립적으로 대처해야 하고, 그동안 습득해둔 지식도 있어서 이를 통합하기 위한 고충이 더 심하다.

 

아이가 청소년기가 되어 부모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면서 반항하듯이 보이는 것은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전두엽에 상응하는 뉴런 협응체의 발달을 준비하기 위해 전반적인 심리 기능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아는 것은 많아지는데 그것을 소화하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은 아직 미약해서 혼란스럽다. 맞는 말만 골라서 하는 엄마한테 "아, 짜증 나!"라고 소리치기 일쑤다. 엄마는 한 대 때려주고 싶겠지만 사실 자신에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그러는 것이다.

 

이 시기 아이들은 모든 질문에 한결같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반항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정말 잘 몰라서 그런다. 머릿속에서 수백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공부 잘해야지?" 하고 물어보면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전두엽이 발달해 사고력이 확장되다 보니 '공부를 꼭 잘해야 하나? 내가 잘하면 다른 애는 못해야 하는데 그래도 되나? 잘한다고 인생이 꼭 행복한가? 공부가 도대체 무엇인가? 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속으로 터져 나온다. 하지만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으니 짜증 나고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가정 통신문을 주면 예전에는 무조건 엄마에게 가져다주었지만 지금은 일단 자기가 먼저 읽어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버지 교실을 한다는데, 이걸 꼭 해야 하나? 아버지는 이런 데 올 시간이 없다. 온다 해도 담임 선생님하고 나에 대해 얘기한다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아버지가 오지 못하는 다른 애는 어떻게 하나?'

 

그래서 가정 통신문이 가정과 통신되지 못한 채 비행기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고 하필이면 그 비행기를 멋지게 가로챈 담임 선생님이 아이의 전두엽을 톡톡 튕긴다. 가뜩이나 골치 아파 죽겠는데 말이다.

 

이러한 전두엽 폭발 시기를 잘 보내려면 아이의 정서 뇌가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정서 뇌는 뇌의 심부에 있는 변연계 부위를 말한다. 전두엽이 어떤 사건이나 자극을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며 통합하고자 할 때 변연계, 그중에서도 편도체는 감정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즉 전두엽은 감정을 판독하고 유지하는 기능을 하는 변연계와 계속 회의를 하면서 일을 처리한다. 편도체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으로 가득 차 있고, 정서적으로 흥분되는 사건을 감지하면 기억과 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측두엽과 전두엽으로 도파민을 내보낸다. 정말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정서 뇌가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전두엽, 즉 높은 수준의 사고를 담당하는 뇌가 정서 뇌의 신호에 따라 결정 방향이 바뀐다는 것을 보여준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미국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행복감에 대한 실험을 했다. 질문은 '당신은 일상적으로 얼마나 행복한가?' 였다. 그 결과 실험자의 조작으로 설문 전에 실험실 바닥에서 10센트짜리 동전을 주운 학생들의 행복감 지수가 한결같이 높게 나타났다. 단지 1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는데도 자기는 평소에도 행복감이 높다고 생각한 것이다. 기분이 좋으면 사고가 바뀐다. 기분이 좋아야 사고 기능이 잘 발휘된다.

 

매슬로가 심리적 욕구 위계 가설을 발표한 시기는 뇌 과학이라는 용어가 낯선 때였다. 매슬로의 이론은 현재의 뇌 발달 이론에도 잘 부합한다. 생리적 욕구는 뇌간에, 안전과 사랑, 소속, 자존감의 욕구는 변연계에 해당하며 자기실현 욕구는 대뇌피질에 해당한다. 자기실현 욕구는 안전의 욕구를 지나 사랑과 소속, 자존심의 욕구를 지나야 온전히 발휘된다. 아래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위 수준의 욕구를 흉내는 낼 수 있지만 만족스럽게 발현시키지 못한다.

