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지심리학자 키스 스타노비치는 읽기에 관한 연구에서 단어 지식의 발달에 관해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유년 시절 어휘가 풍부했던 아이가 나중에도 어휘가 풍부해지는 반면 어휘가 빈곤했던 아이는 자라서도 어휘가 빈곤해진다면서 이런 현상에 '마태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신약성서의 복음서 이름에서 따온 말이지요. 배경 지식에 관한 마태-에머슨 효과라는 것도 있습니다. 즉 폭넓게 제대로 책을 읽은 사람은 읽기에 적용할 자원이 많아지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적용할 자원이 적어지면서 추론과 연역, 비유적 사고의 기초가 부실해지고 결국에는 가짜 뉴스든 날조 뉴스든 불확실한 정보의 희생물로 전락하기 쉽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되면 청소년들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배경 지식이 충분하지 않으면, 깊이 읽기의 나머지 과정이 작동하는 빈도도 줄어들어 이미 알고 있는 것 바깥으로는 나가지 않게 되지요. 지식이 진화하려면 계속 배경 지식이 추가되어야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실 정보는 증명될 수도 없고 확증될 수도 없는 외부 원천에서 옵니다. 이런 정보를 우리가 어떻게 분석하고 활용할 것인지, 새로운 정보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계속할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가 우리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배경 지식과 분석적 사고를 통한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질이나 우선순위가 정확한지, 혹시 외부의 동기와 선입견이 개입된 것은 아닌지 물어보지도 않은 채 정보를 받아들이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테너는 "뛰어난 기술을 생산해낸 지성이 되레 그 기술로부터 위협받는다면 수치스러운 일" 이라고 썼지요. 인간이 그런 덫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최근 컨퍼런스에서 앨버타 대학교 도서관의 제럴드 비즐리 관장은 디지털 전환이 책의 운명에 미칠 영향에 관해 이렇게 말했지요. "현재 상황은 해결될 수 없습니다. 해결될 때까지 우리는 '책의 특성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독자의 특성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독자의 특성은 독자가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끝이 납니다.

 

루이 파스퇴르는 획기적인 과학 연구에 관한 이런 말을 남겼지요. "행운은 준비된 정신에만 찾아온다." 이 우아한 발언은 깊이 읽는 뇌에서 배경 지식의 역할을 설명하는 말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것은 준비된 정신을 어떻게 읽기에 적용하고, 우리가 구축하는 정보를 어떻게 분석적인 기술로 분석하며, 그렇게 걸러진 생각들을 어떻게 완전히 새로운 생각과 통찰의 재료로 사용하느냐의 주제로 논의를 이어가기 위한 적절한 연결부라고 하겠습니다.

 

다음 논의로 넘어가기 전에 과학소설 작가인 에일린 건이 남긴 '아주 짧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녀의 여섯 단어짜리 소설은 얼핏 우주여행에 관한 것으로 보이는데,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분의 STEM 세포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마태 효과'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다. 아내인 사회학자 해리엇 주커먼과 함께 고안했다고 한다. 마태복음 25장 29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일종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뜻하는 말로, 사회학계에서 연구자의 명성에 따라 지원도 격차도 벌어지는 것을 지칭했는데 그 후 다른 연구 분야에서도 쓰기 시작했다.

 

* STEM은 21세기 융합교육의 주요 과목인 '과학, 기술, 공학, 수학'의 영문 약자이면서, stem cell은 만능 세포인 줄기세포를 뜻한다.

 

다시, 책으로_ 매리언 울프

by 미스터신 2020. 11. 22. 11:49

미국의 아동발달학과 매리언 울프 교수는 [책 읽는 뇌]에서 "독서가 뇌에 가장 훌륭한 음식인 이유는 풍성한 자극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자를 이해하고 상징을 해석하는 측두엽, 상황을 파악하고 활자를 시각으로 상상하는 전두엽, 감정을 느끼고 표상하는 변연계 등 독서의 흔적이 남지 않는 영역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매리언 울프는 또한 독서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 불과 수천 년 전에 발명한 것이며, 그러한 독서가 인간의 인지 발달을 바꾸어 놓았다고 피력하고 있다. 독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며 독서를 하는 동안 자의식을 버리고 다른 사람, 다른 시대, 다른 문화의 의식으로 넘어가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언급했다.

매리언 울프가 '독서는 인간의 발명품'이라고 말한 것처럼 '스마트폰도 인간의 발명품'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컴퓨터 같은 디지털 기기에 인간의 뇌가 장시간 노출되면 책을 읽을 때와는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일본 도호쿠대학 의학부 가와시마 교수 연구팀에 의하면 언어 지능이 저하되고 동작성 지능 및 두뇌 전체 지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아침 독서 시간, 아이들 손에는 책이 쥐어져 있지만 책장만 건성건성 넘기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독서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게임)와 무엇이 다를까?

고전읽기의 장점은 아이로 하여금 책의 재미를 느끼게 해 진정한 독서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최대 경쟁자인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게임)와는 전혀 다른 즐거움으로, 다시금 책에 빠져들게 한다. 무엇보다 고전읽기는 아이의 두뇌를 바꾼다. 따라서 엄청난 학습 효과가 덤으로 주어진다. 고전읽기를 통해 향상된 어휘력과 사고력은 물론 집중력이 자연스럽게 학습효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송재환 교사가 집필한 [초등 고전읽기 혁명](글담 출판사)에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한 대목이 나온다.

고전을 읽으면 사고력이 발달한다. 논리적 구조가 탄탄한 글을 읽는 사이 자연스럽게 논리 구조를 배우게 되며, 내용을 계속 되새김질하며 읽는 사이 사고력이 발달하는 것이다. 사고력이 높은 사람은 처음 보는 문제도 해결법을 찾아내며,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지능과도 많은 상관관계가 있는데, 사고력을 키우면 지능도 함께 향상된다.

