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통해 공부머리를 끌어올린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컴퓨터의 부품을 업그레이드하듯 아이의 뇌가 구조적, 물리적으로 전혀 다른 뇌로 변신함을 뜻합니다.

 

인간의 뇌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뉴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1000억 개의 신경세포들은 시냅스라는 틈으로 서로 연결돼있습니다. 이 틈이 얼마나 조밀하고 원활하게 연결되어있느냐가 그 사람의 지적, 정신적 능력을 결정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이 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이 연결 방식이 계속해서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뇌 과학에서는 이것을 '뇌의 신경가소성'이라고 합니다.

 

뇌를 많이 쓰면 시냅스의 연결 방식이 개선, 강화되고 많이 쓰지 않으면 연결이 퇴보하거나 끊어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수학 공부를 많이 하면 수학 문제를 풀 때 쓰이는 시냅스의 연결이 조밀해지고 더 나아가 자동화됩니다. 처음 덧셈 뺄셈을 배울 때는 한참을 고민해야 합니다. 관련 시냅스의 연결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덧셈 뺄셈을 익히고 나면 숫자가 달라져도 쉽게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관련 시냅스의 연결이 완성되어 뇌 속에 덧셈 뺄셈이라는 도로가 하나 뚫린 셈입니다. 이 상태에서 계속 반복해서 문제를 풀면 덧셈 뺄셈에 관한 시냅스 연결 조합이 자동화됩니다. 덧셈 뺄셈 문제를 보자마자 조건반사적으로 순식간에 풀 수 있게 되죠.

 

반대의 현상도 일어납니다.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던 어떤 사람이 10년 넘게 영어를 쓰지 않으면 관련 시냅스 조합의 연결이 끊어집니다. 영어를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시냅스의 연결이 이어지고 끊어지는 것은 특정 지식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고력, 언어능력의 수준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2014년 OECD는 22개 회원국의 국민 15만 명을 대상으로 실질 문맹률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실질 문맹이란 글자를 소리로 읽을 줄은 알지만 뜻을 파악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를 말하는데, 그 조사 결과가 자못 충격적입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의 실질 문맹률이 22개국 중 3위를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 중 상당수는 전자제품 설명서나 약 사용법 같은 간단한 글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의 언어능력이 이렇게 낮은 것은 세계 최저 수준의 독서율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평소 길고 어려운 글을 읽는 훈련을 거의 하지 않으니 글을 읽고 이해하는 시냅스 연결이 죄다 풀려버린 것이지요.

 

말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뇌에는 말을 관장하는 전문 영역인 베르니케 영역과 브로카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은 우리 유전자 속에 프로그래밍된, 타고난 능력인 셈입니다. 반면 글 읽기는 타고난 능력이 아닙니다. 글은 인위적으로 배워야만 익힐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현생 인류가 등장한 것이 20만 년 전인데 문자가 만들어진 것은 기껏해야 6천 년 전의 일이니까요.

 

우리 뇌에는 읽기를 관장하는 영역이 따로 없기 때문에 글을 읽으려면 뇌의 여러 부위가 축구 경기를 하듯 팀플레이를 펼쳐야 합니다. 후두엽은 눈으로 받아들인 시각 정보를 측두엽에게 패스합니다. 측두엽은 시각 정보를 재빨리 표음 해독합니다. '사람'이라는 글자를 사람이라고 읽고, '손가락'이라는 글자를 손가락이라고 읽는 식으로 말입니다. 측두엽으로부터 해독한 글자를 넘겨받은 전두엽은 그 글자의 의미를 추론합니다. '사람'이라는 글자와 실제 사람을 연결짓고, '손가락'이라는 글자와 실제 손가락을 연결짓습니다. 다음은 이렇게 해독한 단어들을 연결합니다. 비로소 '그 사람의 손가락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큰 상처가 있었다'라는 문장을 이해하게 됩니다. 뒤이어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아프겠다', '안됐다'는 식의 감상을 내놓습니다.