 

조기 유학, 절대로 보내지 마라

 

이제 조기 유학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기분이 좋아야 공부도 잘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공부를 잘해서 성공하기를 바라면서도 자식을 일찍 분리시켜 정작 공부의 선행조건인 안정적 정서를 망가뜨린다.

 

전두엽이 폭발하는 시기에는 이미 과부하된 심리 기능을 정리하기에도 눈이 빠질 지경인데 낯선 곳에서 남의 나라 말을 배우는 과업까지 수행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나마 우리아이들이 머리가 좋기 때문에 버티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신생아가 억지로 걷고 있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태어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신생아도 팔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 걷게 하면 발을 옮기는 걸음마 반사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보고 걷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조기 유학으로 일찍 부모와 떨어져 지낸 아이들도 먹고 자는 생리적 욕구와 신체적인 안전 욕구는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변연계에 해당하는 정서적 안전의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 못하고, 그에 따라 사랑과 소속의 욕구, 자존감의 욕구 또한 온전히 충족되지 못해 부지런히 영어 공부를 하면서 자기실현 욕구를 향해 달려본들 부모의 욕구에 반사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생명체는 무엇보다 안전과 보존의 욕구가 먼저이다. 하버드대학교의 교육학자 커트 피셔는 자신의 아이를 대상으로 이것을 밝혀냈다. 그는 일주일마다 아이의 머리 크기를 재보았는데 생후17~19주 사이에 성장이 멈추어서 살펴보니 감기를 앓았다. 생명체는 안전이 위협받으면 성장 체계의 활동을 멈춘다. 그리고 환경이 우호적이라고 인식한 다음에야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다. 어미 쥐가 햝아주지 않은 새끼 쥐는 성장한 후 스트레스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는데, 스트레스 호르몬의 생산을 억제하는 단백질이 제때 분비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도망치느라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은 번식 기능이 일시적으로 멈춘다고 한다.

 

나는 아이 혼자 조기 유학을 떠난 상태를 심리적 안전이 위협받는 스트레스 상황이라고 본다. 겉으로는 열심히 공부하는 듯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분비된다. 일시적으로는 적응하는 듯이 보이지만 티눈이 있는 발로 걸음을 내딛는 것과 같다. 언젠가는 발의 모양이 변하고 통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조기 유학은 뇌 발달의 기제에 역행하니 비효율적이고, 여기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해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다.

 

조기 유학을 가서 다른 아이보다 영어를 잘하면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더 많은 돈을 벌 가능성은 분명히 높아진다. 그렇다고 반드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나는 병원에서 이를 자주 확인하곤 했다. 병원에 있다 보면 정신과에 올 이유가 전혀 없을 만한 환자를 꽤 많이 본다. 명문대를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는데도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알코올의존증, 약물 중독에 빠지거나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살아온 이력을 추적해보면 일찌감치 부모와 떨어져 공부한 사람이 많다. 외국으로 조기 유학을 간 경우뿐 아니라 우리나라 안에서도 좋은 학교에 다니려고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진 경우도 포함된다. 겉으로는 성공한 듯이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부모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 심리적 긴장과 불안이 누적되었다가 성인이 된 후 몸이나 마음의 병으로 나타난다. 이르면 20대, 늦으면 30~40대에 증상이 나타난다.

 

조기 유학이 성인기의 질병과 연결되는 기제는 이렇다.

 

우리가 원시인이던 시절, 평온하게 쉬는데 갑자기 매머드가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위급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 몸의 부신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해 그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도왔다. 하지만 과잉 분비되거나 계속 분비되면 혈압과 콜레스테롤 지수가 높아지고 면역성이 떨어져 병에 걸린다. 심지어 뇌세포가 죽기도 한다. 매머드도 없는 현대사회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잉 분비되는 이유는 딱 하나, 사회적 압력 때문이다. 성공 스트레스, 명예 스트레스, 승진 스트레스, 경제적 스트레스, 대인 관계 스트레스가 메머드가 되어 인간을 쫓기게 한다.