이처럼 고전은 사고력을 발달시켜 학습 능력을 높여 준다. 작년에는 5학년 아이들과 인성 고전읽기를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망설였다. 교실이든 도서관이든 손만 뻗으면 책이 널려 있는데 고전읽기를 위해 굳이 다른 책을 사야 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 듯했다. 게다가 학원만으로도 벅차고 피곤한데 고전까지 읽게 되면 더 힘들고 귀찮아지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학습 효과만이 목표였다면 오히려 학습 만화가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에게 학습을 위해 고전을 권하는 것이 아니었다. 황폐해진 아이들의 마음이 지금보다 풍요롭고 단단해지기를,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기를, 더 나아가 깊이 있는 읽기를 통해 사고력과 통찰력을 키우기를 바랐다. 이것이 결국에는 지금 당장 문제를 하나 더 풀고 지식 하나를 더 외우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더 가치 있고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보물창고)를 아이들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당시 조선 시대의 사회, 문화, 정치, 경제에 대해 두루 알게 되는 것은 물론 당시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약용이 둘째 형님에게 쓴 편지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

하나라의 속담에 "무리 지어 다니면서 양식을 먹어 치워, 굶주린 사람은 먹지 못하고 힘든 사람은 쉬지 못한다. 백성들이 서로 흘겨보고 비방하는데도 왕의 명령을 어기고 백성을 학대한다. 그리하여 음식을 물흐르듯 낭비하고, 이곳저곳을 놀러 다니며 주색에 빠짐으로써 제후에게 근심을 끼친다." 라고 했으니, 지금의 관찰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내용을 통해 조선 시대 관찰사라는 직책의 사람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해 백성들이 고통을 겪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관찰사는 각 도에 파견되어 지방 통치의 책임을 맡았던 최고의 지방장관이었다. 이렇듯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를 통해 조선 시대 유배 제도와 부패한 권력가의 횡포는 물론 백성들의 피폐한 생활상도 알 수 있다. 아래는 이 책을 읽고 쓴 아이의 글이다.

정약용은 조선 시대 실학자로 정조를 도와 수많은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는 1789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대과에 급제하여 정조의 개혁정치를 적극 도왔다. 규장각에서 중요한 정책을 연구하고 정조가 화성에 행차할 때 한강에 배다리를 설치하고, 수원 화성을 설계했다. 나도 작년에 수원 화성에 가본 적이 있는데 정약용이 설계한 것인 줄 몰랐다.

이런 훌륭한 학자가 모함을 받아 강진에 유배되었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유배지에서도 당시 지방 통치 책임을 진 관찰사의 부패상을 꾸짖고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는 편지를 보면서 정약용의 훌륭한 정신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지방관은 언제나 청렴결백하고, 명예와 재물을 탐내지 않으며, 절대로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백성에게 봉사하고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지방 관리의 임무"라고 밝히며 [목민심서]를 지었다. 다음에는 [목민심서]를 읽고 싶다.

마침 5학년 때 아이들은 역사를 배운다. 오늘날과 너무 다른 과거의 이야기인지라 아이들에게 낯설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책이지만, 교과 과정과 맞물려 긍정적 시너지를 이끌 수 있었다. 생생한 과거를 엿보는 기회이자 낯선 어휘들에 익숙해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고전이 주는 학습 효과는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동안 밝혀진 학습 효과를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집중력이 향상된다

고전읽기를 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집중력이다. 건성건성 읽거나 오래 집중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고전을 읽고부터 집중력이 높아진다. 고전은 생각을 깊이 해야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 많다. 사건이나 인물들 간의 갈등을 연관 지어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은 까닭에 자신도 모르게 책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집중력은 공부할 때도 이어져 학습 능력 향상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서술형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국어는 도구 교과이기에 국어를 잘하지 못하면 다른 과목도 잘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출제 유형이 바뀌면서 배점이 높은 서술형 문제가 시험 결과를 좌우하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문장을 잘 이해해야 풀 수 있다.

고전을 읽으면 사고력이 깊어지고 다양한 어휘를 접할 수 있어 어휘력이 향상된다. 고전에 나오는 한자어나 고어는 새로운 언어 자극이 되어 어휘 세계를 넓혀 준다. 자연히 국어 능력이 좋아져 국어 점수가 높아진다.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고전을 읽은 아이들은 진학하면서 배우게 되는 고전을 미리 접하는 계기가 되어 언어 영역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논술과 토론 능력이 향상된다

논술과 토론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추세다. 이를 이야기할 때 독서를 빼놓을 수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 보고, 많이 써보고, 많이 대화해 봐야 늘기 때문이다. 논술은 단지 글쓰기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나 삶 속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고전에는 위대한 저자들의 생각이 담겨 있다. 고전을 읽으면서 그들의 사고 과정을 따라갈 수 있으며,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글이 주는 감동은 읽는 이에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싶게 만든다. 앞에서 이야기한 사례를 통해서도 고전을 읽은 뒤 토론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고전을 읽다 보면 논설과 토론 능력이 향상된다.

고전읽기를 진행하다 보면 아이들의 관심 분야가 바뀌거나 확대되는 것을 보곤 한다.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위인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위인전을 읽다가 과학 분야로 관심이 옮겨 가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폭넓은 독서를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를 접하게 된다. 고전에는 아이가 평상시 접할 수 없는 여러 상황들과 주제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것들이 아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는 모양이다. 이는 두뇌의 힘을 강화시키고 배경지식을 확장시켜, 아이들이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초등인성 고전읽기의 힘_ 이화자

by 미스터신 2017. 7. 2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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