 

이렇듯 문장 하나를 해석하려면 뇌의 거의 모든 부분이 총동원되어야 합니다. 숙련된 독서가라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왜 상처를 입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남자일까? 여자일까?'와 같은 의문도 떠올리게 됩니다. 이런 의문들은 글을 보다 깊고 긴밀하게 이해하도록 만듭니다.

 

책을 읽을 때 뇌가 전방위적으로 활성화된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이미 확인되었습니다. 일본 도후쿠대학교 의학부의 가와시마 류타 교수도 그런 연구를 진행한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해 뇌 활동을 촬영했는데, 다른 활동을 할 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책을 읽을 때 뇌 활동이 활발했습니다.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집니다. 책 읽기는 머리를 활발하게 쓰는 활동입니다. 독서야말로 두뇌를 업그레이드하는 가장 쉽고 훌륭한 방법입니다.

 

이제 막 초등 6학년이 된 학생 둘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한 아이는 숙련된 독서가이고, 다른 한 아이는 독서 경험이 없는 초보 독서가입니다. 두 아이에게 뇌 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한 후 초등 6학년 사회 교과서를 읽게 합니다. 두 아이의 뇌 활동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터프츠대학교에서 인지신경학과 아동 발달을 연구하는 매리언 울프 교수는 자신의 저서 <책 읽는 뇌>를 통해 초보 독서가와 숙련된 독서가의 차이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책을 읽는 동안 초보 독서가의 뇌는 뇌 전체가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반면 숙련된 독서가의 뇌는 뇌의 일부만 활발해집니다. 이는 초보 독서가는 초등 6학년 사회 교과서를 이해하기 위해 뇌를 풀가동해야 하는 반면 숙련된 독서가는 뇌를 조금만 써도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앞서, 특정한 지적 활동을 반복하면 관련 시냅스 조합의 연결이 자동화된다고 했습니다. 책 읽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초보 독서가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단어 뜻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문장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우뇌와 좌뇌를 모두 활용해야 하는 거죠. 매리언 울프 교수는 이것을 '배측 경로를 이용한다'라고 표현합니다. 반면 숙련된 독서가는 독서 과정 중 상당 부분이 자동화돼있습니다. 글자의 모양을 파악하고, 뜻을 연결하고, 그렇게 파악한 어휘들을 조합해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복잡한 과정이 쭉 뻗은 고속도로처럼 하나의 세트로 간결하게 구조화돼있는 겁니다. 그래서 숙련된 독서가는 좌뇌만으로 글을 읽는 효율적인 방식을 쓰는데, 이것을 '복측 경로 혹은 하측 경로를 이용한다'라고 합니다.

 

공부를 요리에 비유하자면 배측 경로를 사용하는 초보 독서가는 요리를 처음 해보는 자취생과 같습니다. 이 자취생이 요리를 하려면 먼저 인터넷으로 레시피부터 찾은 후 필요한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마트에 가서 요리 재료를 사서 돌아온 후에야 어설프게나마 요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반면 복측 경로를 사용하는 숙련된 독서가는 유능한 팀원이 10명쯤 딸린 특급 음식점의 주방장과 같습니다. 필요한 재료는 이미 냉장고 안에 완벽하게 준비돼있고, 레시피는 머릿속에 빈틈없이 정리돼있습니다. 일단 요리가 시작되면 재료 손질과 같은 기초 조리 과정은 팀원들이 알아서 대령합니다. 주방장은 오로지 요리 자체에만 집중하면 되죠. 빠른 시간 안에, 큰 힘 들이지 않고,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자취생과 특급 음식점 주방장이 요리 경연대회에 나가면 누가 이길까요? 뚜껑을 열어보지 않아도 결과는 자명합니다.

 

1, 2차 급변동 구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아이의 성적을 결정합니다. 그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기초가 아니라 언어능력입니다. 언어능력을 끌어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책을 읽는 것입니다. 책을 읽을 이유가 더 필요한가요? 책 속에 답이 있습니다.

 

공부머리 독서법_ 최승필

by 미스터신 2019. 7. 6. 10:01