 

조기 유학 또한 사회적 압력 스트레스의 하나가 된다. 이것이 다른 스트레스보다 더 위험한 것은 '조기'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보호할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부모 곁에서 위로와 안정을 제공받지 못하고 계속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다. 홀로 떠나는 대부분의 조기 유학은 태생적으로 스트레스 유발 요소를 안고 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아이가 취직했다. 그렇지 못한 아이와 연봉 차이가 얼마나 될까? 평균 1000만 원 정도 될까? 높게 잡아서 2000만 원일까? 물론 연봉을 몇 억씩 받는 사람도 있지만 학력과 다른 능력이 같은데 영어 능력 하나 때문에 2000만 원이나 차이 난다니 화가 날 만도 하다. 하지만 조기 유학에 투자한 비용에 비해서는 어떠할까? 더구나 그렇게 되기까지 힘들었을 아이와 건강 문제까지 생각하면 병원비 차이가 그만큼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조기 유학을 가지 않은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압도적으로 낮은 것은 아니다. 다만 부모 곁에 있는 아이들은 그 스트레스를 완화하거나 풀 수 있는 탁월한 피로 해소제를 즉시 구할 수 있다. 언제든지 집에 상비되어 있는 피로 해소제, 바로 부모 냄새이다.

 

앞에서 조기 유학이 뇌 발달 순서에 역행하고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면에서 위험하다고 했지만 내가 더 위험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부모 냄새와 단절되기 때문이다. 부모 냄새는 대체할 수 없다. 아이폰으로 영상통화를 한다 해도 부모 냄새를 맡을 수 없고, 아바타로 부모 냄새를 만들어낸다 해도 인공일 뿐이다. 아무리 평소에 의젓하게 잘 버텨도 어느 날 큰비가 오고, 천둥이 치고, 음식을 먹고 체한 날, 친구의 싸늘한 시선이 생각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눈을 뜬 날, 누구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엄마 냄새로 긴장을 풀어야 한다. 신의 위로와 은총은 너무나 멀다. 신이 너무 바빠서 세상에 엄마를 만들었다는 말이 이처럼 절묘하게 들어맞는 때는 없다.

 

혼자 조기 유학을 떠나 부모 냄새와 단절된 아이는 부모와 자식 간의 본능적인 유대 관계도 끊어진다. 그나마 엄마만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대안책으로 대한민국에는 기러기 아빠가 탄생했다. 모양은 아빠인데 속은 기러기라니, 솔직하게 말하면 괴물이다. 그 아이가 엄연히 아비 부, 어미 모의 자식인데 아비의 냄새를 3년 이상 맡지 못한다면 정서적 유대 관계는 끊어진다. 아비는 허리가 휘게 돈을 벌어 투자했지만 아이는 같이 있던 어미만 사랑하고 아비는 돈 벌어 오는 사람으로만 인식한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아이가 철이 없거나 배은망덕해서가 아니다. 그것이 자연이고 본능이다. 보지 않아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냄새를 맡지 못해 멀어진다.

 

대뇌 발달의 2차 폭발 시기가 언제까지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중학생 나이를 넘겨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한다. 최소한 17~18세, 좀 더 안전성을 보장받으려면 24세가 넘어야 한다. 그러니 통합적인 뇌 기능의 발달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학교에 입학할 때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 대학 입시는 암기식 지식에 의존하기에 더욱더 확인하기 어렵다. 부모들은 주입식 교육으로 훈련된 아이들이 버젓이 대학에 합격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양육 방식이 옳았다고 판단하지만 정작 문제는 대학 이후의 취직과 군대, 결혼과 부모 되기 과정에서 발생한다. 스트레스라는 단어로 압축되는 다양한 심리적 과업에 직면했을 때, 정서 뇌의 안정 없이 언어 뇌, 수리 뇌만 발달시킨 아이들은 금방 무너진다. 쉽게 포기하거나 부모에게 의존하거나 심지어 자살을 시도한다. 인간의 문제 중 머리를 써서 풀어야 하는 문제는 IQ 90만 넘으면 해결하는 데 큰 차이가 없다. 정말 인간답게 살기 위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체를 통합하는 지혜, EQ로 풀어야 하는데 입시에 내몰린 우리 아이들은 EQ를 가동할 정서적 밑천을 만들지 못한다.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다.

 

EQ가 낮다고 전두엽이 발달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서 뇌발달 단계를 건너뛰기 때문에 전두엽이 더 빠르게 발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서 뇌의 발달이 수반되지 않은 채 전두엽만 발달한 사람은 감정이 없는 슈퍼 로봇에 지나지 않는다. 슈퍼 로봇은 똑똑하지만 인간이 아니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슈퍼 로봇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영화 <쿵푸 펜더>에 기술이 뛰어난 타이렁이 나온다. 하지만 감정이 불안정한 타이렁은 위험하기만 하다.

 

전두엽은 창의적 사고를 담당하는 영역이다. 나는 요즘 전 세계에서 창의력이 가장 뛰어난 나라는 중국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중국인의 창의적 사고는 정점에 이르러서 인공 계란, 합성수지 쌀, 피혁 우유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계란은 당연히 닭에서 나오고 쌀은 당연히 벼에서 나오며 우유는 당연히 소에서 나오는데, 창조주도 하지 못한 발명을 하다니 그 발상과 기술이 얼마나 천재적인가. 합성수지 쌀을 세 그릇 먹으면 비닐 봉투를 하나 먹는 것과 같다니 그 폐해가 대단히 심각하다. 황허 강에서 문명을 꽃피웠던 중화민국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달해 부잣집 아이들은 샤오황디(소황제)가 되었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셰한궁(노동 착취)이 되었다.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면서 결핍감, 무력감, 좌절감, 분노 등의 정서적 불안정은 급증한 반면 어떤 방법으로든 돈을 벌어야겠다는 전두엽 기능만 과대하게 발휘되기 때문이다.

 

내 자식 키우기도 힘든 판에, 이 땅에서 벌어지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판에, 언젠가부터 한 가지 걱정이 더 생겼다. '중국을 어찌할꼬?'

 

지금 전 세계가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데 일부 중국인의 반인류적인 창의적 사고가 계속된다면 그 여파가 우리 아이에게도 미칠 수밖에 없다.

 

정서적 안정을 무시한 채 영어만 잘하고 시험만 잘 보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 우리가 중국에게 보내는 위험과 안타까움의 시선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날아올 것이다. 그런 중국조차도 초등학생 자녀를 혼자 조기 유학 보내는 일이 많지 않다. 초등학생 조기 유학 비율은 대한민국이 세계 1위이다. 참, 우리나라는 1등도 많이 한다.

 

부모를 떠나 공부해도 되는 시기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와 로체스터대학교에서 이민자를 대상으로 언어 습득 능력을 연구했다. 예상대로 일찍 왔느냐가 중요한 변수였는데, 테스트를 해보니 3~7세에 이민 와서 영어를 배운 사람들은 원어민 같은 수준의 점수를 받았지만 열 살이 넘으면 점수가 뚝 떨어져 50%까지 낮아졌다.

 

이민자도 이 정도인데 몇 년 영어 공부하러 간 조기 유학은 점수 하락이 더욱 가파를 것이다. 이 연구자들이 추가로 언급한 내용이 있다. 이런 식으로 언어 습득 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현상이 제2 외국어 뿐만 아니라 모국어에도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모국어를 충분한 수준으로 습득하기 전에 제2 외국어를 습득하면 이중 언어 사용자가 될 수도 있지만 이중 언어 장애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요즘 청소년을 보면 영어는 잘하지만 한국어 수준이 너무 낮다. 한류 열풍이 불면서 k-pop 가수들의 대형 공연이 심심찮게 열리고 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k-pop 공연을 보다가 출연한 아이돌 가수의 반 이상이 공연장의 뜨거운 열기에 대해 "정말 장난이 아닌데요?" 하고 똑같이 말하는 것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의 한국말 수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어차피 일곱 살 이후 시작한 조기 유학에서 영어 습득 능력은 거기서 거기다. "우리 애는 영어만 배우러 가지 않았어요"라고 항변하는 부모들에게 말한다. 아이가 일찍 세상에 눈뜬다고 치자. 하지만 그런 깨달음은 부모의 살가운 사랑을 충분히 받아 정서 뇌가 안정된 상태에서 전두엽 기능이 온전하게 발달된 후라도 늦지 않다. 오히려 좀 늦게 시도해야 더 성숙한 시각을 갖출 수 있다. 이 세상에 어떤 것도 한 가지로 100%의 효과를 얻는 일은 없다. 포도주는 심장에 좋지만 뇌에는 좋지 않다. 커피는 나쁘다고 알려져 있지만 당뇨와 치매예방에는 좋다. 조기 유학은 외국어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 좋지만 안정적인 정서가 우선되어야 하는 뇌 전체의 발달에는 좋지 않다.

 

예술과 스포츠 영역의 조기 유학은 위험성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적다. 예술이 변연계를 자극하고 정화하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외할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 이런 음악을 듣고 연주하면서 감정이 정화되면 그나마 정서적 동요가 많이 가라앉는다. 운동 또한 끊임없이 몸을 움직임으로써 부모의 부채에 따른 정서적 긴장을 어느 정도 해소해준다. 하지만 영어 실력만을 목표로 하는 유학은 감정을 발산하고 정화할 기회가 거의 없어 몸과 마음이 이완되기 힘들다. 굳이 조기 유학을 보내고 싶다면 예술 활동이나 운동을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부모의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은 똑같으므로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사춘기를 지나 전두엽의 폭발적인 발달이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래서 이제는 가정 통신문을 보고도 예전에 했던 수백 가지 생각을 우선순위로 정렬할 수 있을 때가 유학을 가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물론 옛날에도 조기 유학의 전통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 양반집 자제들이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일찌감치 떠나곤 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 시험일에 늦지 않기 위해서 서둘러 출발하거나 세도가와 안면을 트기 위해 1년 전부터 한양 성읍 근처에 방을 얻어 공부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방자가 동반했다. 시종이지만 친구이기도 하고 형이기도 했던 존재, 집 안의 냄새와 온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부모의 대리자가 24시간 옆에 있어주었기 때문에 우리의 도련님들은 안심하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행여 공부하는 중에 기생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방자는 부모에게 바로 고자질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도련님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애쓰곤 했다.

 

방자도 없는 현대사회에서 아이를 안전하게 조기 유학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다음의 세 가지밖에 없다. 첫 번째는 부모와 아이 모두 같이 가는 것, 두 번째는 첫 번째 방법을 꼭 지켜댜 하는 것, 세 번째는 두 번째 방법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미국의 투자가 워런 버핏이 말한 부자 되는 방법을 인용해보았다. 워런 버핏은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 첫째, 원금을 절대로 잃지 말야 하고, 이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는 두 번째, 세 번째 방법을 유머스럽게 얘기한 적이 있다. 조기 유학을 잘못 보내면 원금이, 즉 다이아몬드 같은 아이의 가치가 오히려 손실된다. 아이가 혼자 유학을 가도 되는 나이는 전두엽 폭발이 안정기로 접어든 대학교를 졸업한 후다. 최대한 당겨본다고 해도 고등학생 시기는 넘겨야 한다.

 

하루 3시간 엄마 냄새_ 이현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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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신 2016. 11. 26. 1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